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침묵이 ‘돌이킬 수 없는’ 비극 키워
가족의 침묵이 ‘돌이킬 수 없는’ 비극 키워
  • 김수희 / 여성신문 기자
  • 승인 2010.11.26 11:56
  • 수정 2010-11-26 11: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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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 생계부양자란 이유로 성폭력에 소극적 ‘공모’
“다른 식구는 멀쩡히 잘 사는데 … 왜 나만 나와야 해요?”

 

홀로 두 딸을 키우는 애니는 새로운 남자와 결혼하지만 남편은 자신의 큰딸 본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심지어 성폭행까지 한다. 애니는 그런 남편에게 분노하지만 그와 헤어지지 못한다. 전형적인 친족 성폭력의 모습이 담겨 있는 영화 ‘돈 크라이 마미’의 한 장면.gabapentin generic for what gabapentin generic for what gabapentin generic for what
홀로 두 딸을 키우는 애니는 새로운 남자와 결혼하지만 남편은 자신의 큰딸 본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심지어 성폭행까지 한다. 애니는 그런 남편에게 분노하지만 그와 헤어지지 못한다. 전형적인 친족 성폭력의 모습이 담겨 있는 영화 ‘돈 크라이 마미’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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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세 소녀 말비나는 친할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엄마와 아빠에게 할아버지의 행동을 이야기했지만 가족은 할아버지가 말비나가 예뻐서 그러는 것이라며 아무것도 아닌 일로 치부해버렸다. 할아버지는 “네 아빠는 내 말만 믿거든. 네가 무슨 말을 하든 네 아빠는 너의(말비나) 말을 믿지 않을 거야. 너한테 무슨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거야”라며 말비나를 협박한다. 결국 말비나는 자신을 지지해주는 친구들의 도움으로 할아버지의 행동이 잘못됐다는 것,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 가족의 외면이 정당하지 않은 것을 깨닫고 자신이 상처를 ‘직면’하고 회복해간다.

가해자 절반은 ‘친부’

독일 올덴부르크 청소년 문학상을 수상한 소설 ‘빨간 모자 울음을 터뜨리다’의 주인공 말비나가 겪은 친족성폭력 문제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한국과 그 모습이 흡사하다. 믿고 보호받아야 할 가족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피해자인 자신을 지지해야 할 또 다른 가족에게 외면당하는 소녀의 모습은 종종 우리네 매스컴을 통해서도 보게 되는 장면이다.

4촌 이내의 혈족 및 인척에 의한 친족성폭력은 전체 성범죄의 10% 이상을 차지할 만큼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경찰청 내부 자료에 따르면 친족관계 성폭력범죄 가해자 수가 2006년 331명이었던 것이 2009년 686명으로 2배 이상 크게 증가했고, 그 중 가해자가 동거 친족인 경우가 2009년 425명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지난해 상담 통계에서도 1338건의 성폭력 상담 중 15%가 친족에 의한 것이며, 친족성폭력 중 절반은 ‘친부’에 의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마저도 보통 고소율이 7% 정도인 일반 성폭력에 비해 친족성폭력의 고소율이 4.5~4.8%에 그치고 있어 실제 친족성폭력 발생 횟수는 훨씬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친족성폭력은 가족 내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드러나기 어렵고, 장기화된다는 특징이 있다. 보통 피해자가 초등학생 등 어릴 때부터 시작되는 친족성폭력은 피해 아동이 처음에는 성폭력을 피해로 인지하지 못하거나, 다른 가족 구성원이 아이의 피해를 인지한 후에도 이를 침묵이나 방관으로 은폐하는 데 일조해 피해가 장기화된다.

전문가들은 친족성폭력이 가족의 침묵 속에서 공모되는 것은 한국 사회의 가족주의에 그 요인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친족과 혈연 개념이 강한 가부장적 가족 내에서 가부장에게 집중된 권력은 가족 내 약자인 여성과 아동에 대한 폭력을 발생·지속시키며 다른 가족을 침묵하게 한다는 것이다.

한국여성의전화 가정폭력상담소 김홍미리 부장은 “가족 내에서 힘의 구도가 명확한 상태에서 생계부양이 남편에게 달려 있다면 피해를 발설했을 때의 파장을 고려해 침묵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 또한 아이의 경험에 집중하기보다는 피해 사실을 믿고 싶지 않은 감정, 익숙한 가정을 유지하고 싶은 마음, 큰 문제가 아닌 걸로 넘기고 싶은 마음, 그리고 두려움 등이 개입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공고한 가족주의 안에서 가해자는 죄책감조차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을 신고했다는 것에 분노하기도 한다. 실제 지난 6월 친딸을 성폭행해 7년간 복역한 40대 남성이 출소 20여일 만에 재판 때 ‘거짓 진술’ 해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전 부인을 차로 치어 사망하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또한 빈곤으로 ‘가정’을 유지해야 생존할 수 있는 열악한 환경이나, 심각한 폭력으로 가족이 공포와 무기력에 빠져 있을 때 피해 아이는 가족으로부터 어떠한 지지도 받을 수 없다. 많은 경우 사춘기를 겪으면서 친구나 학교 교사가 피해를 알고 피해자를 가족으로부터 분리하거나, 가출을 통해 집을 나오게 된다.

