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여성들 “육아·가사에 짓눌려 눌러앉을까봐 두렵다”
인구학자들 초합리성·집중돌봄 때문에 저출산 심화”

 

전국 11개 지역을 취재하며 여성신문이 만난 각계각층 여성들.(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50대 비혼 여성으로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일하는 김애수씨, 전남 영암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50대 기혼 여성 강용순씨,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에서 일하는 20대 베트남 여성 팜티검장(맨 오른쪽)씨, 경기도에서 유치원을 경영하며 대학 강사로도 활동 중인 40대 워킹맘 송명숙씨, 강원도의 한 공공기관에서 인턴으로 일하는 20대 이지아씨.sumatriptan 100 mg sumatriptan 100 mg sumatriptan 100 mg
전국 11개 지역을 취재하며 여성신문이 만난 각계각층 여성들.(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50대 비혼 여성으로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일하는 김애수씨, 전남 영암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50대 기혼 여성 강용순씨,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에서 일하는 20대 베트남 여성 팜티검장(맨 오른쪽)씨, 경기도에서 유치원을 경영하며 대학 강사로도 활동 중인 40대 워킹맘 송명숙씨, 강원도의 한 공공기관에서 인턴으로 일하는 20대 이지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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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리어를 쌓은 후 결혼하고픈 마음이 큰데, 불안한 경제적 지위 때문에 결혼과 출산을 자꾸 미루게 된다. 사실, 결혼만 생각하면 끔찍하다. 아이를 낳았을 때 과연 내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 걱정이 밀려오면서 결혼이란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갈 필요가 있을까 회의하게 된다.”(김민주·28·직장여성·미혼·서울 송파구)

한국언론진흥재단 후원으로 여성신문 1100호부터 13회에 걸쳐 연재된 ‘100세 시대, 대한민국 여성 평생 생애계획 보고서’ 기획취재를 통해 대한민국 여성들의 현실을 가늠하고 미래를 잴 수 있는 사실들이 새롭게 부각됐다.

서울, 경기, 인천, 대구, 경북, 부산, 경남, 충청, 호남, 제주, 강원 11개 지역 여성들을 특별취재팀이 만나본 결과 여성들이 가장 바라는 것은 “몸이 허락하는 한 열심히 일하고 싶다”는 것이고,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육아·가사의 짐에 짓눌려 커리어를 개발하지 못하고 발전 없이 눌러앉는 것”이란 사실이 드러났다.

이런 여성들의 반응은 지역·세대·결혼 유무를 초월한 것이어서 특히 흥미로웠다. 뿐만 아니라 사회적 일에 대한 갈망과 성역할 통념으로 인한 가사·육아 부담이 상호 충돌하면서 우리나라 여성들의 ‘고통지수’를 높인다는 사실도 체감됐다. ‘고통지수’란 한국정책과학원과 함께 10대부터 70대까지 전국 1000명의 여성을 대상으로 삶과 의식을 설문조사한 결과 새롭게 제시된 개념으로 ‘평소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면서 느끼는 고통의 정도를 개량화한 수치’다.

육아부담으로 제2의 가족해체 “보육시설이 무상 급식보다 시급”

 

기존 핵가족이 치열한 육아전쟁으로 또 다른 가족 형태로 분화하고 있고, 이런 형태는 수도권이든 도농 지역이든 상당히 대중화되고 있음도 확인됐다. 그 배경엔 고등교육이 일반화된 딸 세대와 “너는 나와는 다른 삶을 살 거야”란 막연한 기대를 품고 살아온 어머니 세대 간의 말없는 타협이 있었다. 

서울 강남에 사는 금융회사 직원 성주영(29)씨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첫 아이 출산 후 복직을 앞두고 속앓이를 하는 그에게 친정엄마는 “배운 게 아깝다, 어학연수도 다녀왔는데”라며 직장을 그만두고 딸의 육아를 떠맡았다. 반면 성씨는 인천 친정에 맡겨둔 아들을 주말에만 봐야 하는 ‘주말 모자’ 처지를 감수했다. 이와 반대로 친정엄마가 육아를 돕기 위해 평일은 딸네서 지내고 주말에만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 남편과 아직 미혼인 자녀를 돌보는 가족 형태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이처럼 가족을 해체시킬 정도로 육아 부담은 위력적인가. 이에 대해 문용린 서울대 교수(교육학과)는 “무상 급식보다 더 다급한 게 어린이집 등 탁아시설의 확충”이라며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시대는 끝났다”고 잘라 말한다. “나라의 존폐를 가를 시급한 과제니 정책 당국자가 결단해 정책 최우선 순위에 보육문제 해결을 두는 게 당연하다. 여기에 총력을 기울여야 하고, 지원 제도를 구비하는 것이 먼저”라는 문 교수는 “사회의 의식 변화는 그 후 서서히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서울시교육청, 보건복지부 등으로부터 위탁받아 저출산·고령화 사회 관련 교재를 개발해온 윤인경 한국교원대 교수는 장기적인 처방으로 초등학교부터 관련 교육을 적극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구교육학회를 발족해 부회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윤 교수는 “교육의 포커스는 ‘무조건 아이를 낳자’는 것이 아니라 양성평등한 가정·사회 환경의 조성, 생명존중과 배려 마인드, 다양한 가족 형태와 역할에 대한 이해와 수용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교육 현장에서 인식시키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저출산·고령화 위기교육 초등학교 때부터 생활화해야

