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2004년 5월 ‘세계여성지도자회의’(Global Summit of Women)가 열렸다. 전 세계 80여 개국에서 800명이 넘는 여성 지도자들이 모였고 장·차관급만도 50명에 달했다. 서울시가 ‘세계여성’(GlobeWomen)과 공동 개최한 국제회의였다.

‘세계여성’은 워싱턴 DC에 본부를 두고 공공문제 사업을 수행하는 글로벌 네트워크 조직으로 아이린 회장은 한국에 올 때마다 수행원도 없이 혼자 와서는 모든 실무적인 것을 직접 협상하고 담판을 지었다. 그는 한국과 한국의 여성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숙지하고 있었으며 한국에서 누구를 움직여야 하는지, 누구의 지원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정보도 정확하게 꿰고 있었다.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을 면담한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한국 정부의 참여를 끌어내기 위해 여성부장관의 면담을 요청하고 영부인의 면담도 요청했다. 여성들에게 호의적인 한국의 기업들도 파악해 상당한 후원을 받아냈다. 주미 한국대사관의 협조를 얻어 워싱턴에서 준비회의를 열고 당시 지은희 여성부장관을 준비위원으로 위촉해 참석까지 하게 했으니 그 치밀함과 추진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세계여성지도자회의에는 공짜가 없었다. 아이린 회장은 회의에 참석하는 모든 사람들은 예외 없이 참가등록비를 내는 것이 기본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발표자들도 사례금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등록비를 내야 한다고 했다. 발표할 수 있는 영예로운 기회를 준 것이니 등록비를 내는 것이 당연하다고 했다. 회의가 열리던 기간 내내 회의장 문 앞에는 경호원이 배치돼 등록하지 않은 사람들은 출입이 일절 통제됐다. 이렇게 비용에 민감한 아이린 회장은 개회식에서 주요 내빈을 소개할 때나 주요 내빈의 연설 순서도 후원금을 많이 낸 순으로 할 정도로 철저했다.

이렇듯 정보와 재정 면에서 비즈니스 정신으로 무장한 아이린 회장은 극소수의 인력으로 사무국을 운영하면서도, 거대한 국제회의를 거뜬히 열어와서 그런지 자원봉사자들을 지원하겠다는 서울시 측의 제의도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다. 한국의 젊은 여성들이 자원봉사를 통해 국제적 감각을 익힐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설득한 끝에 마지못해 받아들일 정도였다. 아이린 회장이 20년이 넘도록 전 세계 주요 도시를 돌며 세계여성지도자회의를 개최하고 해마다 규모를 키우고 흑자로 운영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세계여성지도자회의에 가보면 운영요원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오직 아이린 회장만이 보일 뿐. 그는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하는 슈퍼우먼인가? 이런 그를 두고 한 해외언론은 놀랍게도 ‘한 사람의 힘(Power of One)’이 각 분야의 정상급 세계 여성들을 네트워킹하고 있다고 평가한 적이 있다.

우리는 지방자치단체마다 컨벤션 센터를 짓고 컨벤션 뷰로(convention bureau)를 세워 국제회의를 유치한다고 떠들썩한데 컨벤션 센터 하나 없는 ‘세계여성’은 컨벤션 뷰로 그 이상이고 ‘세계여성지도자회의’는 컨벤션 비즈니스의 진수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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