지켜주지 않은 엄마 원망

이러한 친족에 의한 성폭력은 어린 피해자들에게 육체적·정신적으로 가혹한 상처를 남기지만, 가해자 처벌에 대한 높은 관심만큼 피해자의 치유와 회복에 대한 목소리는 높지 않은 실정이다.

“내가 잘못한 게 아닌데 가해자는 멀쩡하게 잘 살고 있고, 왜 나 혼자 떨어져 나와서 살아야 하나요?”

가장 믿었던 가족에게 성폭행 피해를 당한 어린 피해자들은 ‘친부’를 비롯한 친·인척인 가해 당사자뿐만 아니라 자신을 지지해주지 않은 또 다른 가족에 대해서도 깊은 상처를 안고 있다. 송미헌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 열림터 원장은 “가장 믿었던 사람인 가족에게 피해를 당한 아이들은 사람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리고, 특히 자신을 믿고 지지해주지 않은 엄마에 대한 원망이 많다”고 진단했다.

이수정 임상심리 전문가도 “사람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린 피해 아동들은 다른 사람과 친밀한 관계를 맺지 못해 혼자 지내거나, 몸과 마음에 남아 있는 상처의 기억으로 집착 등 정서적인 문제를 겪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아이가 신뢰를 회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한창 학교생활을 누리며 공부해야 할 나이에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비밀을 숨기며 살아야 하는 아이들은 학습에 있어서도 매우 뒤처진 경우가 많다. 쉼터에서는 피해 아이들이 입소해 생활이 안정되면 친권자 몰래 전학을 시켜 정규 학교생활을 지속하도록 하며, 과외 선생님을 구해 부진한 학습을 보충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집을 떠나 가해자와 분리돼 다른 학교에 다니면서도 피해 아이들은 또 다른 어려움을 감내해야 한다. 성폭력피해자보호시설에서 생활한다는 것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아이들은 가장 친한 친구에게도 늘 비밀을 만들고 거짓말을 해야 하기 때문에 사춘기를 겪으면서 큰 마음의 짐을 져야 한다.

전문가들은 피해 아이들이 과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살아갈 희망을 주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자살 충동이나 불면증, 우울증 등 초기 위기 상황을 극복하고 나면 진로와 적성 문제를 통해 아이들에게 살아갈 이유를 갖게 한다.

송미헌 원장은 “치유와 회복은 본인 스스로의 내적인 힘에 의해 개인차가 있지만, 피해자 스스로가 역경을 극복할 수 있는 힘과 용기, 지혜를 가지고 있다”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아이들을 믿고 기다려주면 아이들은 상처를 극복해낸다”고 강조했다. 상담을 통해 피해자들은 자신의 피해 경험을 타인을 도울 수 있는 자원으로 새롭게 의미부여 하기도 한다. 이수정 임상심리 전문가는 “상처를 묻어두고 치유하지 않으면 성인이 돼서도 정서와 관계에 문제를 일으키지만, 꾸준한 상담을 통해 치유하면 아이들이 피해 경험을 삶의 자원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해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피해자 보호법(여성가족부 소관)과 처벌법(법무부 소관)으로 분리해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지원을 확대했다.

가출 피해자 쉼터 턱없이 부족

피해자보호법의 제정으로 인해 현재 설치·운영 중인 여성폭력 피해자 원스톱지원센터와 아동성폭력전담센터(해바라기아동센터)의 안정적인 운영을 위한 법률적 근거를 마련해 아동·청소년 성폭력 피해자들의 치유를 위한 시스템을 개선하고 있다.(해바라기아동센터 9곳, 원스톱지원센터 17곳,  통합센터인 해바라기 여성·아동지원센터 1곳, 상담소 199곳) 하지만 아직 집을 떠난 피해자들을 보살필 시설은 턱없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아동·청소년 전용 쉼터는 올해 8월과 9월 경남과 경북에 1곳씩 마련됐고, 성폭력 피해자 보호시설은 전국 20개로 서울에는 피해 아동을 위한 시설이 단 1곳 있을 뿐이다. 쉼터의 지원 또한 많이 부족한 상태다. 주부식비와 난방비, 피복비가 포함된 1인당 생계비가 월 13만원 정도이며, 학습지원 또한 학교 등록금 이외에는 지원이 미미해 피해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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