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하는 곳 근처에는 꽤 시설이 좋기로 이름난 직장보육시설이 있다. 아침마다 그 보육시설 앞에는 자가용과 택시가 줄을 선다. 아직 잠에서 덜 깬 아이를 안고 커다란 기저귀 가방을 들고 출근 차림의 엄마들이 차에서 내린다. 큰아이는 걸리고 작은아이는 안고 종종걸음으로 보육시설로 걸어 들어가는 엄마들을 보기도 한다. 바람이 몹시 불던 어느 날 아침에는 버스정류장에서 서너 살쯤 돼 보이는 여자아이를 안고 출근 차림으로 버스를 기다리던 젊은 엄마를 본 적도 있다. 차가 도착했을 때 이미 버스는 초만원이었다. 아이 엄마는 어떻게 아이를 안고 그 만원버스를 탔을까? 아이는 답답하다고 울지 않았을까? 누군가 자리를 양보해주었을까? 그 모습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내 마음이 짠해서 두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나 또한 유모차를 밀고 출퇴근을 한다. 물론 집 가까운 곳에 있는 친정으로 아이를 맡기고 데려오는 것이긴 하지만. 이 땅에서 일하는 엄마들과 일하는 엄마를 둔 아이들이 겪어야 하는 일이다. 

눈물이 많아졌다. 그러잖아도 생긴 것 같지 않게 눈물이 흔해서 가끔씩 친구들이 놀리곤(?) 했는데 아이를 낳고 나서 눈물이 더 많아진 것이다. 아이 엄마가 되기 전엔 지나쳐버린 일상의 소소한 일들이 이젠 가슴으로 절절하게 느껴져 나도 모르게 눈물을 주르륵 흘린다. 그리고 나의 관심 주제가 많이 달라졌다. 결혼 전에는 싱글들의 재테크, 문화, 여행 등에 대한 정보에 나의 촉수가 반응했다면 지금은 온통 육아정책, 보육지원, 베이비 이런 단어에 꽂힌다. 내 삶도 달라졌다. 버는 돈의 70~80% 이상을 모양내고 문화생활, 여행하는 데 소비했다면 지금은 거의 서연이 옷, 장난감 등에 투자(?)하고 있다. 나뿐이겠는가. 아마도 많은 일하는 엄마들이 아이한테 하나라도 더 좋은 거 입히고 맛난 거 입에 넣어주고 싶어서 힘든 걸 마다하고 아침마다 아이와 함께 출근 전쟁을 하고 있는 것일 게다.  

아직-아직이다. 언젠가는, 미래에는 좋은 계획이 있을 것이라고 믿는-결혼하지 않은 내 주변의 수많은 나이든 언니들이 내게 묻는다. 어떻게 하면 결혼할 수 있느냐고. 그리고 그 나이에 아이를 낳을 수 있느냐고. 그럴 때마다 나는 ‘얼마든지 결혼할 수 있고 아이도 낳을 수 있다’고 대답한다. 그러면 많은 언니들이 결혼도 결혼이지만 아이를 낳고 싶다고 말한다. 나이가 들수록 아이가 갖고 싶어진다는 것이다. 이럴 땐 살짝 난감하다. 사실 속마음은 더 늦기 전에 아이부터 낳으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선뜻 혼자라도 아이는 꼭 낳아 길러보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어도 차마 내뱉지 못한다. 아이 낳는 일보다 기르는 일이 더 힘든데 어떻게 혼자라도 아이를 낳아 기르라고 하겠는가. 그래도 용기 내어 말해본다. ‘결혼은 선택이요 아이는 필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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