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운동은 어떤 역경에도 계속될 것”
“민주화 운동은 어떤 역경에도 계속될 것”
  • 박윤수 / 여성신문 기자
  • 승인 2010.11.19 12:01
  • 수정 2010-11-19 12: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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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웅산 수치 7년 만에 가택연금 해제…전 세계 여성계 열렬히 환영

 

]미얀마 민주화 운동 지도자인 아웅산 수치(사진) 여사가 지난 13일 7년 만에 가택연금에서 풀려났다. 이에 따라 48년간 군부독재에 시달려온 미얀마에 ‘민주화의 봄’이 도래할 수 있을지 세계인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올해 65세인 수치 여사는 지난 21년 중 15년을 동료, 가족과 연락이 끊긴 채 가택연금 상태에서 보냈다. 수치 여사가 이끄는 민족주의민족동맹당(NLD)은 1990년 총선에서 485석 중 392석을 차지하는 압승을 거뒀지만 군정은 정권 이양을 거부하며 선거 결과를 무효화했다. 당시 총선에서는 NLD 출신 15명을 비롯해 16명의 여성 의원도 탄생했으나 이 중 5명은 선거 직후 투옥됐다. 수치 여사도 군정에 의해 감금됐다 풀려나기를 세 번이나 반복했다.

수치 여사의 석방이 알려지자 전 세계 여성계는 일제히 환영의 뜻을 표했다. 미즈 블로그, 월드 페미니스트, 래디컬 프로페미니스트, 젠더 어크로스 보더스, 페미니스트 블로그 인 잉글리시 등 여성 커뮤니티 및 언론들은 일제히 이 소식을 톱뉴스로 다뤘다. 미즈 블로그는 “우리가 뭉친다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수치 여사의 연설문을 인용하며 지지를 표명했고 래디컬 프로페미니스트는 “계속 안전하고 자유로운 상태로 남기를”이라며 그의 자유를 기원하는 메시지를 전했다.

또한 2006년 노벨상 수상자 시린 에바디 등에 의해 설립된 ‘노벨 여성 이니셔티브’(Nobel Women′s Initiative)는 수치 여사의 석방을 환영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그가 우리들을 비롯해 그의 용기에 감명 받은 전 세계 지지자들과 만날 수 없었지만 우리는 그의 말과 평화로운 정의와 평등 구축이라는 그의 원칙을 마음에 새겨왔다”면서 “머지않아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기를 희망한다”고 전했다.

한편 수치 여사는 석방이 결정된 직후 지체하지 않고 민주화 지도자로서의 행보를 시작했다. 석방 다음날인 14일 NLD 당사 앞에서 7년 만의 첫 대중연설을 갖고 “민주주의의 근간은 표현의 자유”라고 강조한 뒤 “모든 민주 세력들과 연대해 국민의 목소리를 결정한 뒤 우리가 해야 할 일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당사 앞에는 1만여 명에 가까운 수치 여사의 지지자들이 운집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서방 언론으로는 최초로 영국 BBC와 인터뷰를 갖고 “나라의 화합을 위해 군정 지도자와 만나 이야기할 준비가 돼 있다”며 대화와 타협을 제의했다. 그는 또한 총선의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앞으로의 민주화 운동 중 재구금 된다 하더라도 전혀 두렵지 않다”고 말했다.

15일에는 미얀마 주재 외교관들과 만난 자리에서 “2100여 명에 달하는 미얀마 정치범이 석방될 수 있도록 국제사회가 관심을 갖고 미얀마 당국에 압력을 가해달라”고 요청했다. 또한 NLD 지도자들과 만나 당의 법적 지위 회복에 관해 논의했다. NLD는 7일 치러진 총선을 불공정 선거로 규정하고 참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법적인 지위를 잃은 상태다.

수치 여사는 마침내 자유를 맞았지만 그것이 오래 지속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1990년 총선 무효화 이후 총선 실시를 거부해온 군사정부는 지난 7일 20년 만에 총선을 실시했고 정부의 후원을 받은 통합단결발전당(USDP)이 전체 의석의 75%가량을 차지하는 큰 승리를 거두며 부정선거 의혹을 낳았다. 수치 여사의 석방은 부정선거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돌리기 위한 한 수단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수치 여사는 정치적 투쟁과 함께 태어나 일생을 바친 인물이다. 그의 아버지 아웅산 장군은 1949년 영국 정부와 미얀마 독립을 교섭한 독립의 영웅이었으나 이후 정적에 의해 암살당했다. 어머니 또한 미얀마의 정치적 인물 중 한 명이다. 수치 여사는 영국에서 교육을 받고 미국에서 거주하다가 1988년 위독한 어머니를 간병하기 위해 처음 고국으로 돌아왔다가 그 해 미얀마를 휩쓴 민주화 운동에 발을 들여놓았다. 영국의 학자인 마이클 아리스와 결혼한 그는 남편과 두 아들을 해외에 두고 생이별을 해야 했으며 남편이 암으로 사망할 당시에도 귀국하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에 남편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1991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지만 이때도 역시 미얀마를 떠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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