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신동 아주머니에게서 보는 희망의 씨앗
창신동 아주머니에게서 보는 희망의 씨앗
  • 전순옥 / 한국패션봉제아카데미대표
  • 승인 2010.12.17 10:55
  • 수정 2010-12-17 10: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내가 매일 지나다니는 창신동 길목 어귀에는 노란색 페인트가 거의 다 지워진 조그만 양철 문이 하나 있는데 항상 빼꼼 열려 있다. 바삐 지나가다 살짝 열려있는 이 문으로 눈이 향하면 문 안쪽 너머 미싱에 앉아 있는 중년 아주머니의 활짝 웃는 얼굴과 정면으로 마주치게 된다. 아무리 바빠도 문을 조금 더 열고 “안녕하세요” 하며 안으로 발을 들여놓지 않을 수 없다. 이 문 안의 주인공은 35년째 봉제사로 일해 오고 있는 56세 중년 여성이다. 아침 9시부터 밤 11시까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거의 하루도 쉬는 날이 없이, 아주 가끔은 둘이 일하는 날도 있지만, 거의 매일 혼자서 일한다. 아주머니는 수년째 당뇨 약과 고혈압 약을 복용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건강하다고, 아픈 데는 없다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말한다.

아주머니와의 인연은 창신2동에서 처음 설문조사를 시작하던 2003년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 조사팀은 설문조사를 하기 위해 창신동 봉제공장을 방문하며 어렵게 이 문 저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하루는 문이 열려 있는 한 공장을 발견하고 “추운데 어서 들어오세요”라며 반기는 것 같아 그 문을 살짝 밀고 한쪽발로 들어섰는데 다른 발을 들여놓을 수 없을 정도로 공장은 아주 비좁았다. 4평 정도의 작은 공간에 미싱 두 대와 오버로크 미싱, 그리고 시다 다이가 놓여 있었다. 미싱대 위와 시다 다이 위에는 재단을 막 해온 원단이 수북이 쌓여 있었고 다리미와 가위 등 봉제 도구들이 한눈에 다 들어오는 작은 작업장이었다.

2주 전쯤 수다공방 패션쇼 초청장을 가지고 양철문을 열고 들어서자 “어서 오세요. 전순옥씨”하면서도 눈과 손은 돌아가는 미싱과 바늘에서 잠시도 떼지 못한다. “저야 항상 이 자리에 있어요, 어디 안 가요”라고 말하는 아주머니는 70년대 평화시장 봉제공장 봉제사로 일했던 노동 조건과 크게 달라진 것 없는 근로 환경에서 2003년에도 일하고 있었고, 2010년 오늘도 일하고 있다.

나는 당시 아주머니의 작업장 일상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봉제 노동자의 근로 환경이 예전과 달라진 게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그 이유를 알고 싶어 창신동에 만 8년째 머물고 있다. 처음부터 나의 관심은 “왜 이 여성 노동자들은 기술이 좋으면서도 장시간 저임금에서 일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더 많은 질문들만 생겨날 뿐, 처음의 질문에 대한 답은 얻지 못한 채 연말연시를 맞고 있다.

이 여성 노동자 한 사람의 노동과 삶은 창신동을 비롯해 서울 인근 지역 수만 명 봉제노동자의 삶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창신동은 2000여 개의 영세 규모 의류 하청공장들이 있는 곳이다. 더러는 조금 일찍 밤 9시에 끝나는 공장도 있지만 보통은 11시까지 작업을 하고 있다. 아주머니는 8년 전에도 일본에 수출하는 여성 블라우스를 만들었고 지금도 같은 제품을 생산하는데, 생산 공임은 8년 전보다 20% 정도가 사실상 내려갔다. 8년 전 블라우스 작업을 시작했을 때 장당 3500원이던 공임이 3000원으로, 지금은 2500원이 됐다.

이렇게 점점 갈수록 노동 현실은 더 열악해져 가지만 아주머니는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고맙지요”라고 웃으면서 말한다. 일하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는 것 그 자체가 나에게는 또 다른 의문과 질문을 하게 만든다. ‘공사판에서 기름때가 찌든 운전수 모자를 쓴 남자가 삽질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 삽질은 기름때가 묻은 모자가 일을 하고 있다’고 한 전태일 평전 중 한 구절을 생각나게 했다. 아주머니는 미싱 앞에 앉아 재봉을 하고 있지만 그 재봉틀은 혼자 돌아가고 있다. 하루 14시간, 그리고 주 6일을, 일 중독자가 되어 미싱과 함께 일하지 않으면 바로 쓰러져 버릴 것 같은데 그들을 버티게 하는 무엇인가가 있지 않을까, 대체 그것이 무엇일까?

난 항상 이 자리에 있고, 일할 수 있기 때문에 고맙다고 얘기하는 아주머니에게서 희망의 씨앗을 본다. 이제는 봉제 노동자들에게 의복 제작을 빚지고 있는 우리 사회가 60년 패션봉제산업의 기술과 노하우, 그리고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작업에 전념해 오신 봉제 전문 인력들이 높은 부가가치를 재생산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이들 기술자에게 지속가능한 일자리를 제공하는 한편 60년 패션봉제 산업의 기술과 노하우를 계승할 수 있도록 사회적인 관심과 노력으로 올해보다 나은 내년을 희망하고 싶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50 (3가 222번지) 골든브릿지빌딩 1층, 9층
  • 대표전화 : 02-318-9300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신준철
  • 제호 : (주)여성신문사
  • 사업자등록번호 : 214-81-03304
  • 대표이사 : 김효선
  • 발행·편집인 : 김효선
  • 여성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19 여성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admin@wome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