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아이를 돌본 지 두 달이 조금 지났다. 아이가 눈뜰 때 하루가 시작되고 아이가 잠들 때 하루가 끝날 정도로 나의 하루는 아이에게 맞춰졌다. 그러다보니 아이에게 눈을 떼는 시간은 아이가 낮잠을 잘 때 정도다. 물론 이때도 신경의 반쯤은 아이에게 가 있어 아이가 작은 소리만 내도 재빨리 아이에게 달려간다. 하루 종일 아이와 함께 있게 되면서 아이가 내는 작은 소리나 사소한 행동 하나까지도 허투루 넘겨버리지 않게 됐다.

어느 날인가 “얼룩말이 어떻게 달리지?” “다-다-다-다” “종달새는 어떻게 노래하지?” “랄-랄-라” “비행기는 어떻게 날지?” “부-우-우-웅”이라고 아이가 대답하는 것을 듣고 ‘야! 이것 좀 봐라. 몇 번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이런 것도 할 줄 아네. 혹시 천재가 아닐까. 아니 천재가 맞을 거야’라고 생각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아이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면서 우리는 아이가 천재라는 즐거운 결론을 내렸다.

그러고 보니 부모들 대부분, 아니 거의 다들 자기 아이가 천재라고 믿는다. 드러내놓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도 누가 아이 자랑을 할 때면 속으로 ‘우리 아이는 벌써 했는데’라고 생각하고는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내 아이는 천재다’ 혹은 ‘이렇게 똑똑해도 되는 거야’라는 믿음은 어디에서 출발한 것일까. 얼마 전 미용실 아가씨는 “그게 아이를 키우는 낙이 아닐까요?”라고 말했지만.

처음에는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어, 이런 것도 할 줄 아네’라는 놀라움과 경이로움이 곧바로 내 아이는 천재라는 생각으로 이어진 것이 뭐 그리 이상한 일일까. 더구나 천재라는 말이 마음을 기쁘게 하는데. 그런데 하필이면 그 상황에서 천재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붙었을까 하는, 또한 많은 말을 놔두고 왜 천재일까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이제 천재라는 말이 주는 즐거우면서도 마음이 불편한 이유를 슬슬 찾아야겠다. 

천재라는 말은 가치 지향적이다. 남들보다 월등히 뛰어난 재능을 뜻하기도 하지만 알게 모르게 출중한 재능으로 남들과의 경쟁에서 손쉽게 승리하여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한 것이라는 의미 또한 강하게, 오히려 더 강하게 담고 있다. 한 명의 천재가 보통 사람 수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천재론은 나에게, 또 많은 사람들에게 천재만이 가치가 있다는 왜곡된 인식으로 확대됐다. 결국 경쟁과 차별에 바탕을 둔 천재론은 천재에 대한 환상을 만들어냈다. 어쨌든 내 아이는 천재여야만 하고 마땅히 그렇게 키울 것이라는.

아이가 한 어떤 행동이나 말을 근거로 아이에게 붙였던 천재라는 말은 놀라움에 대한 단순한 감탄사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면에는 내 아이는 남보다 잘났다는 마음이 무의식중에 반영됐다. 달리 말하면 내 아이를 아이 자체로서가 아니라 다른 아이와 비교하고 경쟁하는 선상에서 보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 상황이 되면 천재는 단순한 이름표가 아니라 그래야만 한다는 당위성을 담은 꼬리표로 바뀐다.

천재라는 꼬리표 붙이기를 그만두는 것은 쉽지 않다. 그만둘 이유도 별로 없는 듯 보인다. 그러나 천재는 물론 다른 어떤 종류의 꼬리표 붙이기를 그만두었을 때 아이가 새롭게 보인다는 것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꼬리표를 붙이는 주체는 아이가 아니다. 부모들이다. 꼬리표는 이름표라는 가면을 쓰고 자신들이 보고 싶은 대로 보는 부모의 마음이며 아이를 실제와 다르게 보도록 만드는 왜곡된 프레임이다.

아이를 판단하고 결론짓는 일은 그만두자. 천재라는 꼬리표 떼기는 아이를 진정으로 만나는 길이라고 지금은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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