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짓기 중등부 최우수상|송기나(대전버드내중 3)

“우와! 정말 산타 할아버지한테 편지가 왔어!”

내가 7살 때 맞았던 크리스마스는 특별했다.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에 답장이 왔기 때문이다. 연습장을 뜯어 큼직하고 삐뚤게 줄이 맞지 않게 보낸 나의 편지와는 달리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나에게 보낸 편지는 A4용지에 주스를 마시고 있는 산타 할아버지 그림과 루돌프가 끄는 썰매를 타고 있는 산타 할아버지의 그림이 있었다. 내 글씨와 달리 작고 정갈하게 쓰인 글씨는 어린 나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 편지를 들고 좋아하던 날 보며 가장 행복해했던 사람, 산타클로스에게 편지를 전해준 사람도 답장을 받아온 사람도 아빠였다.

아빠는 언제나 나의 산타클로스였다. 우리 집에는 나와 동생의 인형과 장난감들이 방 안에 잔뜩 쌓여 있었지만 아빠는 내가 사달라던 인형들은 매일 밤 사가지고 와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산타클로스가 되어 주었다. 산타클로스가 내게 준 것은 인형뿐만이 아니었다. 내게 자신감을 선물해 준 것도, 당당하게 사는 법을 알려준 것도 모두 아빠였다. 아빠가 일찍 들어오는 날이면 나와 동생은 아빠와 같이 목욕을 했다. 비누거품으로 가려진 머리카락을 가지고 머리의 중앙에 도깨비 뿔을 만들기도 하고 양 옆으로 꼬마 악마처럼 두개의 뿔을 만들기도 했다. 모임 때문에 아빠의 귀가가 늦어지면 기다리다 잠이 들기도 했다. 그럴 때면 아빠는 내 방에 들어와 술 냄새를 풍기며 뽀뽀를 하기도 했다.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 가지고 다니라던 연필 다섯 자루는 수업이 끝나면 항상 뾰족했던 연필심이 둥글어져 있었다. 내가 잠자리에 들면 아빠는 몰래 내 책가방에서 필통을 꺼내 밤마다 연필 다섯 자루를 뾰족하게 깎아주었다. 매일 아침 내 필통의 뾰족한 연필 옆에 놓여있던 아빠의 작은 쪽지의 개수가 늘어갈수록 나는 점점 더 성장해갔다.

“기나야. 너 외고 가라.”

내가 중학교 2학년. 지금으로부터 1년 전이었다. 거실에서 과일을 먹으며 얘기를 나누던 주말 밤이었다. 갑작스러운 아빠의 말에 나는 먹으려던 사과를 접시에 내려놓았다. 아무렇지 않게 아빠는 사과를 다시 찍었다. 지금까지 외고라는 말을 한 번도 꺼낸 적 없는 아빠였기 에 나는 당황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싫어.”

어릴 적부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하시던 아빠였기 때문에 내려놓은 포크를 집어들며 싫다고 말을 했다. 그러자 아빠의 표정은 급격히 굳어갔다. 내가 9살 때였다. 학습지를 3주 밀렸을 때 아빠는 지금과 똑같은 표정으로 나를 혼냈었다. 오랜만에 보는 아빠의 표정에 나는 덜컥 겁이 났다. 하지만 외고를 가고 싶은 마음은 죽어도 없었다.

“너한테 좋으니까 가라고 하는 거야. 외고 가.”

아빠는 동생에게 포크에 사과를 찍어 건네주며 내게 말했다. 나는 사과를 먹으려던 손을 거두고 아빠를 보았다. 아빠는 텔레비전을 켰다. 온 가족이 즐겨보는 주말 드라마가 시작하려는 참이었다. 아빠와 동생은 하이파이브를 했고 엄마는 텔레비전 소리를 키우기 시작했다.

“싫어! 나는 외고에 가서 죽어라 공부하는 것도 싫고, 친구들끼리 밤낮 가리지 않고 경쟁하는 것도 싫어! 그리고 나는 글을 쓰고 싶단 말이야! 외고는 절대 안 갈거야!”

나는 현관으로 뛰어가 문을 열고 집을 나왔다. 뒤에서 나를 부르는 엄마의 소리가 들렸지만 계단으로 뛰어내려왔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서 있다가는 다시 집으로 잡혀 들어갈 것 같았다. 3층 정도 계단으로 내려오고 나서야 나는 그 층의 엘리베이터를 눌렀다. 1층에 도착하고 나서 터덜터덜 조금 먼 놀이터로 향했다. 초가을이어서 조금은 쌀쌀했지만 집에 들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놀이터 그네에 앉았다. 초등학교 시절 이후로는 처음 타보는 그네였다. 예전엔 땅에 발이 닿을락말락했는데 지금은 닿고도 남았다. 벌써 이만큼이나 성장했다니… 그네에서 나는 끼익 소리만 나를 위로해주고 있었다. 눈에 눈물이 고였다. 매일 밤 나와 동생 사이에서 아빠는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무조건 열심히 해보라고 했었다. 나를 가장 잘 이해해주고 든든한 지원군이었던 아빠가 내가 싫어하는 일을 권하다니 나에겐 큰 충격이었다.

“어…난데, 못 나와? 아 미안. 너무 늦었지…알겠어. 월요일에 봐.”

