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몸 통해 남성의 뇌 구조를 파헤친다
여성의 몸 통해 남성의 뇌 구조를 파헤친다
  • 김남희 / 여성신문 기자
  • 승인 2010.12.03 11:13
  • 수정 2010-12-03 11: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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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서울 덕수궁미술관에서는 여성 모델에 대한 인식 변화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피카소와 모던아트’전이 열리고 있다. 이 전시에는 ‘신표현주의’ 시대에 속하는 20세기 초반의 서양미술의 대표적인 작가 39명의 회화, 조각, 드로잉 121점이 걸렸다.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알베르티나미술관의 컬렉션전인 이번 전시는 피카소, 샤갈, 모딜리아니를 비롯한 유명 화가와 그들의 대표작들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그러나 정작 모던아트의 거장인 그들이 일생을 천착한 ‘여성 모델’에 관한 논의는 찾기 힘들다. 여성 모델을 어떻게 생각하고 표현했는지, 남성 화가들의 뇌 구조를 파헤친다.  

여성은 그림의 오랜 주제 중 하나로, 모델과 화가의 은밀한 관계는 항상 호기심과 관심의 대상이었다. 이 전시의 모든 작품은 남성 작가의 손에서 나왔다. 그러나 인물화의 모델이 된 것은 대부분이 여성이다. 신표현주의 시대의 화가들이 모방과 재현에서 벗어나면서 여성 모델의 묘사에 있어서는 어떤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는지 살펴보는 것은 전시를 색다르고 재밌게 비틀어 볼 수 있는 방법이다.

전시를 기획한 박수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산업화와 세계대전으로 비인간화에 대한 위기의식이 팽배해진 시기의 유럽 작가들은 자신의 고독과 불안을 그림 속 여성 모델에 투영했다. 페미니즘 이전 시대이기에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바라봤던 흔적은 남아있지만, 여성을 생명력과 원시성 회복의 상징으로 여겼다”고 당시의 화풍을 설명했다.

시대의 우울, 병적인 정신상태

자코메티, 모딜리아니, 베크만 등의 작가는 자신의 심리적 상태 표현에 여성이 적합하다고 생각해 여성 모델을 적극 차용했다. 특히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회화 ‘안네트의 초상’(1958)과 조각 ‘받침대 위의 네 여자’(1950)는 집요한 자기응시로 세상 속에 던져진 인간의 불안을 극대화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자코메티보다 스무 살가량 어린 것으로 알려진 아내 안네트는 그의 재현 초상화 속에서 노려보는 시선과 침울한 얼굴 표정으로 관람자를 위협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준다. ‘받침대 위의 네 여자’도 살은 떼어내고 뼈대만으로 여성을 표현했다.

제1차 세계대전의 경험으로 인한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를 가지고 있던 화가 막스 베크만은 히틀러를 피해 암스테르담으로 도피하면서 ‘고양이를 안은 여인’(1942)을 그린다. 베크만의 부인으로 알려진 이 여성은 이 나라 저 나라를 전전하던 자신들의 처량한 처지처럼 우울한 표정이다.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의 ‘슈마즈 차림의 젊은 여인’(1918) 속의 여성도 애수 어리고 슬픈 표정을 하고 있다. 회색 톤을 배경으로 속옷만 입은 채 침대에 걸터앉은 한 여인은 배경과 유사한 느낌을 주는 청회색의 비어있는 눈동자를 하고 있어 화가 특유의 우울함의 감성을 표현한다.

성적 대상으로 묘사

남성 위주의 화단과 남성 구매자 위주의 회화시장에서 전통적으로 여성 모델들은 완벽한 미를 추구하는 대상이 됐다. 20세기 초반 유럽의 작품들에서도 이런 경향이 남아있어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묘사했다. 화류계 여성들을 모델로 한 점도 여전하지만, 원근법과 정확한 데생 등이 무시되고 짤막하거나 길고 대담한 선, 자유로운 구성을 통해 변화를 꾀하기도 했다.

키스 반 동겐의 ‘푸른 눈의 여인’(1908)은 유난히 작은 화폭(27×22㎝)에 간신히 묘사돼 있는 젊은 여자의 머리가 위협적인 존재로 느껴지게 하는 작품이다. 목은 가늘고 섬세하지만 아몬드처럼 생긴 눈은 유난히 크고 푸른색으로 빛나 마치 최면에 걸린 듯한 여성의 모습은 전형적인 ‘팜므파탈’ 그 자체다. 로베르 들로네는 전통적으로 서양미술의 주제가 됐던 삼미신(三美神)을 소재로 ‘미의 세 여신’(‘파리시’를 위한 습작, 1912)을 그렸다. 박수진 학예연구사는 “삼미신은 아름다운 여성의 앞, 뒤, 옆모습을 고루 볼 수 있어 전통적인 인기 소재였다”며 “남성이 ‘보고 싶은’ 아름다운 여성상을 담는 관례가 남아있던 것”이라고 밝혔다.

원시성 회복의 상징

20세기 초 남성 작가들에게 ‘여성의 누드’는 원시적인 아름다움의 상징인 동시에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꿈꾸는 갈망의 표현이기도 했다. 특히 독일 표현주의 화가 집단인 다리파에서는 즉흥성을 강조한 ‘15분 누드’가 유행했다. 이들은 호숫가에 모여 공동생활을 하며 먹고 자고 수영하면서 자유분방한 삶을 살며 작품활동을 했기 때문에 동시대 사람들에게 문란죄로 고소당하기도 했다.

다리파의 대표적인 화가 오토 뮐러의 ‘숲 속의 소녀’(1920)와 에리히 헤켈의 ‘나무 앞의 여인’(1925)은 원시시대의 생명력을 회복하는 방편으로 여성의 누드를 그린 당시의 화풍을 여실히 드러내는 작품이다. 특히 야외 누드는 뮐러 작품의 중심 모티프로, 단순하게 표현된 천국의 풍경 속에 묻혀 몽상에 빠져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곤 했는데, 뮐러는 이것을 ‘속세의 천국’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더불어 뮐러의 ‘점경 인물이 있는 풍경’(1918)과 폴 세잔의 ‘대수욕도’(1906)는 개천에서 목욕을 하는 여인들을 묘사한 그림이다. 자연으로서의 본성을 강조하는 인간과 풍경의 묘사를 위해 사용된 독특한 생략법이 일품이다.

전시는 서울 중구 덕수궁미술관 1,2층 전관에서 2011년 3월 1일까지(월요일 휴관) 열린다. 문의 02-757-3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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