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들과의 약속, 이 길을 가게 하는 원동력”
“할머니들과의 약속, 이 길을 가게 하는 원동력”
  • 김수희 / 여성신문 기자
  • 승인 2010.11.12 11:18
  • 수정 2010-11-12 11: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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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피해 할머니, 234명 중 82명만 생존 안타까워
‘전쟁 중 성폭력’ 국제 이슈화·할머니들 의식 변화에 큰 보람
할머니들, 일본 정부에 “우리 죽으면 누구에게 용서 받으려느냐” 일침

 

10일 열린 수요시위에서 할머니와 함께 한 윤미향 정대협 상임대표.   cialis coupon cialis coupon cialis couponabortion pill abortion pill abortion pillsumatriptan patch http://sumatriptannow.com/patch sumatriptan patchwhat is the generic for bystolic   bystolic coupon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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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웅 여성신문 사진기자 (asrai@womennews.co.kr)
“제가 월급 30만원 받을 때, 강덕경 할머니께서 저 결혼한다고 20만원을 봉투에 넣어 ‘친정엄마가 주는 거라고 생각하고 받아라’ 하실 때 거역할 수 없었던 것이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16일 창립 20주년을 맞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윤미향 상임 대표는 정대협 20년을 돌아보며 위안부 피해 할머니와의 추억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고 꼽았다. “할머니들이 공동생활 하시는 나눔의집 초창기 시절에 할머니들끼리 다투시고 갈 데가 없어 제가 살던 신혼 단칸방에 오셨어요. 주무시라고 이불을 펴드렸는데 저한테 폐가 될까 새벽같이 일어나 할머니 두 분이 손잡고 논두렁을 따라 걸어 돌아가시던 모습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기억됩니다.”

1992년 정대협에서 활동을 시작한 윤미향 대표는 1998년부터 2001년까지 4년을 제외하고는 정대협 역사와 함께해 왔다. 윤 대표는 “사생활도 없이, 삶의 여유마저 죄책감으로 알고 살았던 녹록지 않은 세월이었지만 어느 누구보다 든든한 후원자인 딸도 낳았고, 많은 사람과 함께 열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었던 그 시간이 행복했다”고 말한다. 4년간 외도를 끝내고 다시 정대협에 돌아올 수 있었던 것도 1997년에 돌아가신 강덕경 할머니와의 약속 때문이다. “강덕경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 ‘젊은 우리들에게 할머니 숙제 남기고 편히 가시라고, 제가 끝까지 하겠다’고 약속했어요. 그 약속 때문에 돌아올 수 있었죠.”

다음은 윤 대표와의 일문일답.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창립 20주년을 맞았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아 축하할 만한 일은 아니지만 숱한 어려움 속에서도 국제 여성운동과 함께 한국과 일본 간 역사의 중요한 맥을 이으면서 피해자들의 명예와 인권 회복에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는 것이 정대협 20주년의 의미가 아닐까 생각한다. 정대협 운동을 시작할 때만 해도 위안부 할머니를 몸을 더럽힌 여자라고 손가락질 했다. 20년이 지난 지금은 적어도 그 여성들이 원했던 삶이 아니었고, 우리 모두 피해자에 대해 공동의 책임이 있다는 인식을 가지게 됐다. 그런 인식의 변화 때문에 피해자들도 당당하게 운동의 전면에 나설 수 있었고, 돌아가실 때에도 위로를 받으면서 가실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20년간의 변화와 성과는 무엇인지.

“일본이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기 때문에 국제 여성운동 속으로 가져갈 수 있었고, 위안부 문제가 식민지 범죄이기도 하지만 전시 여성폭력의 문제로 다뤄질 수 있었다. 정대협 운동을 통해 ‘전쟁 중에 일어나는 우발적인 강간도 전쟁범죄’라는 국제적인 기준을 만들어냈다. 또한 일본뿐만 아니라 피해자들에게 2차적인 피해의식을 갖게 만든 한국 사회의 책임에 대해서도 눈을 돌리고 반성하게 됐다.”

-위안부 할머니들에게도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정대협과 함께 운동해 오신 할머니들이 피해자인 자신의 문제를 떠나 당당하게 다른 문제에까지 손 내밀고 연대할 수 있게 됐다. 베트남 위안부 피해자를 만났을 때는 ‘당신들도 일본 대사관 앞에 가서 시위하라. 우리가 지원하겠다’고 할머니들이 독려했다. 한국의 성매매 여성들에게는 ‘우리처럼 살지 마라’ ‘우리처럼 당하지 마라’고 격려하고, 미군 기지촌 할머니들에게는 ‘당신들도 한국 정부나 피해 보상을 요구해야 할 나라가 있으면 당당히 요구하라. 그러면 당신들도 오히려 부끄러움이 없어질 것이다’라고 말한다. 정대협 운동을 통해 할머니들이 앞서가는 여성운동가가 되셨다.”



