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은 고모께
보고 싶은 고모께
  • 윤나영
  • 승인 2010.12.24 11:53
  • 수정 2010-12-24 11: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셋넷학교에서 친구들과 함께한 윤나영(맨 왼쪽)씨.sumatriptan patch http://sumatriptannow.com/patch sumatriptan patchcialis coupon free   cialis trial coupon
셋넷학교에서 친구들과 함께한 윤나영(맨 왼쪽)씨.
sumatriptan patch http://sumatriptannow.com/patch sumatriptan patch
cialis coupon free cialis trial coupon
고모 안녕하세요. 저 나영이에요.

그동안 잘 지내셨는지요? 제가 고향을 떠난 지 벌써 8년이 다 되어가네요.

이제야 안부 편지를 쓰는 저를 용서하세요.

동생과 저에게 실망이 크셨죠? 죄송해요.

저희를 자기 자식처럼 맞아 주시고 자기 자식보다 저희를 먼저 챙기면서 키워주셨죠.

제가 발이 꽁꽁 얼어 고모 집으로 갔을 때 고모는 일도 못 나가시고 꿩을 잡으러 가셨죠. 꿩의 뇌를 상처에 바르면 낫는다는 말에 고모는 2~3일 동안 내내 밭으로 산으로 헤매고 다니셨죠. 고모가 아니었더라면 지금 제 발은 썩어 잘려나가 없었을 거예요. 그런 고모를 보면서 동네 어르신들은 틈만 나면 요즘 세월에 어떤 여자가 자기 아이 세 명에 조카까지 키우느냐고 우리 집 이야기를 했죠. “너희들이 잘해야 돼”라고 말씀하실 때마다 “나중에 고모가 늙으면 제가 대소변 다 받아내고 고모를 평생 모실 거예요”라고 말해놓고 그 약속 지키지 못한 채 어머니가 계시는 중국으로 갔죠. 그때 고모는 제 앞에서 아무 말 없이 다 키워 놓은 자기 자식 뺏기는 부모의 표정처럼 슬퍼 보였습니다. 저는 그런 고모 앞에서 아무 말도 못하고 꿀 먹은 벙어리처럼 무뚝뚝하게 서 있었죠. 그때 고모와 어머니는

“나영이 잘 키워줘서 고맙소.”

“…….”

짧은 대화와 눈물, 그리고 침묵.

그렇게 인사를 나누고 어머니와 저와 동생은 몽골, 베트남을 거쳐 남한이라는 곳에 왔습니다. 이곳에 처음 왔을 때 너무 힘들고 답답해서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어머니와 싸우고 집을 나오는 일도 종종 있었어요. 어머니에게 “북한에 다시 돌려 보내달라고 난 여기서 죽어도 못 살겠다”고 말할 때마다 어머니는 늘 “미안하다” 말하며 우셨어요. 사춘기를 한창 겪고 있을 때 길을 지나다 고모와 비슷한 사람을 보면 혹시 고모가 아닌가 하는 마음에 따라가 보고 늘 길거리에서 정신 나간 사람처럼 넋을 놓고 돌아다녔죠.

그러다가 제 또래 친구들이 한 명, 두 명씩 공부를 해서 대학에 가는 것을 보고 저도 정신 차리고 그때부터 공부를 하기로 마음먹었어요. 일반 학교에 입학을 해서 2살 어린 아이들과 수업을 듣는데 아무것도 알아들을 수도, 대답할 수도 없었어요. 내가 말하면 아이들이 놀려댈까봐…. 그렇게 반년이 지나 친구들을 사귀고 어느새 중학교를 졸업했어요. 고등학교는 제가 항상 하고 싶다고 하던 ‘미용사’가 되려고 미용고등학교로 갔는데 친구를 그만 잘못 사귀어 자퇴를 하게 되었어요. 18살인 제가 고등학교를 나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대안학교를 찾아다니면서 공부하고 싶다고 했지만 여러 선생님들이 저를 받아주질 않았어요. 그렇게 돌아다니고 다니다 셋넷학교라는 대안학교에 다니면서 북한에서 미처 배우지 못했던 기초 공부를 지금 하고 있어요.

그땐 정말 몰랐습니다. 고모가 얼마나 힘들어 하셨을지….

요즘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발이 제일 먼저 시려 와요. 그럴 때면 제일 먼저 고모 생각이 나요.

“내가 발이 꽁꽁 얼어 발가락이 썩어갈 때 우리 고모가 꿩 잡아서 치료해줬어”라고 친구들에게 말하면 남한 친구들은 믿지를 않아요. 경험해 본 적이 없으니까요.

그래도 제 머릿속에는 생생히 기억하고 있어요. 그때 고모의 모습을.

제가 이곳에 와서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어가면서 22살이 된 지금에야 알 것 같습니다.

고모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고마움이 뭔지를 알았습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한다는 말로 다 표현 못 하지만 사랑합니다.

이렇게 쓰는 편지 언젠가는 고모가 꼭 볼 수 있는 날이 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통일이 되는 날까지 건강하세요.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50 (3가 222번지) 골든브릿지빌딩 1층, 9층
  • 대표전화 : 02-318-9300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신준철
  • 제호 : (주)여성신문사
  • 사업자등록번호 : 214-81-03304
  • 대표이사 : 김효선
  • 발행·편집인 : 김효선
  • 여성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19 여성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admin@wome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