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일’의 참 가치, 끈질긴 생명력이 시각예술로
여성 ‘일’의 참 가치, 끈질긴 생명력이 시각예술로
  • 정필주 / 여성신문 객원기자
  • 승인 2010.11.19 11:33
  • 수정 2010-11-19 11: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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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몽, 바리데기, 설문대 할망, 웅녀 등
무의식에 자리한 ‘여성’을 불러내는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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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 활동을 취미나 소일거리쯤으로 여기고 ‘여류’ 작가라는 말로 여성 작가들을 얕잡아보는 우리 사회의 인색함이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작업 세계와 일상 양쪽에서 이런 현실을 힘껏 헤쳐나온 여성 작가 10인이 12월 15일까지 대방동 서울여성플라자 여성사전시관에서 ‘워킹 맘마미아(Working Mamma Mia)-그녀들에게는 모든 곳이 현장이다’전에 함께했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여성 작가들은 여전히 굳건히 살아있는 유리천장과 그 너머에 있는 여성을 시각예술의 힘을 빌려 드러내고 있다. 신화와 전설을 가둔 유리천장과 벽이 실은 그리기에, 담아내기에 따라 문과 여닫이 창문이 될 수 있음을 출품작 20여 점을 통해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우리 조상의 탄생설화를 여성의 모습으로 표현한 김인순 작가는 출품작 ‘태몽 09-4’(2009)에서 “임신한 여자의 몸이 갖는 자연의 리듬과 생명의 질서를 표현하고 싶었다”고 한다. “우주의 에너지를 몸에 담아 아이를 기르고 출산하는 여성이 꾸는 태몽은 우리 조상의 탄생설화와 닿아 있고 후손의 미래와도 닿아 있다. 여성의 힘은 정말 따뜻하고 위대하다”고 말하는 작가의 말처럼 상서로운 기운에 둘러싸인 한 명의 여자를 보여주고 있는 작품에서는 이러한 따뜻함을 맘껏 담아내려 한 작가의 풍부한 색감을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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숱한 고생 끝에 아버지를 살리는 약을 구하고 죽음을 관장하는 신이 된다는 ‘바리데기’의 이야기를 표현한 윤석남의 ‘블루 룸’(2010) 역시 바리의 효심 그 너머에 주목한다. 아버지가 자신의 생명을 구한 보상으로 바리에게 나라의 반을 주겠다고 했을 때 바리가 그 제안을 거절한 것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는 윤석남 작가는 “대가를 바라고 일을 하는 모습보다는 여성들이 하는 일 그 자체가 갖는 가치를 바리를 통해 말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윤석남 작가의 바리의 일에 대한 새로운 가치는 여성의 선택에 의한 결정이라는 점에서 더 빛난다.

류준화 작가는 우리네 여신의 원형인 ‘설문대 할망’(2010)과 ‘자청비’(2010)를 문자도라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형상화했다. “여성은 늘 남성의 뒤에 가려져 있었기 때문에 여성의 역사가 없었다”고 말하는 작가는 이번 작업에서 “태초의 창조주 여신들에는 몸 안에 내재된 언어들이 있었을 것이다. 여성의 머리카락에서 언어들이 폭발적으로 분출하는 모습으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설명한다.

작가의 말처럼 남성의 전유물이던 먹으로 쓴 문자를 확장시켜 사람의 손짓과 날개 움직임을 피워낸 것은, 일련의 문자 작업을 통해 단지 역사 속의 여성을 살려내는 일뿐만 아니라 우리의 무의식에 자리한 ‘여성’을 불러내고 응시하자는 시도로 읽힌다.

전시에 참여한 후배 여성 작가인 이피씨도 ‘웅녀’(2009)에서 그간 여성이 설 자리가 없었던 단군신화의 심상에 도전한다. 단군의 어머니인 웅녀에 주목해 곰 한 마리가 인간이 되는 순간을 ‘여성의 제단’이란 설치작업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예술 ‘현장’에서 맞닥뜨린 우리 사회의 유리천장에 대해 고민해온 작가들의 작업들도 있다. 40년 이상을 전문 작가로 활동하며 연륜을 쌓음과 함께 ‘돈’과도 싸워온 박영숙 작가는 ‘여성의 화폐’를 작업으로 내놓았다.

출품작인 ‘화폐개혁 프로젝트’(2003)는 지금의 10원, 100원, 1000원을 대신해 열 샘, 백 샘, 천 샘 등 신화폐를 만든 사진 작업으로, 돈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여성이다. 박영숙 작가는 이번 작품을 통해 “돈이 갖는 권력구조가 있고, 그 구조 밖으로 여성을 소외시키는 제도와 문화가 있음”을 생각해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윤희수 작가는 검정 비닐봉지를 이용해서 여성의 땋은 머리를 커다랗게 늘어뜨린 설치작업 ‘생명력 2010’을 출품했다.

이 역시 일상에서 일하는 여자들을 지켜보며 완성된 작업이다. “검정 비닐봉지는 퇴근길에 콩나물, 두부, 애들한테 필요한 생필품 등을 사서 바리바리 양손에 들고 오는 여성들의 모습에 착안한 것”이라고 말하는 작가는 ‘일터’에서 나와 또 다른 일터로 향하는 여성들의 끈질긴 생명력을 여성들의 ‘머리채로 만든 거대한 성’ 작업으로 표현했다.

시각예술에 있어서 여성 작가의 유리천장은 의외로 굳고 단단한 것일 수 있지만 또 그만큼 의외로 유연하고 다채로운 것일지 모른다. 또 혹시 알랴. 관객들이 이 유리천장을 자신이 속한 일의 현장에서의 유리천장과 비교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전시는 성공한 것이 아닐까. 문의 02-824-30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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