사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환경연합이 뽑은 ‘세상을 밝게 만든 100인’에 선정된 광화문 글판이 올해로 21년째를 맞았다. 한국문화연대는 광화문 글판을 ‘올해의 우리말 사랑꾼(2008년)’으로 뽑기도 했다. 광화문 글판은 광화문광장 앞 교보생명 건물에 붙어 있는 글판이다. 지하에 교보문고가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교보문고에서 내건 것으로 알고 있지만, 광화문 글판을 관리하는 곳은 교보생명이다. 글판에는 계절별로 계절감과 시의성 있는 주제의 글이 담긴다. 물론 처음에는 여타 기업들처럼 연말연시에 내걸던 ‘하정(賀正)’에서 시작됐다. 그래서 그런지 초기 문안은 ‘개미처럼 모아라. 여름은 길지 않다’ ‘아직도 늦지 않다. 다시 뛰어 경제성장’ 같은 다소 계도적인 글들이 글판에 실렸다. 그러다 창업자 고(故) 신용호 회장의 제안으로 시심(詩心)을 담아내게 된 것이 오늘날의 광화문 글판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지금의 광화문 글판 문안은 과연 누가, 어떤 과정을 거쳐 결정하는 것일까. 광화문 글판을 운영하는 교보생명 홍보팀 임공택 팀장을 만나 광화문 글판에 담긴 숨은 이야기를 들어봤다.
2000년부터 ‘광화문 글판
문안선정위원회’ 운영
“처음엔 직원들끼리 후보 문안을 내고 그 중에 좋은 문안을 선정하는 방식이었는데, 한계가 있더군요. 고은과 신해욱 시인께 창작을 의뢰하거나 작품에서 발췌하는 형식으로 문안을 만들어 가다가 현판 게시 10주년이 되던 2000년 12월 처음으로 ‘광화문 글판 문안선정위원회’가 만들어졌죠.”
‘문안선정위원’들
“창업자와의 인연으로 고은 시인께 문안을 부탁드리다가 위원회가 만들어지고 나서 정호승 최승호 시인, 공선옥 은희경 소설가 등을 비롯한 문인들과 평론가, 문화부 기자, 카피라이터, 신문 논설위원, 문화재단 인사 등 그동안 많은 분들이 광화문 글판 문안 선정을 위해 위원회를 결성해 주셨습니다. 문안 교체 한 달 전부터 위원단이 후보 문안으로 뽑아온 글과 시민들의 추천으로 받은 문안들을 모아 문안 선정에 들어갑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가장 적절한 문안이 채택되면 디자인 회사에 알맞은 서체와 배경 디자인 시안을 의뢰해 또 선정과정을 거칩니다. 그렇게 해서 광화문 글판이 만들어집니다.”
사람들의 반응도 제각각
“계절마다 바뀌는 광화문 글판에 관심을 갖는 분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을 보면 광화문 글판에 적힌 그 짧은 문안이 가진 힘을 알 수 있죠. 광화문 글판의 문안을 보고 용기를 내어 어렵게 사랑 고백을 했다는 청년, 진로를 놓고 방황하던 때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며 피었나니’라는 글귀를 보고 마음을 다잡았다는 분 등 많은 분들이 이 짧은 글에서 감동과 공감을 통해 용기와 희망을 얻었다는 글을 보내주셨습니다. 한번은 한 보수단체에서 문안이 ‘불온’해 언짢다고 전화를 걸어오기도 했었지만, 글에 담긴 좋은 뜻을 말씀드리고 곧 이해시켜 드리기도 했습니다.”
마음을 보듬고
공감과 감동 주길
“외국의 한 문인은 광화문 글판을 보고 세계 어느 도시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문화 행위라며 광화문 글판에 관심과 극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최근에는 그동안의 문안들을 모아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교보문고)’라는 책으로 펴내기도 했죠. 지금까지 수익금이 3000만원 정도 모였고 불우이웃을 돕는 데 쓰일 예정입니다. 광화문 글판에 담긴 짧은 글귀가 시민들 곁에서 시름에 담긴 마음을 따스하게 위로해주고, 기쁠 때는 함께 기뻐하며 어려운 시기에 위로와 용기를 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