이들의 조언은 전국 곳곳에서 만난 3040 워킹맘들이 “실효성 없는 대책만 쏟아내지 말고 우리 얘기 좀 직접 들어주길” 주문하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한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김진숙(60·인천 효성동) 인천서부여성회관 운영과장은 “23년 전 내가 하던 육아고민이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면서 “아이가 크는 내내 워킹맘으로서 다른 엄마들처럼 신경을 써주지 못해 죄책감을 느껴야 했다. 아직까지도 그 죄책감이 가슴에 남아있을 정도”라고 말한다.

이에 대해 김영란 숙명여대 역량개발센터장은 우리 사회에 아이 낳기를 강력히 ‘권하는’ 목소리는 요란하지만 실제 아이를 낳는 주체인 여성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 모순”이라고 꼬집는다. 그는 미국의 인구학자 필립 모건 박사의 말을 인용해 한국의 저출산 원인을 ‘초합리성’과 ‘집중적 돌봄’으로 설명한다. 즉 젊은 세대일수록 유치원부터 고등교육까지의 아이 양육비용을 계산해 출산 여부를 결정하고, 출산 후엔 무한 경쟁사회에서 한 자녀만이라도 보란 듯이 잘 키우겠다고 둘째 아이의 출산을 꺼릴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이다.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 아무리 대대적으로 저출산 대비 정책을 발표한다 해도 이 같은 젊은 세대의 생각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면 그야말로 전시성 행사에 그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저출산 관련 정책과 지원 시설이 도심 중심이란 것도 심각한 문제임이 이번 취재 결과 드러났다.

농촌 지역의 경우, 군 단위부터 산부인과 병원을 거의 찾기 힘든 상태라 출산을 위해선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시내로 나가야만 한다. 심부순(52)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춘천지부 상담원은 “출산 환경이 예나 지금이나 좋지 않다는 것이 큰 문제”라며 “결혼 후 화천에 정착했는데 산부인과가 없어 아이 넷을 낳을 때마다 춘천 시내로 나와야 했다”고 회상한다.

어떤 때는 크리스마스 다음날 폭설을 뚫고 만삭의 몸으로 보따리만 달랑 들고 춘천까지 택시를 타고 나와 출산을 한 적도 있다. 아이들이 감기에만 걸려도 마땅히 갈 소아과 병원을 찾기조차 쉽지 않은 농촌의 현실. 한명희(41) 양구여성농업인센터 대표는 “농촌지역에서 출산하는 여성은 이제 대부분 결혼이주 여성”이라며 “농촌 활성화를 위해서라도 국가가 출산과 보육만큼은 책임져줘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농촌 여성들, 가정 내 성평등·출산 인프라 구축 절실

현장에서 느낀 농촌 여성의 소외 정도는 예상보다 컸다. 그 배경엔 시부모 봉양, 가사, 양육, 농사일 등의 1인 다역의 부담과 열악한 교육환경, 부족한 문화시설이 있다. 전업주부이면서 동시에 맞벌이 주부인 농촌 여성들은 논과 밭에서 남편 못지않은 강도의 노동을 하면서도 귀가하면 남편은 휴식, 아내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가사일을 하는 불평등한 상황에 처하곤 한다. 이런 지경이니 나이 들수록 가장 다급한 게 건강이다. 충남 논산에서 딸기농사를 짓는 조명숙(51) 한국여성농업인 논산시연합회 회장은 “일을 많이 해 몸이 굉장히 안 좋다. 50대에 들어서니 허리에 디스크가 생기고, 팔꿈치가 펴지질 않는다”고 토로한다.

