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의 시기 여성운동 16년 외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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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 대표로 좋은 리더들이 정해진 상태에서 여성연합을 그만두게 돼서 홀가분하고 흐뭇하다. 지금 생각하면 부족한 점도 있었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것은 그럭저럭 최선을 다해 해왔다.”

지난 12일 열린 한국여성단체연합(여성연합) 공동대표 이·취임식을 통해 16년간 전방위로 뛰었던 둥지를 공식적으로 떠난 남윤인순(54·사진) 전 대표. 혹자가 말하듯 마치 로봇 태권V처럼 그를 필요로 하는 현장엔 언제나 숨 가쁘게 달려가곤 했다. 이런 그를 두고 후배들은 ‘여성운동계의 소피아 로렌’이란 애칭과 함께 “격동기에 여성운동 기반을 닦고 센터까지 마련해 다음 세대의 물적 기반을 마련했다”고 평가한다. 

그 자신 “그럭저럭 최선을 다했다”고 말하지만 그의 여성운동 여정은 한국 여성운동사의 격동기와 정확히 겹쳐진다. ‘여성인권’ 관련 법인 가정폭력방지법 성폭력특별법 성매매방지법이 만들어졌고, ‘여성부’가 출범했으며, 급기야 호주제가 폐지됐던 시기였다. 여성연합 차원에선 장충동 여성평화의집을 떠나 영등포에 ‘여성미래센터’를 건립함으로써 지속가능한 발전의 토대를 마련하기도 했다.

“그 시기는 일단 여성운동의 방향이 설정되면 사회적·정책적 합의가 활발히 이뤄지던 때였다. 현재의 여성 관련 법이 대부분 제도화됐고, 성인지예산제도 성별영향평가 등의 여성정책의 효율적 도구도 다 갖춰졌다. 그래서 여성정책의 주도화, 성주류화 정책이 좀 더 완성도 높은 단계로 접어들어야 할 시점인데….”

그는 이 부분에서 “보수정권이 들어서면서 이제껏 여성운동이 이루어놓은 제반 기반들이 제 역할을 못하는 건 아닐까”란 회의와 함께 “이젠 이런 것은 NGO 능력 밖의 일”이라고 안타까워 했다. 여기에 또 하나 덧붙여지는 요인으로 과거·현재 정권과 별개로 지난 10여 년간 우리 사회가 신자유주의 흐름 속에서 양극화가 너무나 심하게 진행돼 왔다는 문제도 꼽는다. 때문에 “여성 빈곤과 일자리에 있어 운동가로서 뚜렷한 답을 찾지 못했다”는 자괴감 역시 피할 수 없다.

그에게 물어보았다. 근래 여성주간이나 신년 여성인사회 등 진보·보수 여성계를 막론하고 다양한 여성 인사들이 다 모일 수 있는 현장에서 현저하게 이분화된 여성계의 모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그는 정부가 통합이 아닌 배제의 정치를 하는 것은 아닌지, 그 결과 ‘반쪽’ 여론이 여성계 전체의 인식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닌지 우려했다. 과거 호주제 폐지나 여성할당제처럼 ‘연대’ 어젠다는 없을까.

“여성의 일할 권리, 돌봄노동의 경감 등 일·가족 양립 어젠다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문제다. 그러나 보수 여성운동계의 ‘출산이 애국이다’ 식의 논리를 앞세우면 출발 방향부터 우리와 달라진다. 출산은 여성노동권과 떼어내 생각할 수 없으며, 이 부분을 확대해가는 방향으로 가야 하는 것이다.”

향후 진로에 대해 묻자 그는 “우선 짧은 기간이나마 재충전부터”라며 손사래를 친다. 그렇지 않아도 이임식 직후 ㈔여성인권을지원하는사람들의 제주도 워크숍을 따라나서서 탈북 여성들과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누고 어느덧 대학을 졸업한 딸과 함께 여행을 떠나는 등 오랜만의 여유를 즐기고 있다. 하지만 내년의 총선과 대선, 그리고 2014년의 지방선거를 생각하면 마음 놓고 푹 쉴 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요즘 고민은 정권을 막론하고 정치 권력과 기득권 세력의 부조리에 맞설 수 있는 시민세력을 조직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 아니냐는 것이다. 때론 시민세력의 조직화에 비하면 단체의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약할 정도다. 그래서 앞으론 보다 많은 시민들을 만나보고 우리 사회의 중요한 방향, 즉 민주주의, 민생, 남북관계 등에 대해 깊은 얘기를 나누고 싶다. 이를 통해 시민교육과 함께 시민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캠페인도 벌여보고 싶다. 민주화 경험 세대, 소셜네트워크 세대, 풀뿌리운동 조직과 서로 소통하고 새로운 세상에 대해 얘기하고 또 꿈꾸고 싶다.”

수도여자사범대(현 세종대) 국어국문학과에서 공부하며 교사를 꿈꾸었던 남윤인순 전 대표는 학내 민주화운동으로 강제 퇴학당한 후 노동운동을 시작, 1989년 인천여성노동자회 창립에 참여했고, 1994년 여성연합 사무국장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여성운동과 관계를 맺었다. 남편은 서주원 인천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로, 부부 운동가로도 익히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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