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삶을 문학 속으로 끌어들였다”

 이경자 소설가

“여성작가 대거 진출의 물꼬 터줬다”

‘절반의 실패’의 작가 이경자씨는 “우리 문학사 중 최초로 대중 여성의 생활과 생활감정을 표현해냄으로써 여기에 존엄성을 부여했다”는 것으로 박완서 문학의 본질을 꼽았다.

“선생님 작품활동 초기에 문단에선 일단의 문학주의자들이 ‘문학에서 커피 냄새가 나야 하는데 된장 냄새가 난다’고 비웃었지만, 결국 선생님의 작업은 그동안 비문학적인 것으로 폄하됐던 여성 삶의 현실을 문학의 세계 안으로 끌어들였다. 여기에 평론가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여성 작가들이 대거 진출하는 물꼬를 터준 셈이다.”

그는 “여성주의 씨앗이 ‘평등’이라면 그런 면에서 선생님은 더할 나위 없는 여성주의자로, 권력을 극도로 혐오하셨고, 또 그에 걸맞게 처신하셨다”고 회고했다.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

“글로 자연스럽게 여성운동 하고 싶어했던 사람”

한국 최초의 여성 대사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서양사학)는 “언젠가 선생으로부터 ‘여성운동 하고 싶다’는 말을 스치듯 들은 적이 있다. 선생이 생각하는 여성운동 방식은 공중에 떠다니는 구호 같은 그런 종류의 운동이 아니라 여성 삶의 조건을 자연스럽게 그려내는 것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선생은 우리 역사의 아픔을 몸소 다 체험하면서 성장했기에 무엇이 우리 삶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인지 끊임없이 고민했고, 어디 어려운 데가 있다면 좌우 이념에 관계없이 잠깐씩 나서서 소리 없이 돕고 가곤 했다”고 회상했다.

여성학자 박혜란 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 이사장과 박완서 선생의 인연은 각별하다. 1970년 ‘나목’으로 여성동아를 통해 등단했을 당시 합격의 소식을 알리려 자택으로 찾아갔던 스물다섯 살의 젊은 여기자가 바로 그였다. 이후 선생의 등단 나이와 비슷한 나이에 여성학자로 새 출발을 한 그는 선생의 환갑 기념 심포지엄에서 여성주의 시각에서 선생의 작품을 재분석해 주목을 끌었다. 그는 “선생님은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라고 하시곤 했지만 세태를 파헤치고 약자인 여성의 억압 현실을 속속들이 그려내는 데 탁월했다”며 이런 그의 작품 성향이 “소외계층 편에 서서 약자의 따뜻한 시선을 견지하면서 또 불의에 분노하는” 성격과 통한다고 말한다.

 박혜란 여성학자

“약자를 향한 따뜻한 시선…여성 억압 현실 속속들이 파헤쳐”

선생의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을 무척 좋아한 나머지 한때 그 구절 하나하나를 노트에 복사해 다녔다는 신현림 시인은 선생에 대해 “우리 문학의 큰 기둥 같고 또 어머니 같으신 분”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신간을 낼 때마다 선생에게 책만 보내기 쑥스러워 자신이 애용하는 상표의 양말을 몇 켤레씩 함께 보내곤 했는데, 빈소에서 마주친 큰딸 호원숙씨로부터 “그 양말을 어머니가 참 좋아해 아껴 신으셨다”는 말을 전해 듣고 “그토록 친근하고 다정한 분이 돌아가셨다는 것이 지금도 실감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선생이 손수 기른 살구나무에서 딴 열매로 손수 만든 살구 잼을 후배 작가들에게 꾸준히 보내준 얘기는 아직도 그들에게 가슴 따뜻한  이야기로 남아 있다.

 신현림 시인

“아이 다 키워놓고 마흔에 데뷔…너무나 위대해”

그러나 작가 박완서가 후배 여성들에게 준 특별한, 그러나 가장 큰 위로는 그의 삶이 입증해낸 “늦는 법은 없다. 언제나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다”는 강력한 메시지다.

신현림 시인은 “한때 나도 선생님처럼 나이 마흔에 데뷔하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아이들을 다 키워놓고 다시 글쓰기에 도전했다는 것 자체가 정말 위대해 보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여성학자 박혜란씨는 “중심을 가지고 세상에 대한 도전으로 소녀같이 눈을 반짝이던 중년의 여성, 다섯 아이가 잠든 고요한 시간에 소반을 앞에 하고 마음을 다잡아 앉아 글을 쓰곤 했던 그런 여성은 그때까지 내가 보아왔던 작가들과는 전혀 다른 존재였다”고 회고한다.

지인들의 눈에 비친 선생의 삶은 그가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에 대해 언젠가 말한 “이건 대단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한 평범한 여자가 꿈을 못 버린 이야기입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꿈을 창출해내는 게 어찌 여자들만의 일이겠습니까. 인간의 운명이지요”를 강하게 연상시킨다.

주요 작품 연보

1971년  첫 단편 ‘세모’ 발표

1976년  창작집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발표

1977년  장편 ‘휘청거리는 오후’, 산문집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발표

1978년  장편 ‘배반의 여름’, 산문집 ‘여자와 남자가 있는 풍경’ 발표

1980년 ‘엄마의 말뚝’, 장편 ‘살아있는 날의 시작’ 발표,  ‘그 가을의 사흘동안’으로 제7회 한국문학작가상 수상

1981년 ‘엄마의 말뚝 2’로 제5회 이상문학상 수상

1985년  장편 ‘서 있는 여자’ 발표

1989년  장편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발표

1990년  산문집 ‘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 발표,  ‘미망’으로 대한민국문학상 수상

1991년   장편 ‘저문 날의 삽화’ 발표

1992년   장편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발표

1993년  ‘꿈꾸는 인큐베이터’로 제38회 현대문학상 수상

1994년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으로 제25회 동인문학상 수상

1997년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로  제5회 대산문학상 수상

1998년  보관문화훈장 받음, 장편 ‘너무도 쓸쓸한 당신’ 출간

1999년  만해문학상 수상, 산문집 ‘님이여 그 숲을 떠나지 마오’ 발표, ‘박완서 단편소설 전집’ 출간

2000년  장편 ‘아주 오래된 농담’ 출간

2001년 ‘그리움을 위하여’로 제1회 황순원문학상 수상

2004년  장편 ‘그 남자네 집’ 출간, 대한민국예술원 신입회원

2006년  제16회 호암예술상 수상, 장편 ‘잃어버린 여행가방’발표, 문학상 수상작 5편 엮은 ‘환각의 나비’ 출간

2007년  장편 ‘친절한 복희씨’, 산문집 ‘호미’ 발표

2008년  단편 ‘갱년기의 기나긴 하루’ 발표

2009년  장편 ‘세 가지 소원’, 동화집 ‘이 세상에 태어나길 참 잘했다’ ‘나 어릴 적에’, ‘문학동네’ 가을호에 단편 ‘빨갱이 바이러스’ 발표

2010년 ‘현대문학’ 창간 55주년 기념해 출간된 소설가 9인의 자전소설집 ‘석양을 등에 지고 그림자를 밟다’ 참여,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