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노래하게 될 줄은 몰랐다. 노래라면 초등학교 5학년 때 선생님께 노래 못한다고 혼난 이후로 담쌓고 지냈는데.

아이가 태어나자 아이 가까이에서 음악을 들려주기 위해 작은 CD플레이어를 샀다. 그리고 몇 개월 후부터 노래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주로 아이들이 즐겨 부른다는 동요 모음, 아이들 시로 만든 노래, 예부터 전해오는 노래들이었다. 아이는 처음에는 CD플레이어 앞에서 노래들 들으며 몸을 흔드는 것으로 만족해했다.

아이들은 선천적으로 흥을 타고 나는데, 자라면서 흥이 억압되는 것 같다고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던 어느 날, 아이는 노래책을 꺼내 읽어달라고 졸랐다. 오선지에 그려진 악보를 책처럼 읽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순간 멍하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용기를 내서 부른 노래는 역시 어색했다. 아니나 다를까 노래 한 곡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아이는 울음을 터뜨렸고 내 얼굴은 벌개졌다. 노래를 그치자마자 아이는 울음을 멈추었다.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던 아내는 “서령이 음치 만들겠어요!”라며 소리쳤다.

직장에 다닐 때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아이를 기르게 되면서 아이는 매일 노래를 불러 달라고 했다. ‘어떻게 하지. 수십 년간 나는 노래 못한다는 신념으로 살아왔는데. 매일 아이를 울릴 수도 없고. 내가 노래하기를 불편하게 여기는데 아이라고 노래를 편하게 들을리는 없을 텐데. 그럼 내가 노래 부르기를 즐기는 방법은 없을까?’

해답은 멀리 있지 않았다. 나를 의식하지 않고 그냥 노래 속으로 빠져들기다. 일단 음정과 박자, 이런 것을 의식하지 않고, 혹은 못할까봐 초조해지지 않고 그냥 불러보면서 그 순간을 즐기는 것이다. 초등학교 5학년 이후로 처음 해보는 진지한 노래 부르기 시도는 성공적이었다. 물론 갑자기 노래를 잘한다거나 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지만 노래를 부를 때면 생기던 긴장이 사라졌다. 긴장이 사라지자 노래 부르기가 슬슬 재미있어졌다. 이후로는 노래를 잘 듣고 악보도 잘 보며 음정과 박자를 맞추는 연습을 의식적으로 했다.

이러기를 두 주쯤, 아이는 노래를 끝까지 다 들어주었다. 물론 울거나 싫은 표정도 하지 않았다. 이럴 수가! 이렇게 한 곡 한 곡 하다 보니 서른 곡이 들어있는 책이 끝까지 넘어갔다. 끝까지 불렀을 때의 뿌듯함이란, 내가 부르는 노래의 느낌을 아이도 같이 느낀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기분이란.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아이 앞에서 춤을 춘다. 사실 춤도 노래와 마찬가지로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지난 가을 안성에서 남사당패 공연을 보고 흥에 겨웠던 나머지 집에 돌아와 국악을 틀어놓고 아이 앞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안성에서 보았던 춤사위의 느낌을 내 식대로 재현한다고는 했지만 낯선 춤에 의아스러운 눈길을 보내던 아이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러나 나는 그때, 내 기억으로는 내 생에 처음으로 흥에 겨워 절로 춤을 추었고 또한 춤을 배워야겠다고 마음먹기까지 했다. 울음이 커지면서 춤은 멈추었지만 그 후로 흥이 날 때면 아이 앞에서, 아이와 함께 춤을 춘다. 이제 아이는 울지 않는다. 같이 몸을 흔든다.

노래와 춤에 좀 더 자유로워지면서 아이와 나를 자세히 바라볼 여유가 생겼다. 내가 부르는 노래에 맞춰 흥얼거리는 아이와 아이의 춤에 덩달아 춤을 추는 나를 보면서 자기의 감정을 나타내고 나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됐다. “꽃은 참 예쁘다. 풀꽃도 예쁘다…” 오늘도 아이가 좋아하고 나도 좋아하게 된 이 노래로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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