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 없이 매일 밤 담요와 숄로 몸을 둘둘 싸매고 손을 호호 불어가며 공부도 하고, 글도 씁니다. 그러다 보니 조금 게을러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한기가 파고들어서 되도록 자세를 바꾸지 않게 되거든요. 어쨌거나 이렇게 해서 ‘맥간’에서의 생활이 세 달째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이번 인도 방문에서는 아무래도 첫 여행 때와 여러 가지 달라진 점을 비교하게 됩니다. 주변의 지인들은 두 번째 여행에서 첫 여행의 환상이 깨지는 경우도 많고, 때문에 실망하는 일도 많다며 우려 아닌 우려를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런 비교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차이를 못 느끼고 올 겨울 인도, 맥간에서의 생활을 행복하게 즐기고 있습니다.
물론 3년 전과 비교해 추워진 날씨나 조금은 오른 물가, 또 지금은 없는 그 때 그 사람들. 이런 차이가 있긴 하군요.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감탄하며 혹은 즐거운 마음으로 바라보게 되는 일이 하나 있습니다. 이곳 인도에서 무수히 만나게 되는 많은 여성들이지요. 지난 2007년 인도 여행에서 우연히 만난 대학 후배는 아시아인권위원회에서 일하며 인도의 빈곤 문제를 조사하러 온 참이었습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아시아인권위원회에 프로젝트를 제안하고 그것이 받아들여져 계약직으로 홍콩에서 일을 하고 있었죠. 그녀를 통해 빈곤 문제는 바로 인권 문제라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또 맥그로드 간지의 한 식당에서 마주친 대학 선배는 명상춤을 배우러 와 있더군요. 내면의 평화를 찾아 멀리까지 날아온 선배는 이미 충분히 평화로워 보였습니다.
또 워킹 홀리데이로 돈을 모아 2년간의 세계 일주를 마치고 마지막 일정으로 이곳에 들른 전직 논술 강사, 자신이 그려야 할 그림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이집트로 떠난 스물한 살의 한국화 학도. 명상을 하러, 혹은 그저 여행으로, 혹은 다른 여성들의 삶을 찾아 인도 땅을 밟은 많은 여성을 이곳 맥그로드 간지에서 만납니다.
모두 자기 삶에 대해 진지하고 열정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삶에 충실하고자 애쓰고 있었죠. 비록 그들 모두가 씩씩하고, 자신감에 차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삶에 대한 애정과 열정만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여성들입니다. 이런 여성들을 만날 때마다 저 자신도 용기를 내게 됩니다. 그녀들의 삶의 모습을 통해 나도 주저할 것 없다고, 내 길을 잘 걸어가면 된다고 말이죠.
자기만의 삶의 빛을 품고 이곳을 찾은 그녀들이 하나둘 다시 떠날 때마다 배웅을 하며 서운함보다는 뿌듯함을 느끼게 됩니다. 이곳을 다녀간 그들의 경험이 더 멋진 삶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오늘 또 한 명의 친구가 떠났습니다. 요 근래 제가 알고 지낸 록파 탁아소에서 자원봉사를 마치고 간 마지막 한국인 친구이지요. 이제 새로운 자원봉사자를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추운 계절에 이곳까지 올라올 이들이 많지는 않을 테니까요. 그래도 맥그로드 간지의 버스 정류장에서 떠나간 많은 멋진 여성들이 마음에 품은 아름다운 꿈들을 잊지 않고 세상을 밝게 비춰주며 자신의 길을 당당하게 걸어가기를 기대해 봅니다. 그것이야말로 이곳에서 보낸 충만한 시간의 증거일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