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님 예언자 ‘티레시아스’ 역에 열중
“장중한 서사가 아닌 우리들의 얘기”

 

지난해 7월 ‘재단법인’으로 새롭게 출발한 국립극단(예술감독 손진책)이 새해 벽두 창단 기념공연으로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연출 한태숙)를 택했다. 주인공 오이디푸스를 비롯해 총 5명의 비중 있는 배역 중 배우 박정자의 존재감은 컸다. 장님 예언자 티레시아스 역을 맡은 그는 비록 15분간 한 신에 등장하는 것에 불과하지만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리라는 신탁을 믿지 못하고 항변하는 오이디푸스에게 비수처럼 날카롭고 정확한 대사를 날린다. “눈먼 자는 바로 당신이야”라고. 극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 의식이자 오이디푸스뿐만 아니라 관객에게도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는 대사다.

20일부터 2월 13일까지 명동예술극장 무대에 올려지는 ‘오이디푸스’ 공연 연습에 한창인 박정자씨를 4일 오후 서울역 뒤 서계동 옛 기무사 수송대 자리에 들어선 국립극단에서 만났다. 넓은 운동장을 사이에 두고 어우러진 밝은 빨강 건물 세 채를 배경으로 미처 치우지 못한 눈밭 위에서 수줍게 웃는 대배우. 올해 일흔이란 나이와 함께 내년이면 무대 인생 50주년을 맞는다는 사실이 좀체 믿어지지 않았다.

“나이를 먹으니 연출자의  말이 더 잘 들려”

“티레시아스 역할을 할 때 강렬하게 예언자 연기를 맘껏 하고 싶을 때가 있는데, 객관적 입장에서 봐야 하는 연출자는 자꾸 내 그런 욕구를 눌러요. 선생님 여기는 더 낮아지셨으면 좋겠고, 오이디푸스보다 너무 우월해서도 안 되고 그런 역할이라며. 그런데 젊었을 때는 그런 연출자의 말이 잘 안 들어왔어요. 자아가 강해서. 그런데 나이를 먹으면서 보니 한 50대부터인가, 이제는 저런 말을 들어야지 하는 마음이 드는 거예요. 이제 철이 나는 거죠.”

그는 지난 연말 한국마사회(KRA)의 경마수익금을 재원으로 하는 ‘농촌희망재단’의 첫 기획공연으로 창작 뮤지컬 ‘어머니의 노래’를 들고 인구 5만 명이 채 안 되는 시·군을 대상으로 30여 회에 걸친 무료 순회공연을 다녀왔다.

작품이 6·25전쟁, 베트남전쟁 등 우리의 현대사에 얽힌 어머니의 인생이라서, 또 그가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 ‘굿나잇 마더’ 등 어머니 역에 능한 배우라서 공연이 끝난 후 어머니에 대한 단상은 각별할 듯했다. 그러나 의외로 “어머니는 동서고금이 없어요. 어머니는 어머니이면서 여성이면서 할머니로 완성되는 거지. 왜냐하면 그때가 인생의 마지막이니까”라는 말로 덤덤하게 어머니의 존재를 버무렸다.

오히려 세 번은 연극으로, 한 번은 뮤지컬로 무대에 올릴 만큼 애착을 가지고 있는 ‘19 그리고 80’의 주인공 할머니 ‘모드’를 삶의 이상형으로 꼽을 정도로 나이 듦을 즐기고 있다. 오죽하면 “올해 딱 칠십이 됐어요. 난 만으로 안 치거든요. 아주 좋아요. 그래서 지인들에게 나 좀 축하 안 해줄래 하고 다녀요”라고 한다.

“할머니 모드가 사실은 나의 모델이에요. 정말 그렇게 살고 싶어요. 자기가 가진 건 아무것도 없죠. 사랑과 지혜만 있을 뿐이야. 팔십은 세상에서 가장 성숙한 나이라고 생각해요. 그건 사십도 육십도 칠십도 아닌, 내가 볼 때 가장 완성된 나이라고 생각해요. 모드는 자신의 생일날 약을 먹죠. 겉으로 보기엔 자살일지 모르지만 나는 새로운 지평선을 향해 떠난다, 이거죠. 그것조차 선택이에요. 이 작품을 본 사람들이 ‘아니 웬 할머니가 이렇게 귀여워?’ 하는데 나는 이렇게 말해요. 모든 할머니는 귀엽다고.”

그는 나이 들어가면서 “내가 힘들게 가야 할 그 길이 조금 단축되는 것 같은 느낌 때문에 약간 홀가분한 느낌”도 즐긴다. 반면 무대는 더한 공포로 다가온다. 대사 암기력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신체적으로 에너지 면에서 여러 가지가 퇴화하는 느낌이 두렵다. 이런 그에게 지난해 12월 27일 국내에선 처음으로 배우의 이름을 딴 ‘백성희장민호 극장’ 현판식은 감동 이상이었다.

