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이 오면 정치권에 어김없이 계절병이 돈다. 이른바 폭력 바이러스에 감염된 정치 환자들이 속출한다. 국회는 폭력으로 얼룩지고, 농성과 본회의장 점거가 판을 치며, 여당은 단독으로 새해 예산안을 통과시킨다. 야당은 “의회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행위라며 정권의 독재에 맞서서 국민과 함께 싸울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결과적으로 세밑 정국은 급랭한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폭력 국회’가 재현됐고, 국민은 없었다. 국회는 지난 8일 본회의를 열어 309조567억원 규모의 2011년도 예산안을 여당 단독으로 통과시켰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날치기 통과된 예산안은 원천무효”라며 “국민 앞에 면목이 없지만 이명박 정부의 압정과 실정을 반드시 끝낼 것”이라고 다짐했다. 민주당은 조만간 전면적인 장외투쟁에 나설 가능성이 그만큼 커졌다. 이번 한나라당의 예산안 강행 처리는 시점, 방법, 내용 등에서 이해하기 어렵다. 향후 정국 운영에 걸림돌이 될 전망이다.

첫째, 북한의 연평도 기습 포격으로 국민이 허탈해하고 불안감이 고조돼 있는 상황에서 이런 기습적인 예산안 통과 행위는 이유야 어쨌든 국민의 지지를 받기 어렵다. 더구나 ‘밀어붙이기식’ 정치의 이미지가 고착화되면 한나라당으로서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 연평도 포격 사태 이후 안보에 대한 국민의 불안을 불식시켜야 할 여권이 야당의 초당적 협력이 필수적인 상황에서 여야 간 극한 대치로 인한 대화 정치의 실종을 가져왔다는 것은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이다. 둘째, 아랍에미리트(UAE) 파병 동의안까지 여당이 단독으로 의결한 것은 신중하지 못했다. 대한민국 군인의 해외 파병은 여야가 초당적으로 동의해 주어야 파병 군인들도 세계 평화를 지킨다는 자부심을 갖고 당당하게 본연의 임무를 다하지 않겠는가. 실질적으로 반쪽짜리 동의는 파병 군인들의 심리적 위축을 가져올 수 있다. 만의 하나 사고라도 발생하면 모든 책임은 여당이 떠안게 되고, 국론은 쉽게 분열될 수밖에 없다. 셋째, 미숙한 방법으로 여당 리더십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예결위에서의 계수조정소위원회 활동이 한창 진행 중인 가운데 여당이 갑작스럽게 예산안 강행처리 카드를 꺼내든 것 자체가 리더십의 미숙함을 드러낸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7일 국무회의에서 “내년에도 계속 경제성장을 하려면 이번 정기국회에서 예산과 함께 중점 법안이 반드시 통과돼야 한다”며 회기 내 예산 처리를 주문했다. 이를 근거로 야당은 예산안 강행 처리는 “한나라당이 청와대의 지시를 받은 것이다”고 주장하고 있다. 더구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추가 협상에서 경제적 이익의 균형이 깨졌다는 비판이 불거지고 있고, 민주당이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관계자의 불법사찰 대상이었다는 내용을 폭로한 상황에서 예산안 강행 처리는 여당에 득보다는 실이 많을지 모른다. 청와대가 한·미 FTA 추가 협상과 민간인 불법 사찰 의혹에 쏠려 있는 국민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전환시키기 위한 고도의 술책을 썼다는 비판을 받을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예산안 단독 통과 과정에서 국민은 아랑곳하지 않고 갈등 조정이 본질인 정치가 실종된 데는 야당보다는 국정 운영의 일차적인 책임을 지고 있는 여당에 책임이 더 크다. 대통령은 최근까지 “하나 된 국민이 최강의 안보다”고 목소리를 높였는데 현실에서 정부 여당이 정반대로 분열된 국민을 만드는 일에 앞장섰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한나라당 지도부는 “당이 청와대에 질질 끌려다닌다”는 세간의 비난과 조롱을 어떻게 극복하려고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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