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 고지도 1000여 점 소장…“지도로만 보면 대마도도 한국 땅”

“자, 여기 왼쪽을 보세요. 프랑스 왕실의 지도학자 당빌의 1737년 조선의 지도입니다. 당시 독도의 지명인 ‘우산국’의 중국식 발음(Tch

ian-chan-tao)으로 독도가 동해안 바로 옆에 명확히 나타나 있죠? 오른쪽은 그 100여 년 후인 1860년대에 만들어진 김정호의 대동여지도고요. 당빌의 지도는 장식적이고 위도, 경도 등 과학이 들어가 있지만 과학이 빠진 이 대동여지도가 더 정확하고 정보도 풍부하죠? 얼마나 우리 선조들이 우수한지 세계 각국의 지도를 보며 매일 실감합니다.”

일본 정부가 독도 영유권 주장을 담은 교과서를 이르면 이달 말 승인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한 가운데 ‘지도 과학’으로 일본을 반박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고지도상으론 대마도도 한국 땅이라고 주장하라”고 담대히 제언하는 학자가 있다. 경희대 석좌교수이자 부설 혜정박물관 김혜정(65·사진) 관장이 그 주인공이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지도과학으로 반박

세계적인 고지도 수집가로 알려진 김 관장은 지도와 첫사랑에 빠졌던 대학 2학년 이후 지금까지도 열정적으로 그 사랑을 지속해오고 있다. 그의 사랑은 자신의 수집품을 기증해 2002년 개관한 혜정박물관에 고스란히 결실로 남아있다.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최초이자 가장 큰 규모의 고지도 박물관엔 15~20세기를 중심으로 동서양 고지도와 지도첩, 관련 사료 등 1000여 점의 소장품이 전시돼 있다. 영국의 대영박물관이 300여 점의 고지도와 그 관련 자료를 소장하고 있는 것과 비교만 해봐도 얼마나 큰 규모인지 짐작할 수 있다. 김 관장의 안내로 고지도 수장고 문을 열면 더 할 말을 잃게 된다. 박물관 장소가 비좁아 전시를 미루고 보관 중인 고지도와 관련 자료 수천 점이 질서정연하게 외출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김 관장은 박물관 전시 지도 중엔 2008년 문화재(보물 제1598호)로 국가 지정을 받은 지도가 대학박물관으론 유일하게 4점(경기도 강원도 함경남도 함경북도)에 이른다며 “마음만 먹고 제시하면 또다시 보물로 인정받을 지도가 상당히 있다”고 귀띔한다.

“수집가는 아무 거나 수집하지 않아요. 어떤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 사랑에 빠지게 되고 그것이 수집으로 이어지는 거죠. 그런데 여기에 그치지 않아요. 사랑하는 것을 더 알고 싶으니 연구에 몰두하게 되고, 또 그 사랑하는 것에 책임의식을 가지게 되는 거죠.”

그는 기자와 전시실을 도는 중에 기자의 눈으론 아무리 보아도 ‘가죽’ 재료로 보이는 상앗빛의 한 전시품을 가리키며 “이것이 바로 1200여 년 전 가죽에 그려진 남미의 아스텍 잉카 지도”라며 “탐험의 호기심과 열정을 가지고 이 가죽 위에 그려진 기호들을 뚫어지게 보다보면 그들의 삶이 보입니다. 내 눈엔 웬일인지 처음부터 온전한 지도로 보였어요”라며 웃는다.

대학 시절, 고서점에서 우연히 마주친 17세기 프랑스산 세계지도에 끌렸을 때만 해도 “귀족 복식 등으로 매우 예쁜, 그래서 지도 같지 않은” 신기한 감정이 앞섰다. 그래서 8만 엔을 주고 그 지도를 샀다. 당시 가사도우미 월급이 8000~12000엔 사이였으니, 그가 그런 거금으로 일을 저지른 것은 어쩌면 숙명이었을 것이다.

그는 일본에서 태어나 4남매 중 맏이로 도쿄에서 성장했다. 도쿄여대에선 문학을 전공했으나 졸업 후 1970년대 마케팅연구소를 운영하면서 상당한 자산을 모을 정도로 성공했다. 그러나 그의 평생 멘토로 동양사학자였던 아버지의 “여자는 돈을 가지면 행복하지 않다”는 한 마디가 그의 표현에 따르면 “투척 인생”을 살게 했다.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 형제들의 지원에 힘입어, 때론 겁 없이 마이너스 통장을 쓰기도 하면서 전 세계 곳곳을 발로 뛰며 수집한 지도, 미술품, 민속품 등을 개인적으로 소유하지 않고 있다. 혜정박물관뿐만 아니라 국립중앙도서관, 경찰대 등에 상설 지도 전시관을 만드는 데 기꺼이 수집품을 기탁했고, 지금도 계속해서 마인드가 맞는 기탁 기관을 찾고 있다. 이에 앞서 30대 후반인 1985년엔 친할머니의 고향인 제주에 정신지체아 시설 ‘혜정원’을 설립해 운영 중이다. 싱글인 김 관장은 “‘사회의 어머니’야말로 여성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훈장 아니겠어요?”라고 반문한다.

