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한 해, 어떤 여성들이 주목받았을까. 여성신문 ‘화제의 여성’을 중심으로 정치, 사회, 스포츠, 문화, 예술 등 각계에서 두드러진 활동을 펼친 국내외 여성들을 한자리에 모아 소개한다. 이들 중 상당수는 그간 ‘남성의 영역’이라고 생각됐던 금녀의 장벽을 뛰어넘어 ‘최초’를 기록한 여성들이다. ‘우먼파워’ ‘알파걸’이란 말이 심심치 않게 쓰이는 요즘에도 여성에겐 유리천장이 여전히 높다는 것을, 이들의 희귀성은 웅변적으로 대변해준다.

스포츠, 문화, 예술 분야 활동 여성들은 그 역동적인 스타성으로 올해도 어김없이 국민을 감동시켰다. 이들의 열정과 의지가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결코 스포츠 강국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올해 벽두부터 터져 나온 잔혹한 아동 성폭력 사건과 아이티 지진참사, 그리고 연말에 터진 국가인권위원회의 정체성 논란 문제는 인권의 소중함과 나눔 정신의 공유가 얼마나 절실한지 다시 한 번 환기시켰다.

정관계·사회·국제

정치 분야에선 ‘화제의 여성’ 지면을 장식한 주인공이 의외로 많지 않았다. ‘예산안 파동’ 등 화합하지 못하고 극심한 균열을 보여주는 정치권의 구태의연한 모습은 국민에게 실망감을 안겨주었고, 여성 정치인들 역시 그 구조에서 운신의 폭이 넓지 못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새해 벽두 당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이었던 추미애 의원은 ‘친정’인 민주당을 등진 과감한 행보로 정국을 들끓게 했다.

서울행정법원 개원 12년 만에 첫 여성 부장판사가 탄생한 것은 여성 법조인들의 진출이 상당히 활발함을 입증하는 또 하나의 사건이었다. 주인공은 박정화(45·사시 30회) 부장판사로 노동사건을 전담으로 하는 행정13부에 부임했다.

그런가 하면 지방선거 때마다 여성신문을 비롯한 여성계가 줄기차게 주장해 오던 임명직 부단체장에 드디어 여성이 낙점됐다. 주인공은 7월 1일 임명된 조은희(49) 서울시 정무부시장. 한국건설교통기술평가원 첫 여성 원장으로 지난 6월 임명된 신혜경(55) 전 대통령실 국토해양비서관, 청와대 대변인으로 7월 발탁된 김희정(39) 한국인터넷진흥원 원장도 공직계에서 화제를 낳은 여성들이다.

이윽고 국방부가 지난 16일 단행한 후반기 장성 진급 인사에서 송명순 대령(52·여군29기)이 전투병과 여군으론 처음으로 장군에 진급, 일약 주목을 받았다.

올해 18세인 최혜림(과천여고2), 전민영(돌마고)양은 기업 사외이사로 선임돼 영파워로 눈길을 끌었다. 이들은 청소년종합미디어기업 ㈜나린커뮤니케이션 사외이사로 청소년인터넷포털사이트 제작에 참여하고 사업운영을 총괄하는 역할을 맡게 됐다.

해외에서도 ‘여성 파워’는 유감없이 발휘됐다. 남미의 대국 브라질에서 첫 여성 대통령이 나왔다. 10월 치러진 대통령선거에서 집권 노동자당 지우마 호세프 후보가 당선됐다. 그는 룰라 대통령과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에 참석해 본격적인 외교활동에 나섰다. 역시 G20 정상회의 참석차 한국에 온 호주의 첫 여성 총리 줄리아 길러드(48)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 인터넷판이 발표한 ‘2010 세계 여성 지도자 10인’ 중 1위에 올랐다.

퇴임을 앞둔 미첼 바첼레트 칠레 대통령은 2월 칠레 남부를 강타한 리히터 규모 8.8의 강진 속에서 인상 깊은 리더십을 발휘, 찬사를 받았다. 미국 역사상 첫 여성 하원의장인 낸시 펠로시 역시 건강보험 개혁안 통과로 새삼 주목받기도 했다. 천안함 사태로 남북 간 긴장이 고조된 가운데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이 5월 성남 서울공항을 통해 전용기편으로 도착, 이명박 대통령과 회담을 하면서 단호한 외교 리더십을 보여 인상을 남겼다. 11월 위원장 독주 체제에 맞서 전격 사퇴한 문경란(51)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은 국가인권위의 정체성에 대한 격렬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런가 하면 다문화 사회로의 희망적 진입을 상징하는 인물들의 행보도 관심을 모았다.

