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여성학 ‘토착적 페미니즘’이 중요하다
아시아 여성학 ‘토착적 페미니즘’이 중요하다
  • 노지은 / 객원기자 / 이화여대 여성학과 박사과정
  • 승인 2010.12.24 11:46
  • 수정 2010-12-24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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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평등을 넘어 젠더정의를 세워야 할 때
아시아 여성들, 어느 때보다 위기와 불안 느껴

 

아시아 여성학자들. 왼쪽부터 레노 리옹, 버네딕트 레저렉션, 장필화, 비비안 위 .gabapentin generic for what gabapentin generic for what gabapentin generic for what
아시아 여성학자들. 왼쪽부터 레노 리옹, 버네딕트 레저렉션, 장필화, 비비안 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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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아시아여성학회 학술대회는 2007년 한국에서 개최된 창립 대회에 이은 두 번째 회의라는 의미 외에도 아시아여성학회(AAWS)와 말레이시아 세인즈 대학의 여성과발전연구센터(KANITA), 동남아시아여성학회(SAMA) 세 주체가 공동으로 참여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처음으로 개최된 여성학 대회였고, 또 가까이 동남아시아 지역의 여성학 연구자들, 활동가들, 학생들이 폭넓게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됐습니다.” (라시다 시브, 대회조직위원장)

아시아여성학회, 서울에서 페낭까지

지난 2010년 12월 9일부터 11일 말레이시아 페낭에서 아시아여성학회(Asian Association of Women′s Studies: AAWS) 학술대회가 열렸다. AAWS는 아시아 지역 여성학자들의 아시아 여성 연구와 교류를 위해 조직된 국제 학회다. 현재 한국을 포함해 일본, 중국, 대만, 홍콩, 태국, 인도, 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외에도 미국, 영국, 캐나다, 독일, 프랑스, 뉴질랜드, 이란, 파키스탄, 네팔, 오만 등 전 세계 다양한 지역에서 온 아시아 여성학 연구자 400여 명이 회원으로 있다.

AAWS는 창립된 지 3년밖에 되지 않은 신생 학회지만 한국의 여성학자들과 아시아 여성학자들 간의 연구와 지식 교류는 15년이 넘는 역사를 갖고 있다. 더욱이 2005년 세계여성학대회 서울 개최는 서구에서 주도해 온 여성학의 흐름을 바꿔 아시아 여성학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 그리고 2년이 지난 2007년 한국여성학회와 이화여대 아시아여성학센터의 후원으로 서울에서 창립대회를 개최한 이래, 3년 만에 말레이시아 페낭에서 25개국 20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2차 학술대회가 성황리에 개최됐다.

 

장필화 AAWS 회장이 개회 인사를 하고 있다.
장필화 AAWS 회장이 개회 인사를 하고 있다.
아시아, 페미니즘, 젠더정의

“말레이시아와 아시아 지역 여성학에 다시 활기를 불어넣는 좋은 계기가 됐어요. 진지한 발표와 토론도 고무적이었지만 서로를 격려하고 함께하는 동지애를 느낄 수 있어서 좋았고요. 저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영감을 주는 학술대회였다고 자부합니다.” (세실리아 응, 대회학술위원장)

아시아의 여성학자들은 아시아 지역 여성들의 삶의 다양성과 공통성에 대해 늘 마주한다. 이것이 젠더, 계급, 인종, 민족, 지역, 나이에 의한 차별 없는 경제정의, 사회정의, 젠더정의를 향한 새로운 대안적 패러다임을 만드는 아시아 여성학의 힘과 도전의 바탕이기도 하다.

이번 대회의 주제는 ‘Debating Gender Justice in Asia’로서 아시아의 맥락에서 그리고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젠더 정의는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다. 2010년 유엔개발계획(UNDP)이 발표한 아시아 태평양 인간개발보고서에 따르면 “아시아 태평양 지역 국가에서 젠더 불평등은 여전히 진보와 정의, 사회적 안정에 주요한 장애”가 되고 있다.

그간의 젠더 평등을 향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시아 지역 여성들에게 실질적 평등이 체감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다양한 지역과 분야에서 여성주의 연구와 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학자, 연구자, 학생, 활동가 221명이 대회 발표를 신청했고, 118명의 발표가 이뤄졌다. 여성과 글로벌·지역 경제, 여성의 권한 강화, 성 주류화, 결혼과 가족, 이주, 여성에 대한 폭력, 국가와 권력, 거버넌스, 성 정체성, 성 노동, 여성운동과 페미니즘, 여성과 정치, 종교와 문화, 미디어와 재현, 여성과 건강, 기후 변화, 여성 교육, IT 등과 관련한 아시아 여성의 위치, 젠더 정의의 이슈가 34개 패널 발표를 통해 고루 다뤄졌다.

