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매칭으로 일상생활 함께 하며 평생 또래 네트워크로 발전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평생 또래 친구’를 만들어줄 수 있는 장애우·비장애우 통합 프로그램이 현실적으로 가능할지를 가늠해보는 현장을 찾았다. 지난해 12월 18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장지동 한국육영학교 음악실에선 장애우·비장애우 학생들이 머리를 맞대고 트럼펫, 클라리넷, 바이올린 등 제각각 악기를 가지고 한창 연습 중이었다. 미국에서 시작된 일대일 또래 장애우·비장애우 통합 프로그램 ‘베스트 버디스’(Best Buddies) 한국 지부가 2009년 2월 아이코리아(회장 김태련) 산하에 설립된 것을 기념해 열리는 12월 23일의 창립기념 음악회를 위해서였다. 국제 베스트 버디스는 J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조카 앤서니 슈라이버가 1989년 설립한 비영리 국제 봉사단체로 관련 프로그램이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47개국 1400개 이상의 중·고등학교와 대학에서 운영되고 있다.
이날 연습에 나온 학생들은 한국육영학교·대원외고 총 6명. 베스트 버디스 한국 지부는 지난해 3월부터 아이코리아가 지적장애나 정서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위해 운영하는 특수학교 육영학교와 일반고인 대원외고를 첫 시범학교로 지정, 장애우·비장애우 학생 간 월 2회의 개별적 만남, 주 1회의 전화 통화나 문자 교환, 학기당 1회 전체 그룹 활동을 진행해왔다. 이제까지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은 육영학교 8명, 대원외고 11명으로 아직까지 1명도 탈락하지 않고 순항 중이다.
육영학교·대원외고 20여 명 참가
베스트 버디스 프로그램에서 참여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가장 의미 있게 생각하는 것은 이들이 서로 어울려 소소한 활동을 함께 한다는 것.
‘트럼펫’을 매개로 하여 육영학교 1학년 준우군과 짝이 된 대원외고 2학년 승석군. “연년생 형제라 집에선 치고받고 하면서 남 생각할 겨를이 없는데 이번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내가 이런 행동을 하면 남이 어떻게 받아들일까’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고도 전한다. 준우군은 “앞으로 베스트 버디스 일본, 베스트 버디스 중국이 계속 생겨날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어른스러운 바람도 전했다.
베스트 버디스 육영학교 대표로 중학교 때부터 플루트를 해온 최보라양은 내년 2월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이미 강동우체국에 취직한 상태다. 베스트 버디스를 통해 맺어진 짝꿍과 테크노마트에 가서 함께 영화를 보고 점심을 먹으며 “보라 언니”라 불러주는 것을 “환상적으로 좋아한다”고 옆에 있던 엄마 이정현씨는 전한다. 수민(대원외고 2학년)양은 ‘서로 다른’ 친구와의 만남에서 첫 순간의 어려움을 잘 넘긴 것이 지금도 기쁘다.
세계 47번째로 아이코리아에 한국 지부
“명래랑 삼성동 코엑스 아쿠아리움에 처음으로 외출하던 날, 처음엔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감정의 기복이 심한 아이니 내게 막 소리 지르면 어떻게 할까 걱정했지만, 손 잡아주면 손도 안 빼고 많이 웃어주고…정말 예뻐 보였다.”
베스트 버디스 대원외고(고2) 대표인 가영양은 “처음엔 눈도 안 마주치려 한 친구가 눈을 보면서 내 이름을 불러줬을 때, 감동 그 자체였다”고 아직도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어머니 신지현씨 역시 “성적 위주로만 이기적으로 생활하다 특별한 친구들을 만나 새로운 경험을 쌓는 이 활동을 아이가 무척 좋아한다”고 말한다. 신씨는 “요즘 아이들, 상대방이 나와 다르면 설득조차 안 하고 그냥 돌아서버리는데, 베스트 버디스에 참가하면서 상대방에 대한 인내심도 함께 생기는 것 같다”고 흐뭇해했다. 특히 한번 짝이 된 친구와 다소 안 맞더라도 계속 가야 하는 상황에 봉착하면서 아이가 “모든 사람을 내게 다 맞출 순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고 힘든 관계를 견딜 줄 알게 된 것이 대견스럽다. 그는 “장애우뿐만 아니라 비장애우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기업들이 이런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데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고 희망했다. 현재는 전문직 출신 여성들의 사회봉사 모임 국제소롭티미스트 한양클럽이 창립 40주년을 맞아 3000만원을 후원한 것이 유일하다.
준우군 엄마 박경임씨는 “이런 아이들과 우리 아이가 20, 30대 어른이 돼서도 계속 친구로 남을 수 있다는 상상만 해도 좋다”고 말한다. 그는 아이가 조금만 흥분하면 경기를 일으켜 약을 입에 달고 살지만 이번에 음악회를 준비하면서는 약을 쓸 일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아이가 스스로 즐기다보니 스트레스를 현저히 적게 받은 덕”일 것이란 것이 엄마의 분석이다.
“사회적 관심과 후원 절실해요”
이번 행사엔 대한음악치료학회 음악치료사 5명이 지난해 8월부터 합류해 아이들을 도왔다. 모두 이화음악치료사합창단원이기도 한 이들 중 대표 교사인 정은주씨는 이번 음악회 준비를 통해 장애우·비장애우 아이들 모두 정서적 문제를 일정 부분 해결했다는 데 큰 의미를 둔다.
“서로 다른 두 집단의 아이들이 함께 활동을 하면서 놀라운 시너지 효과가 나는 것을 목도했다. 장애우 아이들의 경우, 비장애우 친구들을 보면서 무척 좋아해 수업에 대한 열정·집중력·몰입도가 크게 올랐다. 순탄한 길을 잘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비장애우 아이들도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좀 더 겸손해지고 좀 더 배려심이 많아지는 등 철이 드는 게 눈에 띄게 보였다.”
그는 특히 장애우의 경우 노래 연습을 통해 발음 교정을 하고, 율동을 통해 소근육·대근육을 자연스럽게 사용함으로써 재활 치료도 된다고 전한다.
“과잉행동으로 걱정을 사던 남학생이 있었는데 ‘에델바이스’ 합창이 울려 퍼지자 그 선율에 맞춰 몸을 움직이더라. 이를 지켜보던 엄마가 ‘우리 아이도 노래 부를 수 있다니’라며 말을 잇지 못하는 것을 보고 정말 보람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