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정책심의위원회는 국무총리 직속의 여성정책 심의·조정기구였다. 관계 부처 장관들과 민간위원들이 참석하는 이 회의에서는 몇 가지 공식적인 안건을 처리한 후 위원들과 비공식 환담을 나누기도 했다.

1992년 3월 21일 정원식 국무총리 주재로 제11차 여성정책심의위원회가 열렸다. 그 날도 안건 심의가 끝나고 자연스레 환담이 오갔다. 민간위원 한 분이 요즘 주부의 가사노동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얘기를 꺼냈다. 주부의 가사노동 가치를 인정하고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하자 총리는 가사노동 가치를 인정하고 평가하자면 누가 주부에게 월급을 주는 것이냐고 물었다. 남편이 월급을 줘야 되는 거 아니냐고 되물었다. 좌중에 웃음보가 터졌다. 이때다 싶었는지 민간위원들은 총리를 비롯해 경제기획원 장관 등 관계 부처 장관들에게 주부의 가사노동은 사회와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므로 이에 대한 경제적 가치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한마디씩 거들었다.

주부의 가사노동 가치를 인정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노력은 1990년 1월 가족법 개정을 계기로 가속화됐다. 개정 가족법에 이혼 시 배우자 쌍방의 기여에 따라 재산분할을 청구할 수 있는 권한이 신설되면서 새 가족법의 정착을 위해 정무장관(제2)실에서 1990년 ‘주부의 가사노동 가치와 세제 개선방안에 관한 연구’를 수행한 것이 처음이고, 1991년에는 ‘주부의 가사노동 가치와 결정 요인에 관한 연구’를 통해 결혼지속연수, 가구소득, 대체적 임금수준, 기회비용, 요구임금 등을 고려한 가사노동 가치 최적평가모형식을 고안했다. 이에 따라 주부의 가사노동 가치는 월평균 54만5077~64만4408원으로 최초로 계산됐다.

이후 주부 가사노동 가치의 합리적 산출 및 공적기준을 반영하고자 1993년 보험제도의 개선과 관련해 ‘주부 가사노동의 소득인정 기준 설정방안 모색’과 남녀평등의 부부재산권 확립을 위한 ‘세제 면에서의 보완방안’ 연구가 해당 분야 전문가들에 의해 각기 수행됐다. 이러한 노력은 1997년 5월 정무장관(제2)실과 유엔개발계획(UNDP)이 공동 개최한 ‘여성의 무보수 가사노동 가치 평가에 관한 국제 워크숍’으로 이어진다. 이 워크숍에는 재정경제원과 통계청, 한국은행 관계자들이 대거 참석해 가사노동의 가치평가방법, 국내총생산(GDP)에의 반영, 국가정책에의 통합 등을 토의했다.

그리고 마침내 1999년 통계청에서는 대규모 가사노동 시간 조사를 포함하는 국민생활시간조사를 최초로 실시했다. 한편, 여성부(2001년)와 여성가족부(2005년)에 들어와서도 여성의 무급 가사노동의 가치 평가와 가계생산의 국민소득계정 통합을 위한 위성계정 개발 노력을 지속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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