‘투척 인생’ 덕에 행복한 삶

‘사회의 어머니’로

“아버지는 생전에 말씀하셨죠, ‘동자리진위, 정자락지거(動者利進爲, 靜者樂止居)’라고요. 움직이는 자는 진취적으로 성취하는 데 이롭고, 고요한 자는 그쳐 머무는 것을 즐긴다’는 뜻이죠. 지금 생각해보면 전자는 아버지의 삶의 태도, 후자는 나의 삶의 태도 같아요. 평생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며 자랐지요.”

수집가로서의 그의 철학이 궁금해졌다.

“자료는 돈이 아니에요. 일찍이 간송 선생(전형필, 한국의 대표적 문화재 수집가)도 말씀하셨죠. 한번 수집에 매료되면 도무지 빠져나갈 길이 없답니다. 기와집 세 채와 문화재 한 점을 맞바꾼 간송의 심정을 이해하고도 남죠. 수집이란 통일된 콘텐츠 맥락 속에 하나로 엮는 영혼의 세계인 거죠.

현재 제가 전 세계적으로 수십 년간 네트워킹 하는 그룹들이 있어요. 이들과 신뢰 관계를 쌓기까지 한 번도 물건의 값을 깎은 적이 없어요. 그들이 달라는 대로 주다보면 성실한 물건과 성실한 가격 시스템이 만들어지죠. 어떻게 보면 수집을 하는 행위는 인재 양성과 매우 비슷해요. 내 것 네 것 없이 아낌없이 주다 보면 좋은 사람, 좋은 물건이 내 주위로 모이게 마련이죠.” 

그의 이런 소신 뒤엔 자신의 작업이 “국가와 민족을 위한 수집”이란 자부심이 숨어 있다. 그는 “너도 좋고 나도 좋고 국가도 좋은” 스리 윈(3+1) 전략을 말한다. 이런 그의 의지를 읽고 최근엔 일면식도 없었던 가수 김장훈씨가 선뜻 1억원을 기부해 감동받고 새 힘을 얻었다고 한다. 그는 “온 국민이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힘을 모아주면 세계 1등 자료실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도 숨기지 않는다.

너무나 원하던 어떤 것이 수십 년의 세월을 돌아 다시 그의 손으로 돌아오는 감격을 누리기도 했다. 수집가의 운명이다.

“일본의 국보급 천문도를 18년 전 놓쳤어요. 1700년대 필사본이라 어영부영하는 사이에. 내내 그 지도가 가슴속에 남아있었는데, 그러다가 꿈에도 생각 못했는데 다시 제게 돌아왔죠. 이번엔 필사본뿐만 아니라 원본까지도. 오랜 인연을 맺은 상인 덕이었지만 하늘이 나를 도왔다는 느낌이 더 강했죠.”

그는 한·중, 한·일 간 사료는 자신이 가장 많이 갖고 있다고 자부한다. 때문에 이들 나라와의 영토·역사 분쟁에 있어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의 영토 분쟁은 전쟁이었지만, 현재는 자료 싸움이기에.

“청나라나 일제의 굴욕 역사가 후대에 다시는 이어지지 않길 바랍니다. 지도를 들여다보노라면 그런 속삭임을 들을 수 있어요. 지도는 ‘보는 것이 아니라 읽는 것’입니다.”

웬 ‘East Sea’?…세계 지도 속에 ‘동해’ 각인시키자

대한민국을 주변국에 우뚝 서게 하기 위해 그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동해’의 복원 작업이다. 이미 그 자신 10여 년 전부터 ‘동해 찾기’ 운동을 지도를 통해 벌이고 있다. 그 결과 현재 발굴된 세계 고지도 중 ‘동해’로 표기된 지도가 과거 10%에서 30% 가까이 크게 늘어났다. 그에 따르면, 세계 지도 속에서 동해는 ‘East Sea’가 아닌 한국어를 영어식으로 표기한 ‘Donghae’가 돼야 한다. 더구나 1900년대 세계 지도만 해도 ‘일본해’란 표기 자체가 없었다. 그는 30여 명의 일본 학자들이 혜정박물관을 방문해 그의 설명을 듣고 직접 지도를 통해 이를 확인한 후 경악했다고 전한다.

“바다를 빼앗기면 육지도 빼앗긴다는 절박감으로 동해를 지켜야 합니다. 애국가 첫 구절이 ‘동해물과 백두산이’로 시작하는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동해야말로 삼국시대부터 내려온 우리의 국호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죽으면 동해의 용이 되어 왜병을 막겠으니 나를 동해 바다에 장사지내라’는 문무왕의 유언과 그에 따른 바다 무덤 댕바위(대왕바위)가 엄연히 실재하지 않습니까.”

그는 멀지 않은 미래에 ‘지도학과’를 만들었으면 한다. 정년이 보장되지 않는 2년 시한의 연구원으로 지도 연구 작업을 하기엔 턱없이 숨이 차기 때문이다.

“전문 인력을 키워내지 않으면 자료가 있어도 고양이에게 금덩어리를 주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정부와 지자체, 공기관 등과 뜻있는 이들이 역사 자료로서의 지도의 소중함을 인식하고 힘을 모아주길 바라는 거죠.”

지도는 한 장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궤를 따라 끊임없는 고리로 이어지는 역사적 산물이다. 지금 현재 어느 곳에선가 그려질 지도 역시 곧 역사의 한 장이 될 것이다. 오늘 우리가 지도를 새롭게 ‘읽어야’ 하는 책무감이 박물관을 나온 뒤 한참 후에도 묵직하게 어깨를 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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