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조업무는 여성에게, 대외업무는 남성에게” 채용차별 불인정은 유감

형식적으로 볼 때는 남녀를 동일하게 대우하는 제도를 가지고 있으나 그 기준 자체를 여성이 충족하기 어려워 결과적으로 여성에게 불리한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가 있다. 이를 여성에 대한 ‘간접차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간접차별은 제도적으로는 평등하고 공정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그 당부를 가리기가 쉽지 않다. 그 중 아래에 소개할 판결은 이러한 간접차별을 인정한 첫 사례로 꼽힌다.

1985년 한국전기공사협회에 행정직 6직급으로 입사한 정모씨는 2001년 12월 31일 ‘5직급의 정년은 40세’라는 취업 규정에 의해 승진 직후 강제 퇴직 처리됐다. 정씨는 2002년 1월 30일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직위해제 및 부당해고구제신청을 제기했으나 기각됐고, 이후 중앙노동위원회와 행정법원에서도 패소했다. 그러나 고등법원은 정씨의 손을 들어주었고 2006년 7월 28일 대법원도 마찬가지의 결론(대법원 2006두3476 판결)을 내렸다. 퇴직 처리된 지 5년 반이 지난 후에야 부당해고가 인정된 것이다.

정씨의 주장은 다음과 같았다.

1. 협회는 채용 시부터 여성은 6직급, 남성은 5직급으로 채용했으므로 채용에 있어서의 차별이다.

2. 협회는 1986년 9월 1일 상용직제를 신설하면서 10년간 승진을 할 수 없도록 규정을 만들고 6직급을 상용직으로 변경했는데 결국 6직급은 다시 직제가 개편된 1996년 11월 14일까지 10년 이상 승진 기회가 박탈되고 결과적으로 15년 이상이 지나야 승진하게 됐으므로 이는 승진에 있어서의 차별이다.

3. 정년에 있어서 남성 근로자의 경우 3~4년이 지나면 직급승진을 하기 때문에 전원이 4직급 이상으로 승진해 45세 이상의 정년이 적용되나, 여성 근로자들은 최소 15년 이상이 돼야 승진하기 때문에 4직급으로 승진하기 위한 최소 근무 연수 경과 전 40세가 도달함에 따라 결과적으로 여성 근로자들에게만 40세의 조기정년이 적용되고 있으므로 이러한 직급별 차등정년제도(하위직급에 있어서의 조기정년제도)는 관계법령에 반해 무효다.

이 주장은 1심에서는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1. 과거의 행정직 6직급은 담당업무의 보조적 성질 및 상대적으로 낮은 보수 때문에 주로 여성이, 전문지식과 소양이 필요한 행정직 5직급은 잦은 출장과 순환보직에 따른 지사근무를 하는 관계로 주로 남자가 추천돼 왔던 것이므로 채용에 있어서 차별이 아니다.

2. 6직급이나 상용직이 사실상 모두 여성 근로자로만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직제개편 및 직군 간 이동 제한은 사무보조원이라는 업무의 특성에 기인한 것이어서 불합리하다고 할 수 없으며, 모 협회가 직제규정을 개정해 1996년 11월 15일(여성들을 상용직으로 개편한 지 10년 후)부터 상용직을 ‘행정·기술직군’의 6직급으로 재개편하고 그 6직급에 대한 승진도 실시하므로 승진에 있어서 차별이 아니다.

3. 협회에는 직급별 정년이 있을 뿐 남녀의 정년을 차별해 정하고 있지 않고, 대다수의 여성 근로자는 정년이 되기 전 퇴직했고, 노동조합에서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으며, 과거의 6직급이 승진 가능성이 닫혀 있었던 것은 사무보조 업무의 특성에 기인한 것이었다는 여러 사정을 감안할 때 정년규정 역시 차별이 아니다.

1심의 판단을 다소 장황하게 기재한 이유는 법률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보더라도 1심 판결의 논거가 상당히 성차별적인 것임을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고등법원에서는 채용에 있어서의 차별은 1심과 마찬가지로 인정하지 않았으나, 상용직으로의 직제 개편과 그로 인한 정년 규정의 적용에 대해서는 차별이라고 판단했다. 대법원 역시 이러한 고등법원의 판단을 그대로 인정했다. 이 판단은 협회의 규정 자체에서 남녀를 차별하고 있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여성만이 있는 6직급을 10여 년간 승진이 제한되는 상용직으로 직제변경 하고, 15년 만에 5직급으로 승진하여 40세 정년으로 퇴직하게 한 행위 자체가 ‘결과적으로 여성 근로자인 원고의 승진 및 정년을 차별’한 행위에 해당한다고 인정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결국 간접차별 역시 법적으로 금지되는 차별에 해당함을 명백히했다는 것이다. 

아쉬운 것은 채용에 있어서의 판단은 1심 판결에서 바뀌지 않았다는 점이다. 즉 보조업무는 여성에게 적합한 업무로, 대외업무를 수행하는 것은 남성에게 적합한 업무로 규정해 채용에 있어서의 차별을 인정하지 않은 점이다. 성차별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노동분쟁의 사례가 많은 것이 아니지만 차후 유사 사건이 재발할 경우 채용차별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차별을 해소해줄 만한 법원의 판결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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