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에 들어서자 트로트 음악이 흘러나온다. 삼삼오오 모여 즐거운 표정으로 담소를 나누고 있는 어르신들 사이로 극장 한쪽 귀퉁이에는 DJ 백성엽씨가 신청 받은 음악을 찾느라 분주하다.
8일 오후, 서울시내에서 유일한 단관극장으로 남았던 서대문구 미근동의 화양극장이 지난해 10월 실버 영화관으로 탈바꿈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갔다. ‘청춘극장’은 서울시가 7억여원을 투입해 꾸민 어르신 종합 문화공간이다. 주중에는 500명 이상, 토요일에는 1000명에 가까운 어르신들이 모여드는 명실상부한 어르신 놀이터로 자리매김했다.
청춘극장은 55세 이상의 어르신이면 누구나 1회 이용료 2000원을 내고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관람료가 아니라 입장료 개념으로, 저소득층 어르신들을 위해 구청에서 매달 초대권을 드리고 있어서 무료 입장도 가능하다. 간단한 음료와 팝콘은 무료로 제공된다. 곳곳에 마련된 쉼터에 앉아 책을 보고 차를 마시며 자유롭게 쉴 수도 있고, 어르신 상담센터에서 운영하는 요일별 운영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다.
“영화 정말 재밌었지?”(양승녀·64·서울 전농동)
“응, 옛날 생각 많이 나더라. 옛날에 고생하며 살아온 것 다 보상받는 기분이야.”(노광임·59·서울 수유동)
상영관 입구에서 늦깎이 여고생 4인방을 만났다. 방송통신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동년배 친구들이다. 오숙희(59·서울 화곡동)씨는 “영화도 자주 보고 문화생활을 즐기고 싶었지만 어디를 가나 젊은 사람만 많아서 불편한 경우도 많았다”며 “여기 오니까 편하고 좋다”고 말했다. 그러자 친구 양영자(59·서울 전농동)씨도 “나보다 나이 많은 어르신들이 일하시는데 오히려 더 친절하시다. 반갑게 맞아주시고 자리도 모르면 안내해 주신다”고 맞장구를 쳤다.
청춘극장에서 일하는 이들도 모두 어르신이다. 오전·오후반으로 나눠 스무 명 남짓의 어르신들이 ‘어르신 도우미’라는 명찰을 달고 근무한다. ‘기쁨조’라는 별칭까지 생긴 분위기 메이커 백봉현(72)씨는 청춘극장에서 팝콘을 튀기는 역할을 맡았다. 하루에 500~600인분을 만드는 그는 일을 시작한 지 약 4개월 만에 벌써 ‘팝콘의 달인’이 다 됐다. 그는 “여기 오면 봉사하는 재미도 있고, 친구를 사귈 수도 있어 즐겁다. 어르신들이 밝은 표정으로 기뻐하시면 더 보람을 느낀다. 살맛나는 인생이다”라며 웃었다.
영화는 하루 2회 상영되며 중간 휴식시간에는 어르신들을 위한 공연과 연주회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날은 웃음치료 수업이 열렸다. “돌려라~ 돌려라~ 신나게 돌려라~” 웃음치료사 노연우씨가 노래와 함께 손을 배 위에 대고 뱅글뱅글 돌리는 맷돌체조를 선보이자, 상영관 내에 있던 200여 명의 어르신들이 일제히 따라서 춤을 추기 시작한다. 가장 열심히 동작을 따라하던 전우억(77·서울 수유동)씨는 “몸은 생각처럼 안 움직이지만, 그래도 열정적으로 따라하려고 한다”며 “기분이 좋다. 마음만은 청춘이다”라고 활기차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