“60대 돼서야 내 삶이 완성됐다” 독립적이고 생활력 강한 5070 여성

젊은 세대는 농촌 인근 소도시로 우선 탈출한다. 그러나 중공업이나 중소 상공업 중심 산업구조에 남학생을 선호하는 보수색 짙은 소도시에서 여학생의 취업문은 좁기만 하다. 대전에서 성장해 공주대 군사복지학과 대학원에 재학 중인 강보경(25)씨는 “공무원 시험 준비는 필수 코스”라고 말한다. 안희정(37) 강원도여성가족연구원 연구위원은 “도농 지역 고학력 전업주부들은 “일자리를 구하는 노력이 교육열로 대체돼 이를 자신의 아이에게 쏟아 붓는다”고 분석한다.

반면 농촌 정착이 급증하고 있는 결혼이주 여성들의 원활한 안착을 위해선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으로 대변되는 가부장 불평등 문화와 인종차별을 없애는 것이 시급한 과제로 지적됐다.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 다문화 강사인 팜티검장(24·베트남)씨는 “한국은 베트남과 달리 불평등한 남녀관계가 많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고 말한다. 더구나 “어디를 가도 ‘집이 잘 사느냐, 영어는 할 줄 아느냐’는 질문을 해와 무시당하는 기분이 들고 어린이집 아이들이 아들을 보고 ‘피부가 새까맣다’며 놀아주지 않아 괴로웠다”고 토로한다.

이 같은 농촌 여성의 소외를 줄일 수 있는 대안에 대해 민경자 충남여성정책개발원장은 ▲시·군·구별 여성 활동가 양성 ▲지식서비스 분야 일자리 창출, 유휴 여성인력 활용, 인턴제 시행 등 경제활동 인프라 구축 ▲결혼이주 여성의 인권과 권익 강화 ▲여성 농업인과 고령 농촌 여성에 집중한 복지정책 등을 제시했다.

취재를 통해 재발견한 50대 ‘언니’들의 씩씩함, 그리고 예상 외로 높은 노인 여성들의 삶에 대한 만족도도 강한 인상을 남겼다.

홈플러스 중계점 판매사원 한복희(56·서울 노원구)씨는 “아들이든 딸이든 함께 살 생각이 없다. 정 그러면 실버타운 들어가지”라며 “지금 꿈이 있다면 정년이 연장됐으면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10여 년 넘게 노인 요양시설을 운영하고 있는 김정희 ㈜삶과돌봄 대표는 “여성들은 자식 의존도가 낮을수록 삶의 만족도가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며 “50대는 어느 정도 고등교육을 받기 시작한 세대라 자아정체성과 자아존중감이 강한 편”이라고 설명한다. 이와 함께 앞의 설문조사에서 제시됐듯이 6070 여성들의 고통지수가 상대적으로 낮아 삶의 만족도가 높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광주시에 사는 전업주부 문향선(65)씨는 “60대가 돼서야 비로소 여성으로서의 삶이 완성됐다. 아이들은 다 출가하고, 남편으로부터는 완벽한 자유를 얻었다”며 “생물학적 나이는 문제가 안 된다. 나 스스로 항상 젊은 여자라고 생각하곤 한다”며 당당한 자신감을 보였다. 이에 대해 김영란 센터장은 “고령화는 단지 65세 이상 노령인구가 증가한다는 것을 넘어 ‘생애 과정’(LifeCourse)이 바뀌는 것을 뜻한다”고 말한다. 전문가들은 65세 이상으로 뭉뚱그려져 있는 노년층을 한층 세분화해 연령별 정책을 개발해야 할 때라고 입을 모은다. 

“여성이 처한 현실 ‘인권’ 관점에서” 고통지수·여성정책 연계를

이번 기획취재를 통해 시도된 ‘고통지수’에 대해 김형준 한국정책과학연구원장(명지대 교수)은 “‘지수’란 단번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단계를 거쳐 완성된다”며 “이를 최종적으로 어떻게 정책과 연결시키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어서 “사람들은 대개 ‘고통지수’란 말은 불편해서 그런지 ‘행복지수’를 선호하는데, 후자가 구체적으로 실감이 나느냐”고 반문하면서 “우리 사회 여성들에게 고통지수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해야 양성평등 사회를 위한 실질적인 대책들이 나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화영 한국여성인권진흥원장은 한국 여성들의 고통지수를 낮추기 위해선 “가정폭력, 성폭력, 성매매만 여성인권 문제로 보지 말고 가부장적 사회 분위기나 가사·양육 전담 등 여성이 처한 어려운 현실 역시 여성인권 문제로 폭넓게 봐줘야 한다”고 말한다. 즉 인권 관점에서 세대별·성별·지역별 특성뿐만 아니라 여성 개개인의 역량 증진까지 고려해 여성정책이 개발되고 시행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후원:한국언론진흥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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