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시청자들은 어떤 말을 기억할까. ‘슈퍼스타 K2’부터 ‘개그콘서트’, 드라마 ’시크릿 가든’ 등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은 TV 프로그램을 통해 들여다봤다.

의외로 웃겼던 “제 점수는요…” “소는 누가 키울 거야?”

케이블 사상 최대 시청률을 기록한 Mnet ‘슈퍼스타 K2’. 매주 오디션 도전자들의 점수 공개 직전 엄정화, 윤종신, 이승철 심사위원의 “제 점수는요”라는 말이 의외로 시청자들에게 각인됐다. 전화투표가 당락을 가르는 주요 요인이었지만, 심사점수도 유효했던 만큼 참가자들은 물론 시청자들도 숨을 죽이고 지켜봤던 것.

KBS의 간판 프로그램인 ‘개그콘서트’는 유행어 제조의 원산지라 할 수 있을 만큼 올 한 해 수많은 히트어를 탄생시켰다. ‘나를 술푸게 하는 세상’의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박성광), ‘두분토론’ 남하당 박영진의 “그럼 소는 누가 키울 거야?” “뭐~ㅇㅇㅇㅇ~?” 등 얄미운 표정과 맛깔스런 경상도 사투리, 이에 맞서 여당당 김영희의 “정말 기가 맥히고 코가 맥힌다 그죠~?”도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두분토론’은 상대를 깎아내리는 데 급급한 한국형 토론문화를 여실히 보여주는 코너. 김영희는 집게손가락으로 귀를 훑는 시늉을 하며 “난 그렇게 들었는데 내가 잘못 들었나”라며 반박을 무시해버린다. 박영진도 “소는 누가 키우냐”는 상황에 맞지 않은 말로 소통을 배제한다.

특히 “1등만…”은 빈부격차와 계층의 사회문제를 반영, 소위 상위 몇 퍼센트에 대한 다수 서민들의 반감을 내포하고 있다.

“이게 최선입니까?” “소 먹자” 유행어 탄생시킨 드라마

SBS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서 현빈(김주원 역)의 “이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 “40년 동안 트레이닝복만 만든 이탈리아 장인이 한 땀 한 땀 정성들여 만든…”은 배우 현빈의 최대 유행어가 되고 있다.

‘파리의 연인’ 당시 이동건의 “이 안에 너 있다”로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던 김은숙 작가는 ‘시크릿가든’에서도 현빈을 통해 “저한텐 이 사람이 김태희고, 전도연입니다” 등으로 여성 시청자들을 녹이는 달콤한 대사를 매회 탄생시키고 있다.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에서 신민아(구미호 역)는 “소 먹자” “뽀글이 물” “아~맛있다”를 귀여운 매력으로 어필, 애교 필살기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도마 위 생선’ ‘회초리’ ‘막걸리’…소재도 다양한 명품대사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주는 반면 감동을 선물한 명품 대사들도 많은 한 해였다. 천편일률적인 소재, 어디선가 본 듯한 구도의 드라마들이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고 있는 가운데서도 잘 쓰인 책을 읽는 듯한 느낌을 준 명품 드라마들이 그 것.

▲‘대물’(SBS)- 극중 서혜림이라는 청렴한 정치인으로 분한 고현정은 “국민 여러분, 회초리를 들어주세요”라는 호소력 있는 진정성으로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평소 정치에 무관심한 이들도 서혜림을 통해 이상적인 정치가를 발견했다며 관심을 보이기도. 그러나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비난과 다소 억지스럽고 유치하다는 일부 평가도 있었다.

▲‘즐거운 나의 집’(MBC)- 친구 남편과 불륜, 남편 살인 등의 자극적인 소재로 막장 대열에 올라있는 ‘즐거운…’에서 황신혜가 분한 모윤희는 “막걸리로 허기진 배를 채우던 계집애가 1000만원짜리 와인 맛을 봤는데 사랑이 마구 마구 샘솟지 않겠어요”로 출세욕에 사로잡힌 여자의 심리를 한 마디 대사로 표현해 섬뜩한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자이언트’(SBS)- 정보석(조필연 역)의 “나는 정의 따위 안 믿어. 정의는 인생의 패배자들이 들어놓는 보험 같은 거지”는 성공만을 인생의 목표로 사는 인물의 이미지를 뒷받침했고, “원래 세상은 더러운 거야. 진흙탕이라고 생각하면 돼. 몸에 흙 좀 묻혔다고 하던 일 다 포기해 버리면 세상에 성공할 놈 한 명도 없게? 그까짓 영어 단어 몇 개 더 외우면 뭐하냐? 인생을 알아야지”라고 한 이덕화(황태섭 역)의 대사는 용기를 주는 말로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제빵왕 김탁구’(KBS)- 마지막 회에서 주원(구마준 역)은 아버지 정성모(한승재 역)를 향해 “내가 옆에서 다 지켜보고 있는데 좀 더 잘살지”라는 대사로 애증과 연민의 마음을 절절하게 표현해 냈다.

▲‘성균관스캔들’(KBS)- 방영 전부터 동방신기 멤버였던 믹키유천의 출연으로 화제를 모았던 ‘성균관스캔들’. 조선시대 최고 교육기관을 배경으로 그려진 드라마답게 철학적인 대사들이 주를 이뤘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기 과녁 앞에 서기 마련이다”(믹키유천, 이선준 역) “결국 지금의 저 아이들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을 것입니다. 저들이 무엇을 배우리라 보십니까”(안내상, 정약용 역), “불의한 세상에 대한 분노, 이 부정한 세상에서 혼자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스스로에 대한 분노”(조성하, 정조 역) 등 고루하기 쉬운 학자들의 인문학적인 대화들이 시청자로 하여금 사색하는 즐거움을 느끼게 만들었다.

▲‘파스타’(MBC)- “예~셰프”라는 말로 유명세를 탔던 ‘파스타’에서 많은 시청자들이 꼽은 명품 대사는 ‘도마 위 생선’ 대사였다.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다뤘던 이 드라마에서 공효진(서유경 역)이 셰프 이선균(최현욱 역)에게 하는 말.

“도마 위에 생선입니까? 제가? 칼자루 쥐었다고 두려운 게 없죠? 다듬다가 가시에 찔릴 수도 있고요, 먹다가 목에 켁 걸려서 저 세상 갈 수도 있어요. 모르시죠? 이미 도마 위에 올라간 생선은 칼 하나도 안 무서워해요. 살 속에 가시 품고 뾰족하게 숨어 있지.”

좋아하는 사람의 알 수 없는 마음에 헷갈리고,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이 답답한 여주인공의 심리를 잘 표현하고 있다.

말 한마디로 상황과 이미지를 정확히 전달하는 일은 어렵다. 대중의 사랑을 얻기 위해 함축적인 매력의 명품 대사를 탄생시킨 드라마의 치열한 대결을 내년에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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