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서는 남계혈족 중심의 가족질서가 전통 혹은 관습의 이름으로 오랜 기간 유지돼 왔다. 지금은 폐지됐지만 호주제가 그랬고, 이른바 ‘딸들의 반란’이 있기 전까지 결혼한 여성은 종중(宗中)의 일원이 되지도 못했다.

용인 이씨 사맹공파 종중은 1999년 3월에 종중 소유의 임야를 건설업체에 350억원에 판 후 그 돈을 종중의 성년 남자에게는 1억5000만원씩 나눠준 반면, 미성년자와 결혼을 한 여성에게는 종회 회원의 자격을 인정하지 않은 채 증여 형태로 1인당 1650만원에서 5500만원씩 차이를 두어 나눠주었다. 그러자 결혼을 한 여성 5명은 자신들도 종중 회원으로 인정해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그녀들은 종중 규약 제3조에서 “본회는 용인 이씨 사맹공의 후손으로 성년이 되면 회원 자격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 규약에서는 회원 자격을 남자로 제한하고 있지 않으므로 자신들도 종원 자격을 갖는다는 것이었다.

원심에서는 “종중원을 20살 이상의 성인 남자로 정하고 여성을 종중원으로 인정하지 않는 관습이 헌법상 남녀평등 이념 등과 조화를 이루지 못할 여지가 있다 해도 헌법상 기본권은 사법의 일반 원칙을 통해서만 간접적으로 개인적인 관계에 적용되는 것”이라면서 “성년 남자를 중심으로 한 종중의 관습이 선량한 풍속이나 사회질서에 위반된다고 볼 수도 없다”고 판시했다(서울고법 2002.1.11.선고 2000나36097).

원고들은 이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했고,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다음과 같이 판시하면서 딸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관습법이란 사회의 거듭된 관행으로 생성한 사회생활규범이 사회의 법적 확신과 인식에 의해 법적 규범으로 승인·강행되기에 이른 것”을 말하고, “사회의 거듭된 관행으로 생성한 어떤 사회생활규범이 법적 규범으로 승인되기에 이르렀다고 하기 위해서는 헌법을 최상위 규범으로 하는 전체 법질서에 반하지 아니하는 것으로서 정당성과 합리성이 있다고 인정”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아니한 사회생활규범은 비록 그것이 사회의 거듭된 관행으로 생성된 것이라고 할지라도 이를 법적 규범으로 삼아 관습법으로서의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전제한 후 “종원의 자격을 성년 남자로만 제한하고 여성에게는 종원의 자격을 부여하지 않는 종래 관습에 대해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가지고 있던 법적 확신은 상당 부분 흔들리거나 약화”됐고, “무엇보다도 헌법을 최상위 규범으로 하는 우리의 전체 법질서는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한 가족생활을 보장하고, 가족 내의 실질적인 권리와 의무에 있어서 남녀의 차별을 두지 아니하며,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고 남녀평등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변화돼 왔으며, 앞으로도 이러한 남녀평등의 원칙은 더욱 강화”될 것이다.

“종중은 공동 선조의 분묘 수호와 봉제사 및 종원 상호 간의 친목을 목적으로 형성되는 종족단체로서 공동 선조의 사망과 동시에 그 후손에 의해 자연발생적으로 성립하는 것임에도, 공동 선조의 후손 중 성년 남자만을 종중의 구성원으로 하고 여성은 종중의 구성원이 될 수 없다는 종래의 관습은 공동 선조의 분묘 수호와 봉제사 등 종중의 활동에 참여할 기회를 출생에서 비롯되는 성별만에 의해 생래적으로 부여하거나 원천적으로 박탈”하는 것이다.

이것은 “변화된 우리의 전체 법질서에 부합하지 아니해 정당성과 합리성이 있다고 할 수 없으므로, 종중 구성원의 자격을 성년 남자만으로 제한하는 종래의 관습법은 이제 더 이상 법적 효력을 가질 수 없게 됐다”(대법원 2005.7. 21.선고 2002다13850 전원합의체).   

이 판결을 계기로 모든 성년 여성에게도 종원 자격이 주어졌다. 희망하는 여성에게 참여의 기회를 주는 것이 아니라 성인이 되는 남성이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종원이 되는 것처럼 여성도 성인이 되면 종원이 된다. 

관습이란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다. 이 판결은 오랜 기간 전통 혹은 관습이라는 이름으로 유지돼 왔다 하더라도 현대사회가 인정하는 양성평등과 같은 보편적 가치와 대립한다면 더 이상 전통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선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 판결이 세상에 나온 해는 국회에서 호주제 폐지 법안이 통과되던 2005년이다. 호주제 폐지와 함께 가족관계에서 양성평등의 이념 실현을 향한 역사적인 판결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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