끼익거리는 그네 소리 말고 내 말을 들어줄 친구가 필요했다. 하지만 너무 늦은 시간이어서 그런지 다들 나오기 곤란하다는 말을 했다. 핸드폰을 외투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같은 동네에 살던 이모가 이사를 가기 전에는 이모네 집에 가서 사촌언니에게 고민을 털어놓곤 했었지만 지금은 그럴 수도 없었다. 무작정 나오긴 했지만 언제 집에 들어가야 할지 모르겠다. 이대로 들어가기엔 나의 알량한 자존심이 허락을 하지 않았다. 점점 더 거세게 불어오는 바람에 나는 외투를 여미었다. 이렇게 추운 날이면 아빠는 자신의 외투를 벗어 나에게 덮어주곤 했다. 손이 찬 나를 알고 그 크고 따뜻한 손으로 나의 손을 꼭 잡아주었는데.

“기나야.”

아빠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었더니 정말 아빠가 서 있었다. 이번에도 아빠는 나를 찾으러 나오셨다. 분명 내가 후회하고 있지만 자존심 때문에 들어오지 못함을 알고 먼저 오신 것이다. 아빠의 목소리를 듣자 눈물이 울컥 차올랐다. 그네에서 일어나 아빠에게로 달려가 안겼다. 아빠의 품은 언제나 따뜻했다. 아빠는 엉엉 우는 나를 꼭 껴안아 주었다. 아마 내가 미안해하고 있음을 알고 있음이 분명했다. 내 울음이 멈추자 나와 아빠는 그네에 앉았다. 아빠의 손에 들린 검은색 비닐봉지 안에는 아빠와 내가 좋아하는 음료수가 들어있었다. 아빠는 음료수를 따서 나에게 주더니 자신도 음료수를 들이켰다. 이 음료수도 아빠가 좋아해서 나도 좋아하게 된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아빠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자존심이 강한 것도, 불쌍한 사람을 보면 쉽게 지나치지 못하는 것도, 달리기를 잘 하는 것도, 이 음료수를 좋아하는 것까지 모두. 아까 나를 위로해 주던 끼익거리는 그네 소리가 놀이터를 가득 메웠다. 아빠는 으차 하고 그네에서 일어서더니 나의 뒤로 왔다.

“꽉 잡아! 저기 하늘로 날아가도 아빠는 모른다.”

아빠는 웃으며 내게 말했다. 나는 씨익 웃으며 그네 줄을 꽉 잡았다. 쇠로 된 줄이라 손에서 쇠 냄새가 나겠지만 개의치 않았다.

“어이구, 우리 공주 엄청 무거워졌네? 하늘로 못 날아가겠다.”

아빠는 나와 동생을 공주라고 칭했다. 전화를 받을 때도, 심부름을 시킬 때도, 이른 아침 나를 깨울 때도, 집에서 들어와 내 방문을 열을 때도. 낯간지러운 것을 싫어하는 나도 어느새 공주라는 호칭에 익숙해진 것 같다. 나는 “뭐야?”라며 발을 마구 휘저었다. 아빠는 호탕하게 웃으며 좀 더 세게 밀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나를 사정없이 내리치던 바람은 이제 오히려 나를 감싸 안아주었다. 마치 공중에서 나는 것 같은 기분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기나 너는 나중에 뭐가 하고 싶어?”

“나는!! 작가가 될 거야!!”

나의 외침은 아파트 단지에 울려 퍼졌다. 혹시 놀이터 앞 아파트에 사는 내 친구네 집에 들렸을까 부끄러워졌다. 아빠는 좀 더 그네를 세게 밀었다.

“왜 작가가 되고 싶을까 우리 공주?”

“나는!! 글로 사람들한테!! 감동을 줄 거야!! 늙어서!! 머리가 새하얗게 샌 할머니가 되어도!! 나는!! 글만 쓰면서 살거야!! 정말로!!”

아빠는 목소리가 더 커졌다며 허허 웃었다. 나도 같이 크게 웃었다.

“아빠가 언제나 네 뒤에서 밀어줄게. 앞으로 나아갈 때는 뒤에서 기다렸다가 네가 힘들고 지쳐 뒤처질 때는 아빠가 다시 앞으로 밀어줄게. 지금 이렇게 그네를 밀어주는 것처럼. 언제나 든든한 너의 힘이 되어줄게. 하고 싶은 것 다 하게 해줄게. 아빠만 믿고 열심히 해봐 우리 딸. 우리 공주는 잘 할거야.”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니, 홀로 빛나고 있는 하나의 별이 보였다. 문득, 내 길만을 고집했던 한때의 내 모습처럼 외로워 보이는 별. 하지만 지금 아빠가 곁에 있어서 그런 걸까, 아빠와 내 머리 위의 까만 밤하늘은 무수한 별이 쏟아져 있는 것보다 훨씬 밝아 보였다. 문득, 언젠가 책에서 읽은 이야기가 생각났다. 모든 사람이 행복해지길 하는 바람에서 시작되었던 산타클로스의 유래. 내가 열 살까지 믿었던, 산타클로스의 존재. 하지만 그는 막연하게 내 꿈 속에서 존재하는 허상은 아니었다. 나에겐 나만의 산타클로스가 존재했다. 나는 오늘 오랜만에 나의 산타클로스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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