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한 잠으로 ‘짜증모드’ 사회 극복하자
충분한 잠으로 ‘짜증모드’ 사회 극복하자
  • 문용린 / 서울대 교수(교육학), 전 교육부 장관
  • 승인 2010.12.31 11:35
  • 수정 2010-12-31 11: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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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생 하루 필요 수면시간은 9시간 30분
요즘 사회의 주요한 특징의 하나는 잠 부족 현상이다. 어른은 어른대로, 어린이·청소년은 그들대로 밤잠을 설치기가 십상이다.

하루 종일 심야까지 볼 수 있는 TV가 수십 채널에 이르고, 밤새 현란한 프로그램을 쏘아댄다. 인터넷은 온통 호기심거리로 가득 차있다. 검색하랴, 채팅하랴, 동영상 보랴, 게임하랴 하루 24시간이 모자란 사람도 많다. 어디 그뿐인가? 동네 어디엘 가든 24시간 인터넷만 할 수 있는 PC방이 즐비하다. 밤이 깊어 사위가 고요해도 TV 앞에, 컴퓨터 앞에, PC방에 사람이 성시를 이루고 있다. 그래서 수면 부족인 사람이 너무 많다. 수면 부족은 짜증을 유발한다. 수면 부족이 누적될수록 짜증은 빈도가 증가하고, 질도 악화된다.

‘짜증모드’(mode)의 사회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후에 나타나는 공통적인 증상의 하나는 머리가 개운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른바 “머리가 띵하고 잘 돌아가지 않는다”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수면박탈증상이라는 말이 나온다. 자야 할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한 경우에 생기는 일종의 행동장애를 가리킨다. 수면 부족이 야기하는 대표적인 부작용은 다음의 다섯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기억기능이 약화된다는 것이다.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있어서는 심각한 부작용이 아닐 수 없다. 둘째는 스트레스 호르몬의 일종인 코티졸의 분비가 증가한다는 것이다. 코티졸의 증가는 면역체계의 약화를 야기한다는 증거가 많다. 셋째는 주의집중력의 약화다. 넷째는 정서통제능력의 저하이며, 다섯째는 신체의 포도당 처리 능력의 약화로 비만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 비춰 볼 때 수면 부족이나 박탈은 지극히 해로운 것이다. 왜 그런가? 잠과 두뇌의 관계에 대한 정통적인 해석은 휴식이론이다. 즉, 잠을 자는 것은 다음 날 하루를 잘 지낼 수 있도록 (두뇌의 세포를 포함한) 모든 세포들을 새롭게 정비하고 에너지를 채워주는 것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잠자는 동안에 두뇌도 휴식을 취하는 셈이 된다.

그러나 최근의 여러 연구에 따르면, 뇌세포는 잠자는 시간에도 활발하게 활동한다. 그래서 새로운 주장이 대두된다. 이른바 연결강화 이론이다. 이 주장에 따르면, 잠자는 시간 동안 뇌는 휴식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날 만들어진 뇌세포 간의 연결들을 강화하는 활발한 활동을 펼친다. 낮 동안에 바둑을 두거나, 외국어 공부에 깊이 몰두한 사람들이 수면 중에 그런 꿈을 꾸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이 바로 이런 연결 강화의 증거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주장에 따르면, 뇌는 수면시간을 통해 낮 동안의 일들을 정리하고 복습해둔다는 셈이 된다.

그럼 과연 이렇게 두뇌가 수면 시간 동안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얼마만큼을 자야 할 것인가? 8시간 정도라고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이 8시간은 평균적인 시간이고, 연령대에 따라 이 시간은 달라진다고 말한다. 이른바 ‘역(逆) U 커브’ 이론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어린이 때와 노년기 때는 수면 시간이 8시간 내외로 적어도 되지만, 청소년기에 이를수록 필요한 적정 수면 시간이 길어진다고 한다. 예컨대 중고생(12~18세)의 경우 하루에 필요한 수면 시간은 적어도 9시간 30분 정도는 돼야 한다고 청소년 수면연구의 권위자인 카스카돈(M. Carskadon) 교수는 말한다.

해가 져서 밤이 되면 졸린 것은 두뇌 속의 시상하부가 이를 감지해서 송과선에 멜라토닌(melatonin: 잠이 오도록 유도하는 호르몬)의 분비 수준을 높이라는 메시지를 보내기 때문이다. 아침이 되어 충분히 자고 난 후에 잠에서 깨어나는 것은 시상하부가 이를 감지해서 그 반대의 명령을 내리기 때문이다.

카스카돈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사춘기에 이른 청소년의 경우 시상하부가 지시하는 수면과 기상 시간의 주기가 어린이 때와 현격히 달라진다. 즉 잠을 촉진하는 멜라토닌의 분비가 밤늦게까지 지연되고, 잠을 깨우는 멜라토닌의 감소가 아침 이후 시간으로 연장되기에 이른다. 때문에 청소년의 생리기제가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날 수밖에 없도록 돼 있다는 것이다.

카스카돈 교수에 따르면, 청소년들은 멜라토닌의 작동 주기가 어린이나 어른들과 다를 뿐만 아니라, 어느 시기보다도 빠르게 변화하며, 엄청나게 다른 다양한 정보의 처리에 직면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뇌가 최상의 효율성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어느 시기보다도 많은 시간을 자야 한다. ‘9시간 30분’의 근거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지금까지의 뇌 연구에 따르면 청소년은 일생의 어느 시기보다도 가장 많은 잠을 자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가장 짧은 수면 시간을 가질 수밖에 없는 세대다. 하나의 아이러니다. 2011년 토끼해엔 충분히 잠을 자서 짜증모드의 사회를 극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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