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혜화, 동’(감독 민용근, 제작 비밀의화원, 배급 ㈜인디스토리)은 버려진 것에 대한 이야기다. 혜화는 사랑했던 사람에게 버림받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 아이도 죽었다 믿기에 자신의 기억마저 버리고 산다. 그렇지만 버리지 못하는 것도 있다. 동물병원에서 일하면서는 버려진 개들을 돌보고, 5년간 잘랐던 손톱도 모아둔다. 미혼모, 유기견 등 어둡고 잔인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영화에는 소외되고 버려진 것들에 대한 극진한 연민이 느껴져 오히려 온기가 감돈다.
영화는 여주인공 혜화의 호흡과 함께한다. 대부분의 내용이 혜화의 시선에서, 혜화의 이야기로 구성된다. 그러나 정작 혜화는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가슴 깊숙이 숨긴 감정을 쉽게 내색하지 않는 그녀가 유일하게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 바로 눈이다. 민용근 감독은 눈동자의 떨림까지 포착해낸 감성 클로즈업으로 그녀의 감정을 섬세하게 전달한다.
여기서 신예 유다인의 진가가 빛을 발한다. 가슴속 묻어 둔 상처를 스스로 보듬고 견디는 혜화역을 열연한 그는 신인답지 않은 절제되고 섬세한 연기를 선보였다. 또래보다 깊은 눈동자를 가져 더 애절하게 느껴지는 혜화의 마음을 특유의 묵직하고 진중한 표정으로 표현한 것. 유다인은 이 영화로 ‘서울 독립영화제 2010’에서 독립스타상-배우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많은 이들이 ‘혜화, 동’이라는 제목을 보고 ‘혜화동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닐까’라고 유추하지만, 영화의 제목은 생각 이상으로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시리고 공허한 겨울의 모습이 혜화의 심리를 대변할 때 제목은 ‘혜화, 冬’(겨울 동)으로 읽힌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아이를 만났지만, 하루밖에 함께 있을 수 없어 더욱 절절한 혜화의 모성은 제목의 의미를 ‘혜화, 童’(아이 동)으로 바꾼다. 결국 서로의 관계를 다시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지만, 함께 아프고 힘들고 희망을 가지는 혜화와 한수의 마음이 표현되면서 제목은 ‘혜화, 同’(같을 동)이 된다.
김남희 / 여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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