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내리쬐는 한낮, 리스본 중심가는 탁 트인 광장과 도심 한복판의 공원, 시원하게 뻗은 아스팔트가 포르투갈의 수도임을 뽐내는 듯 보였다. 조금 실망스러웠다. 나는 뭔가 다른 이국적인 모습을 기대했던 것 같다. 그런데 내가 만난 리스본은 그저 유럽의 도시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닌 듯싶었다.
긴 여행에 지친 여행가방의 바퀴가 요란한 소음을 내며 위태롭게 덜덜거린다. 전날 프로모션 가격으로 예약한 게스트하우스는 버스정거장 바로 코앞에 있어 밤새 고속도로 한복판에서 천막을 치고 자는 것처럼 소음이 대단했다. 끊임없는 경적 소리와 사람들의 웃음과 고함소리가 뒤섞여 귀마개도 별 소용이 없었다. 리스본에서 맞이한 두 번째 아침이 밝아왔다.
어제 도착했을 때는 몰랐는데 숙소가 리스본의 압구정이라고 할 수 있는 리베르다드 거리와 가까웠다. 명품 매장과 은행이 있는 중심가라 치안이 잘 되어 있다며 오늘 가이드를 자청한 게스트하우스 매니저 토미가 말해주었다.
오늘 우리는 리스본 시내의 주요 볼거리를 돌아보기로 했다. 리베르다드 거리 양 끝에 있는 로시우 광장과 퐁발 광장, 테주강을 마주한 아름다운 코메르시우 광장, 아름다운 제로니무스 수도원, 배의 출입사무소였다는 벨렝탑, 포르투갈 신항로 개척의 일등공신 엔리크 왕자를 기념하는 발견기념비. 모두가 리스본을 상징하는 곳이었지만, 나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벨렝탑 앞에서 맛본 ‘나타(Nata)’라고 불리는 에그타르트와 시내를 한참 뒤져 찾아낸 작은 술집에서 맛본 독한 버찌주 ‘진지냐(Ginjinha)’였다. 어찌나 인기가 많은지 두 곳 모두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정도였지만, 사람들 틈에 끼어 한입 베어 문 나타의 맛과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진지냐의 독하고 짜릿한 맛은 머릿속에 콕 박혀 리스본 하면 단짝처럼 떠오르는 ‘그리움’이 됐다.
영혼의 음악 ‘파두’로 깊어가는 리스본의 밤
짐을 풀고 간단한 점심을 먹고 주변을 빈둥거리다가 다시 숙소로 돌아와 밀린 빨래와 일기를 쓰고 잠깐 잠이 들었는데 밖이 소란스러워 눈을 떴다. 창문을 열어보니 낮엔 한 사람도 없던 골목에 사람들이 꽤 많이 들어차 있었다. 아뿔싸! 알고 보니 이곳은 서울의 홍대거리쯤 되는 바일루알투(Baillo Alto) 지구의 한복판. 새벽까지 거리공연과 술에 취한 낭만객들이 배회하는 곳이었다.
저녁 9시에 예약된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고 파두 공연을 감상했다. 기타 반주에 맞춰 영혼 밑바닥에서 끌어올려 토해내듯이 부르는 파두는 애달픈 삶의 슬픔과 그리움의 정서 ‘사우다디(Saudade)’가 담긴 노래라고 한다. 우리로 치면 ‘한’이 서린 노래랄까? 파두를 들으며 리스본에서의 마지막 밤이 깊어간다. 이제 나에게 리스본은 머물러 있을 때보다 떠나 있을 때 더욱 그리운 도시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