상대적으로 잘 알려진 서구 페미니즘과는 다른, 아시아에서 젠더 정의를 성취하기 위한 아시아 페미니스트들의 노력은 어떻게 가시화되고 있으며 어떤 형태의 페미니즘이어야 하는가? 특히 아시아의 많은 지역에서 종교와 문화가 사회 시스템을 움직이는 주요한 바탕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종교와 문화는 젠더, 사회정의에 어떠한 기여 혹은 장애가 되고 있는가? 국가는 젠더정의를 위한 변화의 주체인가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또 하나의 기제인가? 아시아의 여성운동은 젠더, 사회정의를 위해 국가와 어떠한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가난하고 주변화된 여성들, 성적 소수자들 역시 이 과정에 포함되어 있는가? 젠더화된 거버넌스란 개념은 무엇인가? 여성인권운동은 남성 중심의 정치, 거버넌스, 리더십 개념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가? 성 주류화는 여성들을 의사결정 과정에 포함시키는 데 성공한 전략이 될 수 있는가? 초국가 시대 시민권은 어떤 경계를 포함 혹은 배제하고 있는가? 전 지구적으로 공격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자유시장 무역 중심의 자본주의 발전의 대안은 있는가? 다양한 위협 속에 노출돼 있는 아시아의 여성들에게는 어떠한 영향을 주고 있으며 그들의 저항 전략은 무엇인가? 지구적, 지역적, 국가적 지배적 경제구조를 변화시킬 수 있는 젠더정의와 사회 발전의 대안은 무엇인가?

젠더정의는 공정한 재분배와 인정뿐만 아니라 긍정과 경제사회 시스템과 구조의 전환을 요구하면서 젠더 평등을 넘어선다. 이는 젠더 정의가 젠더 평등을 포괄하면서도 그 이상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젠더 정의는 현재의 문제를 발생시켜온 권력 시스템 내에서 동등한 몫을 추구하는 것을 넘어서 궁극적으로 사회적으로 용인된 위계와 권력 차별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위계적 젠더 관계를 변화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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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적 아시아 여성학 페미니즘을 향해

대회 이틀째 ‘비판적 아시아 여성학 페미니즘’을 위한 전체 회의에서 나온 논의에서 몇 가지 주요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최근 기후변화와 재난, 여성의 위험에 대한 연구와 관심이 늘고 있는 가운데 버네딕트 레저렉션(Gender and Development Studies, Asian Institute of Technology, 태국)은 ‘쓰나미 과부’의 민족성, 계급성, 인종적 차이에 따른 차별을 보다 상세히 분석했다.

그는 젠더와 발전 담론에서 젠더를 남성에 대항하는 여성으로 이원화해 젠더를 단순히 여성으로 치환하는 방식을 넘어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레노 리옹(Asian Studies, University of Western Australia, 호주)은 여성운동과 여성학 연구가 지역과 국가적 경계를 넘어 국제적 네트워크와 연계를 통해 초국적 활동을 넓혀가고 있는 최근 경향에 주목했다. 초국적 페미니즘의 연대가 단순히 참여하고 있는 다른 집단의 수로 대표되거나 다시 국가·민족주의로 수렴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초국적 페미니즘은 ‘현장, 지역, 국가, 지구적 층위를 모두 아우르는 방식으로 사고하는 것’이다. 비비안 위(Anthropology, National University of Singapore)는 아시아의 가장 가난하고 주변화된 여성 농민들, 공장 노동자들, 이주 노동자들, 사회적으로 배제된 이들이 직접적으로 사회 부정의와 박탈을 경험하면서 저항해온 역사와 현장이 곧 ‘토착적 페미니즘(indigenous feminism)’이라고 제시했다. 여성들이 처한 구체적 삶의 맥락성, 다양성, 다층적 범위를 고려하면서 여성들이 위치하고 있는 각각의 점들을 연결하는 것, 그리고 이것이 사회 변혁과 삶의 변화로 이어지도록 연구하고 연대하는 것이 아시아여성학의 길이라 강조했다.

신자유주의적 경제질서의 전 지구화, 경제·금융 위기, 기후변화, 양극화, 빈곤의 심화, 이주 노동의 여성화, 가족의 해체, 인종 차별, 종교 근본주의, 전쟁 등 그 어느 때보다 위기와 불안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오늘날 아시아 여성학 연구자들과 여성운동가들에게 미래를 위한 대안적 패러다임에 대한 요청은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서로 다른 복잡한 위치에 처해 있는 여성들, 지역에 뿌리내린 현장의 목소리에서 나온 비판과 연구, 또 흩어진 점들을 이어주는 초국적 실천, 한국여성학과 아시아여성학이 언제라도 만날 수밖에 없는 이유일 것이다.

“흔히 ‘아시아는 하나’라고 하는데 오히려 다름과 차이를 더 많이 느끼게 된 것 같다. 한국에서 온 나 역시 아시아의 일부라는 것과 자기 중심성에서 벗어나 타자 중 한 사람으로 다시 보게 되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저 멀리 아시아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나도 그 일부 안에 있었다는 것이다.”(대회 참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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