경남 사천에 살고 있는 필리핀 출신 로첼 A 마나다(33)씨는 결혼이주 여성 출신 첫 간호조무사로 화제를 모았다. 신의진(46) 소아정신과 전문의는 조두순 사건 등 아동 대상 성폭력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현장을 뛰어다니며 피해 아동 지원에 힘쓴 공로로 서울시 여성상 대상을 수상했다.

이밖에 하반기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위원장이 된 최영희(60·민주당) 의원, 명예퇴임을 앞두고 38년간의 경찰 생활을 정리한 자서전을 펴내 여경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홍태옥(57·총경) 경기 양평경찰서장도 주목을 받았다.

스포츠

세계무대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보인 여성 스포츠 스타들의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와 위안을 줬다.

특히 그간 태극전사에 가려 주목을 받지 못했던 ‘태극낭자’들이 대한민국 축구사상 처음으로 국제축구연맹(FIFA) 주관 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쥐는 등 세계무대에서의 두드러진 활약으로 머지않은 미래에 여자축구가 활짝 개화할 것이란 기대감을 높였다. 여자축구는 FIFA가 주관하는 20세 이하 여자월드컵(U-20) 3위, 17세 이하 여자월드컵(U-17) 우승 등 역대 최고의 성적을 거뒀다. 특히 키 161㎝ 몸무게 50㎏의 작은 체구를 극복하고 스피드와 특유의 감각으로 승부하는 지소연(19·한양여대)은 ‘지메시’란 별칭까지 얻으며 여자축구의 간판 스타로 떠올랐다.

올 초 밴쿠버 동계올림픽의 히로인은 단연 이상화(21·한국체대)다. 그는 스피드 스케이팅(500m)에서 아시아 최초의 여성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빙속은 쇼트트랙과 피겨스케이팅 등 타 빙상분야에 밀려 관심을 받지 못하던 분야인 데다 순발력이 떨어지는 한국 선수 특유의 취약점을 극복해 그의 선전은 더욱 의미 있는 성과로 평가 받았다. 피겨스케이트 곽민정(16·군포 수리고) 선수는 4대륙 피겨선수권 여자 싱글 쇼트 프로그램에서 기술 점수 1위, 전체 7위를 기록해 국제 시니어 무대 데뷔전을 성공적으로 치러 김연아 선수에 이은 새로운 피겨 퀸의 탄생을 예고했다. 

김주희(23·거인체육관) 선수는 올해 세계 여자프로복싱 4대 기구 통합 챔피언에 등극하면서 여성 복서 중 세계 최초로 6대 기구를 석권했다. 서희경(24·하이트)은 초청선수라는 비회원 자격으로 참가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여섯 번째 도전 끝에 우승을 기록, 한국 여성의 끈기를 과시했다.

1970년대 한국 여자배구 최고 스타로 ‘나는 작은 새’라는 별명을 얻었던 조혜정(57)이 GS 칼텍스 여자배구팀의 감독이 되면서 한국 프로스포츠 사상 첫 여성 사령탑에 올랐다. 또 김윤미(28·서산시청)는 임신 7개월에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사격 부문 2관왕에 올라 아시아를 놀라게 했다. 

이밖에도 만 13세의 나이로 국내 최연소 프로기사가 된 최정(서울 충암중 2)과, 8000m 이상의 14좌를 완등한 세계 최초의 여성 산악인으로 주목받은 오은선(44·블랙야크)이 화제를 모았다.

 

문화예술

아이티 지진 참사 후 난민들을 위해 각각 1억원씩 기부한 신애라·차인표, 정혜영·션 등 연예인 부부의 선행이나 연예인 우울증에 관한 논문(연기자의 스트레스와 우울 및 자살 생각에 관한 연구, 연세대 행정대학원 사회복지학과 석사과정)을 쓴 박진희씨 등이 연예계 인사들 중엔 단연 두드러졌다. 또 50~60년대 가요사에 큰 획을 남긴 원로가수 백설희(본명 김희수)씨가 지난 5월 향년 83세의 나이로 별세했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있었다.

뮤지컬 음악감독 1세대로 유명한 박칼린(43) 호원대 교수는 한 TV 프로그램(‘남자의 자격’)에서 엄격하고 진솔하면서도 부드러운 새로운 리더십 유형을 보여줘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내한한 해외스타 중에는 단연 앤젤리나 졸리(35)가 단연 큰 주목을 받았다. 졸리는 영화 ‘솔트’의 개봉에 맞춰 홍보차 네 명의 자녀와 함께 내한했다. 그는 입양아까지 포함한 대가족을 무리 없이 운영하며 일과 가정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있는 슈퍼우먼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영화 ‘허트 로커’의 캐서린 비글로(58)는 아카데미사상 82년 만에 감독상을 수상한 첫 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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