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유별난 정서
한국인의 유별난 정서
  • 문용린 / 서울대 교수(교육학), 전 교육부 장관
  • 승인 2010.11.19 11:50
  • 수정 2010-11-19 11: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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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성격과 정서는 남다르다. 인터넷에 보면 한국인의 정서와 행동 특징을 꼬집은 외국인들의 글이 자주 보인다. 그들이 지적하는 한국인의 특이한 점 10가지를 인용해보면 다음과 같다.

1. 편의점 등에서 계산도 하기 전에 미리 음료수를 따서 마신다. 

2. 정류장에서 떠난 버스를 뒤쫓아 뛴다.

3. 화장실에 들어가면서 지퍼를 내린다.

4. 삼겹살 구울 때 모두 젓가락 들고 덤벼든다.

5. 신호등을 기다리며, 출발 자세로 긴장해 있다.

6. 3분 컵라면을 3분 되기 전에 뚜껑을 열고 먹기 시작한다.

7. 엔딩 자막이 끝나기도 전에 영화관에서 나간다.

8.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면서 양치질 한다.

9. 웹사이트가 3초에 안 열리면 다른 데로 클릭해 나간다.

10. 자판기 커피 나오는 걸 채 못 기다려 컵 잡고 기다린다.

우리 주변에서 자주 발견되는 한국인의 정서적 특징을 네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정서적 특징은 급변성이다. 음식점에 들어가서 음식을 시키기 전까지는 친절하고 상냥하게 대하던 주인이, 그들의 기대에 못 미치는 주문을 하거나 맞는 식단이 없어서 그냥 나오게 되면 표정이 확 바뀐다.

유리할 때에는 친절·상냥하다가 불리해지면 분노한다. 공중전화 옆의 조그만 구멍가게에 들어가 동전을 바꾸어 달라고 하면 금방 흐려지는 안색을 우리는 자주 목격한다. 그래서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사게 된다. 이득이 되면 호들갑을 떨고, 불이익이 되면 매몰찬 눈으로 바라보는 정서의 급변성이 우리 사회를 미성숙한 인간관계가 가득한 사회로 이끌어 간다. 이것이 우리 사회에서의 인간관계를 품위 없게 만든다.

우리 주변에서 자주 목격되는 둘째 정서적 특징은 단순성이다. 내 편인 사람은 무조건 좋고, 반대편은 무조건 나쁘다. 이른바 정서의 흑백논리 현상이 나타난다. 감정을 좋고, 나쁨 두 차원으로만 구획을 짓고 있는 것이다. 자기편에 대해서는 딱 부러지는 자기감정과 정서를 개진해야 하지, 머뭇대거나 어중간한 정서 표현을 하면 ‘사쿠라(사기꾼)’로 낙인찍힌다. 

이렇듯 분화되지 못한 정서는 모든 인간관계를 네 편-내 편의 관계로 이원화해서 어색하게 만들고 모든 대상물을 쾌-불쾌, 좋고-나쁨의 두 차원으로만 구분케 하여 삶의 의미를 제한시킨다. 이혼한 부부는 언제나 적의에 차서 살며 중간적인 정서를 갖지 못한다. 죽어가는 적을 보면서도 연민과 동정, 슬픔을 느끼는 것이 성숙한 정서의 소유자가 아닌가?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이 곤궁에 빠진 것을 보고 오로지 기뻐할 줄밖에 모르고, 그런 정서를 아무런 수치심이나 머뭇거림 없이 내보이는 사람이 우리 주변에 많다. 아니 점점 많아지고 있지 않는가?

우리 주변에 빈번히 나타나는 셋째 정서적 특징은 폭발성과 격정성이다. 대체적으로 정서의 표현이 폭발적이고 격정적이다. 조그만 스트레스와 긴장에도 큰소리를 지르고, 걷어차고, 머리를 쥐어뜯고, 주먹으로 친다. 아주 사소한 접촉사고에도 운전자들은 한두 마디 건네다가 금방 멱살을 잡거나 주먹질, 발길질을 시작한다. 공중전화를 빨리 쓰라는 재촉 몇 마디에 애를 업고 있는 엄마를 칼로 찌르는 20대 청년의 예가 있었지 않은가?

또 명절날 조상의 제사를 모시기 위해 흩어져 살던 형제들이 시골집에 모여 앉아, 부모님 봉양 문제로 목소리가 커지다가 급기야 화를 참지 못한 동생이 식칼을 들고 형을 찔러 죽인 사건도 있었다. 교통 단속을 하는 경관을 화가 난다고 문에 매단 채 그대로 질주한 운전자의 예도 한두 번이 아니다. 

이런 사건은 요즈음의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적 폭발성과 격정성을 잘 보여준다. 어디 그뿐인가. 부부싸움을 하고 화가 난다고 어린 아기를 안고 옥상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한 어느 주부도 있었고, 자기가 매질한 아이의 팔에 금이 갔고, 그것을 부모가 항의했다고 자살해 버린 여교사도 있었다. 

정서를 폭발시키면 합리적인 사고와 계산이 무위로 끝난다. 정서가 폭발하고 격정적일수록 현실적 삶의 세계는 더 어려워지고 불행해진다. 정서가 폭발하고 격정적인 사람이 많을수록, 그 사회에는 애꿎은 피해자가 많아진다. 정서의 통제력이 결여된 사람이 많은 사회는 그 대가를 값비싸게 치르고 있다.

우리 주변에서 빈번히 목격되는 넷째 정서적 특징은 그 표현의 직접성이라는 것이다. 성숙한 사람은 정서 표현이 간접적이고 우회적이다. 특히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줄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비록 우스꽝스런 사람이 앞에 있어서 웃음을 참기가 어렵더라도 그 사람의 체면을 생각해서라도 면전에서는 정서 표현을 삼가는 것이 성숙한 사람이다. 그런데 우리는 요즈음 그렇게 정서 표현을 직접적으로 하는 사람을 많이 목격한다. 

남을 의식해서 정서 표현을 삼가거나 우회적으로 하거나 간접적으로 표현하려는 노력의 결여를 특히 어른들 사이에서도 자주 목격한다. 지하철에서 외국인(특히 유색인)을 직접적으로 쳐다보면서 “그 놈 참 묘하게 생겼다”고 직설적으로 표현하면서 친구와 함께 낄낄대는 철없는 어른을 목격하면서 절망을 느낀 사람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품위 있는 사회는 정서의 성숙을 통해서라야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그런 사회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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