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공격 이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정권교체를 이끌어낸 미국이지만 최근 아랍권 시민혁명의 불길에서 미국의 소방관 역할은 사실상 크지 않았다. 특히 리비아 사태에 대해서는 더 그렇다. 수천 명의 민간인들이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이 동원한 전투기와 군사용 헬기에 목숨을 잃고 나서야 미국은 뜨뜻미지근한 군사개입을 시작했다. 그러나 주도적인 역할을 회피하고 있다. 작전명도 지중해를 배경으로 한 호메로스의 장편서사시의 주인공 이름을 따 ‘오디세이 새벽’으로 붙여놓았다. 카다피 정부군이 반군의 도시 벵가지에 이르렀을 때 겨우 유엔안보리 결의를 통과시키고 성급하게 군사작전을 시작했다. 작전을 주도하고 있는 것도 영국과 프랑스다. 미국은 또 군사 지휘권 자체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이양했다.

이처럼 군사작전에서 미국의 역할이 줄어들면서 리비아 사태는 장기화할 전망이다. 다국적군으로서도 특별한 대안이 없다. 안보리 결의 1973호는 ‘민간인 보호를 위한 모든 조치를 강구할 수 있다’고 언급하면서도 지상군의 투입이 불가함을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지상군의 투입 없이는 카다피 정부군을 제압할 수 없다. 그렇다고 반정부 시민군에 무기를 지원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이슬람 세력이 가담하고 있다는 정보가 올라오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은 1991년 이라크를 3등분 하던 비행금지구역 설정과 비슷하게 리비아를 동서, 즉 카다피의 서쪽과 반군의 동쪽으로 나누어야 할 상황이다. 이 경우 정권을 유지한 카다피가 유럽에 대한 석유수출 금지 등 경제적 보복을 가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또 유가의 상승 요인이 생기는 것이다.

이처럼 이번 아랍의 시민혁명은 서방의 대중동 전략에 큰 혼선을 야기하고 있다. 현실주의와 이상주의 간 즉, 전략적 중요성과 민주화 간에서 서방은 고민하고 있다. 현재 서방은 대중동 전략의 틀을 다시 마련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새로운 전략의 틀이 마련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성급히 시작한 대리비아 군사작전은 긍정적인 결과를 도출하지 못하고 있다.

중동에서 발생하고 있는 ‘아래로부터의 혁명’의 가장 중요한 결과는 다양화와 다원화일 것이다. 우선 다양한 정치체제가 등장할 것이다. 정권이 바뀐 나라는 물론 당장은 위기에 처하지 않은 산유국도 적지 않은 변신의 노력을 거듭할 것이다. 나라마다 다른 정치체제 및 민주화 정도가 나타날 것이고, 경제정책 또한 각국의 상황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더불어 한 국가 내에서도 다원화한 의사결정 구조가 마련될 것이다. 과거 군부독재 최고 엘리트 혹은 국왕을 중심으로 한 왕족이 결정하던 사안들이 의회, 시민사회, 이익단체 등에 의해 감시와 견제를 받을 것이다.

이는 과거 국민의 뜻을 무시하고 소수의 독재엘리트를 지원하고 설득하는 것을 통해 중동 질서를 주도해왔던 서방의 전략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권위주의 독재정권과의 밀실 협의와 거래는 이제 서방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아니다. 1979년 이집트-이스라엘 평화협정과 같은 상황은 이젠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절대다수의 국민이 반대했지만 미국에 설득당한 안와르 사다트 대통령이 체결한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정에 대한 재고 움직임이 벌써 이집트에서 일고 있다.

서방이 국익을 위한 현실주의를 포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정의와 공평성을 담은 이상주의적 접근도 가미해야 할 것이다.

아랍인들도 이런 상황을 명백히 인식해야 한다. 외부의 군사적 개입은 정권의 교체를 가져다줄 수는 있지만 민주화를 보장하지는 못한다. 자체적인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 국민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 여성도 이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민주화의 길에 남녀 차이는 있을 수 없다.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나타난 여성들의 적극적인 역할이 리비아, 예멘, 시리아 등에서도 등장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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