“그날 장민호 선생님은 ‘파우스트’ 중의 대사 한 대목을 하셨고, 백성희 선생님은 ‘달집’이라는 노경식씨 창작극 중 한 대목을 하셨죠. 달집은 우연히도 젊은 날 명동에서 보고 반한 연극이었죠. 그날 주체할 수 없이 막 눈물이 나서 혼났어요. 그게 슬퍼서가 아니라 선생님들이 너무 자랑스럽고 고마워서요. 그 선생님들이 계신 게 너무 감사해서죠. 리셉션도 안 가고 집으로 돌아왔어요. 그냥 그 기분을 간직하고 싶어서. 더불어 내가 연극배우라는 게 참 행복했어요. 3월에 두 분이 함께 오를 무대가 기대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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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건 할 줄 모르는 바보라 외길 인생 걸었어요”

그는 자신이 연극의 길로 들어선 것을 생각하면 운명의 힘을 믿지 않을 수 없다. 6·25전쟁이 발발한 1950년 아홉 살 나이에 신협 활동을 했던 큰오빠를 따라 유치진 원작·연출의 ‘원술랑’을 당시 부민관에서 접하게 된 것이 그러하다. 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원술랑의 무대가 눈에 선하다. 원술랑을 계기로 김동원 최은희 백성희 장민호 나옥주 등 쟁쟁한 배우들을 보면서 “저절로, 그 운명의 길을 하나도 걸릴 것 없이 쭉 걸어왔다”는 것.

“다른 건 할 줄 몰라요. 스스로 다른 사회생활을 하기에는 미성숙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항상 난 좀 부족해요. 나를 아는 사람들은 ‘어유, 참 바보야’ 이래요. 그런데 나는 바보라는 소릴 들어도 화가 안 나고 부끄럽지도 않아요. 차라리 바보인 게 축복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너무 똑똑한 사람들이 많아서 그 안에서 키 재기를 해야 하면 내가 어떻게 살겠어요? 그래서 이 길로 쭉 오게 해준 나의 바보스러움에 대해 감사해요.”

최근에 그는 바쁜 틈을 쪼개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지인과 영화 두 편을 봤다. 하나는 슈만의 아내 클라라의 삶을 다룬 독일 영화 ‘클라라’였고, 또 하나는 3D 블록버스터인 ‘트론’이었다. 후자에 대해선 영 실망이었다. 그러면서 자신이 철저히 ‘아날로그’적 임을 절감했다. 

“트론? 이게 왜 난리죠? 난 미래가 싫은데 왜 이런 영화를 보자고 데려갔느냐고 친구한테 막 타박했죠. 나를 정화시키고 감동시킬 무언가가 필요했거든요. 나는 예술은 감동을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런 감성 때문에 그에겐 연극이 갖는 의미가 더더욱 소중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소중함이 대중과 공유되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연극은 항상 라이브죠. 이 점이 영화나 TV와는 달라요. 라이브니 관객은 ‘힘들게’ 지하철 타고 버스 타고 극장 현장에 와야 하고 극장에 와선 나 외의 다른 사람과 같은 공간에 앉아 집단 심리를 느껴야 해요. 관객은 한 편의 연극을 보면서 작가, 연출가, 배우가 되고 모든 것을 스스로 해볼 수 있죠. 무엇보다 무대를 사이에 두고 직접 마주하며 배우의 심장박동을 느낄 수 있고, 필름 속 박제된 눈빛이 아닌 살아있는 눈빛을 만나죠.” 

그는 5월이면 한국연극인복지재단을 맡아 초대 이사장으로 활동한 지 만 6년이 된다. “우리 사회가 좋은 배우들을 품을 수 없는 환경이란 것이 슬프고, 좋은 배우로 나이 먹어 갈 수 있는 구조가 안 되는 것이 아쉽기에” 시작한 일이다. 그래서 후배 손숙, 윤석화 등이 후임을 맡아 한층 발전시켜 주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출판·전시회 등 2012년 데뷔 50주년 준비도

일흔의 나이에도 그의 올해 일정은 여전히 분주하다. 5월에는 안중근 의사의 일생을 다룬 ‘나는 너다’를, 9월에는 국내와 일본을 오가며 ‘바람의 정거장’을 할 계획이다. 연말로 접어들면 스스로 ‘박정자의 아름다운 프로젝트’로 명명한 ‘19 그리고 80’을 무대에 올리고 싶다.  그러면서 2012년 연극 인생 50주년을 맞는 자그마한 이벤트도 함께 생각 중이다. “아주 심플한 책도 한 권 내고, 출연작 동영상을 엮은 소박한 전시회”도 열고 싶지만 50주년 기념공연 같은 것은 쑥스러워 안 한단다. 혹자가 말했듯이 전혀 새로운 작품에 도전할지도 모르겠다. 바라기는, ‘19 그리고 80’만큼이나 그를 매혹시켜 90을 넘겨서도 여전히 무대 위에 올릴 수 있는 그런 작품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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