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가 끝나자마자 대한민국 정치가 요동치고 있다. 개헌과 수조원대 예산이 투입되는 과학비즈니스벨트 등 대형 국책사업 유치를 둘러싸고 여야, 친이-친박 간에 갈등이 증폭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정치권의 갈등은 어느 정도 이명박 대통령(MB)이 부추긴 면이 있다.

MB는 설 연휴 직전에 가진 신년 방송 좌담회에서 헌법 개정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권력구조뿐만 아니라 “21세기에 맞는 미래 환경 지향적으로 헌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면서 남녀 동등권, 기후 분야, 남북 관련 문제 등도 손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구나 개헌 시기의 비현실성에 대해서는 “17대 국회부터 연구한 것이 많기 때문에 개헌 논의는 늦지 않았고 적절하다”고 했다. 대통령의 개헌 필요성 제기로 한나라당의 개헌 논쟁에 불이 붙었다.

한나라당은 설 연휴 직후 이틀간의 개헌 의총을 통해 개헌 문제를 논의했고, 당내에 개헌 특별기구를 구성하기로 의결했다. 하지만 최종 특별기구 구성까지는 상당한 진통이 따를 것 같고, 개헌의 내용과 폭, 방향 등에 대해 친이-친박별로 이해관계가 엇갈려 단일안을 도출해낼 수 있을지 미지수다.

개헌보다 더 심각한 것은 과학비즈니스벨트 입지 선정을 둘러싼 갈등이다. MB는 방송 좌담회에서 “‘과학벨트’는 (선정)위원회에서 충분히 검토하고 토론하고 그 이후에 결정될 것”이라며 “그 이전에는 그 문제를 갖고 어느 누구도 이야기할 수 있는 입장이 없다”고 강조했다. 지난 대선에서 약속했던 충청권 과학벨트 공약을 전면 백지화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것이다. 이로 인해 충청권과 야당의 격렬한 반발을 야기했을 뿐만 아니라 한나라당 내부의 분란도 격화시켰다. 전 대전시장 출신인 박성효 최고 위원은 “대통령이 공약을 백지화함으로써 충청 민심이 분노하고 있다”면서 “일하는 대통령에서 나아가 이제는 믿을 수 있는 대통령이 되길 바란다”고 MB를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여하튼 과학벨트 유치전에는 충청권뿐 아니라 대구·경북·울산, 광주·전남, 경기, 경남 창원 등 다양한 지방자치단체가 뛰어들었기 때문에 정치권 갈등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들 간 갈등으로까지 번질 개연성이 크다.

MB는 올해 1월 3일 신년 연설에서 안보와 경제를 올해 국정 운영의 두 축으로 하고 경제운영의 3대 목표로는 5%대의 고성장, 3% 수준의 물가 안정, 양질의 일자리 창출과 서민 중산층 생활 향상을 제시했다. 그런데 정부가 스스로 자초한 정치 갈등으로 형성된 척박한 정치환경 속에서 과연 이런 목표가 달성될 수 있을지 심히 걱정된다. MB는 방송 좌담회에서 “나는 경력이 정치인 출신이 아니고 일하면서 살아왔다. 과거의 오랜 정치적 관습과 다른 시도를 해왔다”고 언급했다. 이 발언 속에는 정치권에 대한 강한 불만과 비판적 인식이 드러난다.

그런데 MB가 자신의 말대로 “올해가 정말로 일을 많이 할 수 있는 해”가 되기 위해서는 정치를 피하지 말고 진짜 정치를 해야 한다. 대통령 중심제 국가에서 대통령이 정치의 최정점에 서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다. 대통령이 정치가 더럽고 비생산적이라면서 피하면 피할수록 갈등이 조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증폭되는 역설을 맞게 된다. 집권 4년차를 맞는 MB가 진정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정치를 하고 싶다면 다산 정약용의 말씀을 깊이 음미할 필요가 있다.

“정치란 정당하고 바르게 해주는 일이자 우리 국민이 고르게 살도록 해주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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