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증명서가 면책특권을 갖고 아내를 강간하는 자격증일 수 없다”

최근에는 강간, 강제추행이라는 용어에 대신해 성폭행 또는 성폭력이라는 용어가 정착된 것 같다. 우리 사회가 성범죄를 더 이상 남성의 시각이 아닌 피해자인 여성의 시각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성폭행은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범죄이다. 성적 자기결정권이란 누구와 언제, 어떻게 성관계를 가질 것인가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그 상대가 배우자라고 하더라도 이 권리는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40년 전에 나온 대법원 판결로 인해 결혼한 여성에게는 성적 자기결정권이 보장되지 않았다. 이로 인해 부부 간의 강제적 성관계는 치외법권의 영역이 되었다. 피해여성들은 피해를 드러내지 못한 채 마음과 정신, 그리고 영혼에 깊은 상처를 가지고 살 수 밖에 없었다. 1960년대 말, 다른 여자와 동거하고 있는 남편을 간통죄로 고소한 여성이 남편에 대한 고소를 취하한 후에 여인숙으로 끌려가 2일간이나 감금당하고 약 1시간동안 폭행당한 후에 항거불능의 상태에서 남편에게 성폭행 당했다. 1심과 2심에서는 “둘 사이에는 서로 상대방에 대한 성교 승낙의 철회 내지 정조권 포기의 의사표시를 철회한 상태에 있었으므로 이러한 상태 하에서 폭력으로 그 반항을 억압하고 강제로 간음한 이상 강간죄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대법원(1970.3.10. 선고 70도29판결)은 “처가 다른 여자와 동거하고 있는 남편을 상대로 간통죄 고소와 이혼소송을 제기하였으나 그 후 부부간에 다시 새 출발을 하기로 약정하고 간통죄 고소를 취하하였다면 그들 사이에 실질적인 부부관계가 없다고 단정할 수 없으므로 설사 남편이 강제로 처를 간음하였다 하여도 강간죄는 성립하지 않는다” 고 했다. 실질적인 부부관계가 인정되면 배우자는 강간죄의 객체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2009년에도 대법원은 “혼인관계가 존속하는 상태에서 남편이 처의 의사에 반하여 폭행 또는 협박으로 성교행위를 한 경우 강간죄가 성립하는지 여부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적어도 당사자 사이에 혼인관계가 파탄되었을 뿐만 아니라 더 이상 혼인관계를 지속할 의사가 없고 이혼의사의 합치가 있어 실질적인 부부관계가 인정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면, 법률상의 배우자인 처도 강간죄의 객체가 된다”고 앞의 대법원 판결과 유사한 결론을 내리고 있다. 즉, 혼인관계가 파탄되는 등 실질적인 부부관계가 인정되지 않으면 부부강간이 인정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하급심이지만, 부부강간을 인정하는 판결들이 등장하고 있다. 2009년에 처음으로 부부강간을 인정한 부산지방법원( 2009.1.16. 선고,2008고합808)은 외국인 처가 생리기간 중이라는 신체적 사정을 들어 성관계를 거부하자 가스분사기와 과도를 피해자의 머리와 가슴에 겨누고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하여 처의 반항을 억압한 후 강제적인 성관계를 가져 특수강간 혐의로 기소된 피고에 대해 특수강간죄 성립을 인정했다. ‘자신의 부당한 욕구충족만을 위하여 아내의 정당한 성적 자기결정권의 행사를 무시하고 의심의 여지가 없는 폭력으로 강간을 자행한 것으로, 현재 피해자와 그 혼인관계의 실질이 유지되고 있는지의 여부를 떠나 특수강간죄’가 적용된다는 것이다. 우리 형법은 강간죄의 객체를 ‘부녀’로 규정하고 있을 뿐 강간죄의 피해자를 가해자와의 관계로 구별하고 있지 않다. 아내가 ‘부녀’에 해당되는 한, 실질적 부부관계에 있는 배우자라고 하더라도 그에 의한 강간은 충분히 성립될 수 있다. 결혼은 일반적으로 성관계를 전제로 하고, 부부간에는 동거의무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남편의 성적 요구를 언제나 어떠한 상황에서나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부부간의 성관계는 두 사람의 애정과 신뢰를 확인하는 수단이고 성적자기결정권은 기본적 인권이다. 이는 부부간에도 존중되어야 한다. 부부라도 폭력적인 성관계를 유지할 의무는 어떤 경우에라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혼인증명서가 면책특권을 갖고 아내를 강간하는 자격증일 수 없다. 기혼여성도 미혼여성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신체를 통제할 권리를 지닌다”(People v. Liberta Case)는 것이다. 선진 외국에서는 1980년대부터 아내강간을 인정하고 있고, 1999년 유엔인권위원회와 2007년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각각 한국에서 아내강간을 범죄로 인정하지 않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시한 바 있다. 부부강간에 대한 하급심의 변화에 대해 대법원이 긍정적으로 답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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