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막한 찜질방 생활 언제까지…”
“막막한 찜질방 생활 언제까지…”
  • 김수희 / 여성신문 기자
  • 승인 2010.12.03 11:34
  • 수정 2010-12-03 11: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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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전 기억 아직도 생생한데… 연평도 뺏기면 안 돼”

 

북한의 포격 직후 맨몸으로 연평도를 빠져나온 피란민들이 11월 26일 임시 숙소인 인천 인스파월드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sumatriptan patch http://sumatriptannow.com/patch sumatriptan patch
북한의 포격 직후 맨몸으로 연평도를 빠져나온 피란민들이 11월 26일 임시 숙소인 인천 인스파월드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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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웅 여성신문 사진기자(asrai@womennews.co.kr)
“이런 일을 또 겪다니…연평 뺏기면 안 돼.”

올해 여든여섯의 박영옥 할머니는 생의 두 번째 피란길에 나섰다. 연평도에서 태어나 90년 가까운 세월을 연평도에서 살아오신 박 할머니는 60년 전 한국전쟁 당시 6살 난 큰딸을 안고 인천까지 배를 타고 피란길에 올랐었다. 이번에도 함께 피란길에 오른 그 큰딸은 예순 여섯의 할머니가 됐다. 터지는 포 소리에 “또 전쟁이 났나 싶어 무서웠다”는 박 할머니는 “나야 다 살았으니까 괜찮은데 젊은 애들이 걱정”이라며 자손들 걱정에 여념이 없었다.

11월 23일 오후 2시 30분께 북한군이 포탄을 발사해 연평도는 순식간에 폐허로 변했고, 1800여 명의 주민은 대부분 섬을 빠져나와 피란길에 올랐다. 연평도 주민들이 임시로 머무르고 있는 인천 인스파월드(찜질방) 3층 찜질방의 넓은 홀은 앉거나 누워있는 수백 명의 주민들로 빼곡히 차 있었다. 60년 전 전쟁의 공포를 직접 경험한 노인에게도, 전후 황폐함 속에서 자랐던 세대에게도, 역사책으로만 이 땅의 전쟁에 대해 들었던 젊은이에게도 ‘실제 상황’이었던 그날은 소름끼치는 경험이었다. ‘그저 살아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섬을 빠져나온 주민들의 눈빛은 여전히 불안으로 가득했다.

박 할머니의 딸은 첫 포탄 소리가 났을 때 마을 사람들과 굴을 ‘쪼고’ 있었다. 군사지역이라 늘 있는 훈련이거나 오발이려니 생각하고 무심히 넘겼다. 굴을 한아름 따 와 창고에 쏟아놓는 순간 무언가 ‘쾅’ 하고 터지는 소리가 났다. 곧이어 면사무소에서 ‘대피소로 가라’는 방송을 듣고 어머니인 박 할머니를 모시고 대피소로 달렸다. 지금도 창고에 쏟아놓은 굴이 아까워 눈에 밟힌다고 했다.

열아홉 살 연평고등학교 3학년인 민지는 ‘그 날’ 기말고사를 치르고 일찍 집에 와 있었다.

 

일 때문에 연평도에 남아 있는 남편을 걱정하는 조씨. 친정엄마, 아들과 함께 초조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sumatriptan patch http://sumatriptannow.com/patch sumatriptan patchwhat is the generic for bystolic   bystolic coupon 2013free prescription cards cialis coupons and discounts coupon for cialis
일 때문에 연평도에 남아 있는 남편을 걱정하는 조씨. 친정엄마, 아들과 함께 초조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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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웅 여성신문 사진기자(asrai@womennews.co.kr)
“처음 포탄 소리를 듣고는 훈련인가 하다가, 소리가 심해지니까 실수인가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면사무소에서 실제 상황이라고 대피하라고 하는데 너무 무서워서 집밖으로 못 나가겠더라고요. 부들부들 떨면서 이리저리 전화만 했어요.”

집에 혼자 있던 민지는 집이 흔들리고, 유리창이 깨지는 ‘실제 상황’에서 대피하라는 방송을 듣고도 서둘러 집을 나서지 못할 만큼 무서웠다고 한다.

“뭐가 뭔지 아무것도 모르겠고, 아무것도 안 보이고, 그냥 죽겠구나 하는 생각밖에 안 들었어요.”

대피소까지 무슨 정신으로 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대피소에서 잠잠해지길 기다린 민지는 그날 밤 어선을 타고 밤 10시가 돼서야 언니가 살고 있는 인천에 도착했다. 캄캄한 밤바다가 무섭지 않았느냐는 물음에 ‘일단 살고 봐야 되니까요’라며 그가 느낀 공포와 생존의 절박함을 이야기했다. 12월 12일 서울 모 대학의 수시 합격 최종 발표를 기다리고 있는 민지는 하루 남은 기말고사를 언제쯤 볼 수 있을지 걱정이다. 오랜 시간 공부하며 기다려온 대학 합격과 설레는 스무 살의 시작을 눈앞에 두고 민지의 일상은 그렇게 멈춰버렸다.

“당연히 전쟁은 안 났으면 좋겠고요. 이번에는 북한과 마무리를 좀 잘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다시는 이런 일이 안 일어나게요.”

조모(44·여)씨는 외출했다가 시누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남편과 친정부모가 계신 연평도에 포탄이 떨어지고 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서둘러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휴대전화는 불통이었고,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불타는 연평도의 모습은 조씨의 불안을 더했다. 얼마 후 유선전화로 통화한 남편은 본인과 친정 부모님이 무사하다고 알렸고, 조씨는 그제야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주대책 마련해줘도 돌아가고 싶지 않아”

하지만 대피소에 계시다는 부모님의 안전에는 맘이 놓이질 않았다고 한다. 연평도에서 나고 자란 조씨는 지어진 지 40년이 넘은 대피소의 안전성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피소가 아이들이 오며가며 오줌 싸고, 학교 다닐 때 남자애들이 다른 애들 데려다가 때리고 하던 곳인데 안전할까 싶었어요. 그곳을 사용한 게 아마도 이번이 처음일걸요.”

네 명의 자녀를 둔 조씨는 아이들의 학업 때문에 인천에 전셋집을 구해 연평도에 있는 남편과 떨어져 지내고 있다. 관공서 직원인 남편은 섬을 지키느라 아직 연평도에 남아 있는 상황이지만 정부가 이주 대책을 마련해 준데도 고향인 연평도에는 돌아갈 생각이 없다.

“젊은 사람들이야 도시에서도 일을 구해 살아갈 수 있겠지만, 저희 부모님처럼 평생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오신 분들은 도시에서 살기 힘들죠. 연평 노인들은 요즘 굴 따기처럼 바다에 일을 나가면 일당 10만원도 너끈히 버시는 분들인데 도시에서는 뭐하고 살겠어요. 연로하신 분들은 연평도에 살면서 자식들 얼굴도 못 보고 죽을까봐 무서운 마음이랑 고향 바다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반반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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