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피해자 80여명 중 83세로 최연소..."일본 우익 시위자들? 일본 정부가 역사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은 결과야"

“전쟁 없는 나라 만들어야지. 전쟁은 있어서는 절대로 안 돼. 그래야 우리 같은 사람이 다시는 안생기지.” 길원옥(83) 할머니는 느릿하고 조용하게 말을 이어가다가도 전쟁 이야기에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65년 전 광복을 맞고 한국전쟁이 끝난지도 60여년이 흘렀지만 길원옥 할머니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고향인 평양에서 일본군에 의해 만주로 끌려간 13살 소녀는 온 몸으로 전쟁의 참혹한 고통을 겪고, 해방 후 열 여섯 살이 돼 인천행 배를 타고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고향으로는 돌아갈 수 없었다. “해방이 됐다는데, 뭘 해방시켜줬다는 거야? 나 같은 사람들 진실을 밝혀서 속을 풀어주나, 배상을 하나. 70년이야. 13살에 집을 떠나 83살이니까 70년 세월이야. 그 세월동안 잠시 낮잠을 자면서도 헛손질을 하면서 싸워. 지금도 그래. 한이 있는 사람은 그래.” 죄인처럼 과거를 숨기고 살던 길 할머니는 10년 전 정대협에 참여하면서 끝나지 않는 전쟁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세상에 얼굴을 드러냈다. 지난달 25일 일본 국회에 ‘위안부’ 문제 입법 해결을 요구하는 국내외 42만 명의 서명을 전달하고 돌아온 길 할머니를 서대문구에 위치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한 쉼터 ‘우리집’에서 만났다. - 일본 국회에 서명을 전달하셨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의 서명을 일본 쪽에서 제대로 받아줄까 걱정했는데, 잘 받아줬어요. 일본 국회의원들과 외무부 장관 밑에 차관이 나와서 받았어요. 이번에는 일본 측 태도가 불쾌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 이번 서명 전달이 일본의 태도 변화에 효과가 있을까요. “조금은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전에는 만나주지도 않았잖아요. 이번에는 우리 국회의원도 같이 갔으니까 무난히 잘 받아줬겠지만, 전에 비하면 조금 풀릴 때가 됐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말이라도 열심을 다해 일하겠노라고 했으니까.” - 서명 전달하는 날 일본 우익 쪽에서도 시위를 했다고 하던데. “시위하는 사람들 옆으로 지나서 들어가 맞딱뜨리진 않았어요. 일본에서 역사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아서 그런걸 어떡합니까. 사람들이 다 알아야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데 모르면서 무조건 ‘위안부’하면 안 좋은 걸로만 생각하잖아요. 우리나라에서도 엉뚱한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일본이라고 안 그렇겠어요. 그래도 세월이 흘러가면서 입으로 전해지다보면 언젠가는 진실이 밝혀지지 않겠어요.” - 호주, 독일, 미국 등 전 세계를 다니셨습니다. “이제 앞으로는 못 갈 것 같아요. 비행기 타는 게 너무 힘들어요. 외국에 가서나 여기에서나 사람 만나는 건 어렵지 않은데 비행기 타는 게 힘들어. 일본은 그나마 가까워서 덜한데 캐나다 다녀와서는 3주 이상 아팠나봐요.” - 정대협 활동에 늦게 합류하셨어요. “밖으로 안 나오고 숨어 살다가 나중에 나왔죠. 먼저 나와 수고하신 분들은 지금 들어앉아 계시고, 늦게 나온 내가 지금 돌아다니는거죠. 지금 정대협 활동하는 사람 중에 제일 젊은 사람이 83세야. 나를 포함해서 83세가 너덧명은 되는 거 같아. 제일 젊다는 나도 안 아픈데가 없고, 성한 데가 없어. 정대협에 신고한 234명 중에 82명 남았어. 10명은 외국에 계시고, 한국에는 70명 남아 있어요.” - 북한의 포격으로 피란 나오신 연평도 주민 80대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생의 두 번째 피란길이라며 한탄하셨습니다. 연평도 사건을 보시면서 어떤 마음이셨습니까. “위안부 문제를 가지고 여성인권 회복하라고, 전쟁 없는 나라 만들어달라고 세계를 돌아다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뭐하는지 모르겠어요. 답답할 때가 많아요. 지금 여당 야당이 싸울 때가 아니거든. 이북은 자꾸 이런 일을 저지르고, 일본은 회담한다고 한국에 왔다 가서는 교과서 위조하고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데, 우리나라는 밤낮 쌈박질이나 하고 뭐하는 겁니까.” - 실제로 피란민이 생겼는데도, 일반 사람들은 전쟁을 체감하기 힘든 것 같습니다. “매를 맞아본 사람이 매가 얼마나 무섭다는 걸 알지 안 맞아본 사람은 몰라. ‘위안부’ 말만 들어가지고서는 듣는 사람들이 체감이 안 가는거랑 마찬가지야.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를 안 당해본 사람들은 상상을 할 수가 없거든. 전쟁이 나면 망하는 건 우리나라야. 미국이나 일본이나 우리나라 도와주는 척하지만 망하는 건 우리나라야. 전쟁... 그 뼈아픈 일을 모르고 당해보질 않았으니... 깨달아야지.” - 전쟁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어떤 말씀을 해주고 싶으세요. “어린 아이부터 어른까지 한마음으로 통일해서 남에게 또 당하지 말라는 것 밖에 없어. 금년이 국치 100년인데, 36년간 일본이 우리를 어떻게 말살시켰냐고. 12살부터 25살까지 여자애들은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위안부로 끌어가고, 공장에서 일시킨다고 뽑아가고, 남자들은 군인으로 탄광으로 뽑아갔어. 힘들게 농사지어 놓은 건 공출이다, 배급이다 해서 하나도 안 남기고 다 뺏어갔어. 밥 사발, 숟가락, 젓가락까지 뺏어갔다구. 숨겼다가 들키면 끌려가 죽지 않을 만큼 맞고. 36년을 그렇게 기가 막히게 험한 세월을 보냈는데...” - 여자들에게 전쟁은 더 큰 고난이잖아요. “사람이 이 세상에 나서는 인간답게 살아야만 세상에 온 보람이 있잖아. 나고 자라 시집가고 장가가고 아들 낳고 딸 낳고. 부모가 되고 동기간 우애 있게 가정을 섬기고, 자손을 낳고 키우는 걸 낙으로 알고 세상을 사는 건데... 우리는 사람이 와서 하는 걸 하나도 못해봤잖아. 죽지 못하니까, 죽는 날을 기다리는데 억지로 죽어지지는 않고 어느 하루로 안 아픈 날은 없고. 정말 기가 막혀요. 사람들이 깨달아야죠. 전쟁 없는 나라, 평화의 나라 만들어야지. 우리 같은 사람이 다시는 안생기지. 전쟁 있는 데서는 우리 같은 사람 또 생겨.” - 2010년도 다 지나가고 있습니다. 새해소망이 있으시다면. “우리 일이 빨리 해결됐으면 좋겠죠. 그리고 전쟁이 없어야지. 8,90된 노인네들을 거리 노중에다가 20년이 되도록 놔둔다는 건 역사 공부를 안 시켜서 모른다는 거야. 우리가 나가 앉아 있으면 우리만 고생이고, 망신인가. 나라 망신이고, 나라 위신이 깎이는 거야. 역사를 바로 가르치고, 바로 알려야만 해결이 빠른거지. 당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그냥 지나가듯 들어서는 해결될 수가 없지. 한 치 걸러 두 치라고 말만 들어서는 몰라. 그 뼈아픈 일을 알 수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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