-그동안 연대했던 사람들이 참 많다.

“국내외 피해자들, 함께했던 인권·평화 운동가들, 여성운동가들, 수요 시위에서 자기 몸도 가누지 못하면서 성명서를 읽어내던 장애인 여성들, 모자를 눌러쓰고 참석한 평택 기지촌 할머니들, 노동조합, 대학생들, 일본 여성단체들, 수녀님들, ‘할머니 힘내세요. 우리가 있어요’라고 하던 유치원 아이들부터 초·중·고등학생까지 굉장히 많은 사람이 떠오른다.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수동적인 참여자가 아니라 주인이 되어 이 운동을 이끌어 나가고 있다.”



-정대협을 이끌어온 사람들이 많다.

“학자였던 윤정옥(전 이화여대 영문학과 교수) 선생과 이효재(전 이화여대 여성학과 교수) 선생, 기생관광 반대 운동을 펼쳤던 한국교회여성연합회,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진보적 여성운동의 결합이 정대협의 시작이다. 초창기 윤정옥, 이효재, 이우정(전 한신대 교수, 전 국회의원), 박순금(전 한국교회여성연합회 회장) 선생들로 대표되는 정대협 1세대는 운동가와 학자의 구분이 없었다.

2세대는 1세대의 제자들인 지은희(전 여성부 장관), 이미경(현 국회의원), 신혜수(유엔 경제·사회·문화권리위원회 위원) 선생들이다. 3세대쯤 되는 지금은 사회학, 역사학, 인문학 교수들이 많이 관여를 하고 있다. 이나영(중앙대 사회학과), 김부자(도쿄 외대), 정현백(성균관대 사학과), 양현아(서울대 법학과), 정진성(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등이 대표적이다. 전국 역사교사모임을 비롯해 민주노총 여성위원회, 한국노총 여성위원회, 전교조 여성위원회 등 다양한 영역이 연대해 운동의 지평이 넓어졌다.”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우리 정부에 바라는 게 있다면.

“위안부 문제가 국제적으로 엄청난 이슈와 여론을 만들었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는 대통령이라면 우리 역사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굉장히 훌륭한 지도자로 기록될 것이다. 요즘 G20 정상회의를 통해 국가 브랜드를 올리자고 이야기하는데, 위안부 피해자들을 19년 동안이나 길거리에 세워두면서 어떻게 국가 브랜드를 올리겠는가. 경제 브랜드가 아무리 올라간다 한들, 인권 후진국이라면 국제사회에서 제대로 추앙받을 수 없을 것이다. 정부가 당면 과제로 이 문제를 해결하도록 일본 정부를 더 강하게 압박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일본 정부에 대해서도 한마디 해달라.

“위안부 할머니들이 수요 시위에서 매번 하시는 말씀이 ‘우리가 죽으면 누구에게 용서 받으려 하느냐’다. ‘우리가 살아있을 때 너희가 해결해야 우리에게 용서 받을 수 있다’고 하신다. 234명이던 할머니들이 이제는 82명만 살아계신다. 피해자들이 용서해야지 정대협이 대신 용서할 수 없다. 일본 정부가 계속 국내법상 관련 조항이 없다는 핑계를 대는데, 하루빨리 행정적·입법적인 조치를 취해야 하는 것 아닌가. 20년이 아니라 앞으로 30년, 40년이 지나더라도 이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면 이 운동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일본이 굴복하지 않으면 우리는 축배를 들 수 없다. 축배를 포기하는 대신 다른 공간으로 이 문제를 가지고 이동할 것이다. 전시 성폭력 문제나 역사 교육 등 그 틀은 달라지더라도 그 속에서 위안부 문제가 제기되고 여론화되고 국제 운동화되도록 할 것이다.”

정대협이 20년간 걸어온 길

1990년 11월16일 37개 여성단체와 개인이 모여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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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8월14일 당시 67세였던 김학순 할머니가 기자회견을 통해 한국 최초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밝힘. 그해 9월 18일 정신대 신고 전화를 개통하고 석 달여 후 김학순 할머니 등 3명의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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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1월8일 올해 1월 900회를 맞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가 처음 시작됨. 당시 미야자와 일본 총리의 방한을 계기로 시작돼 간헐적으로 진행되던 시위가 정기시위로 자리 잡음.

2000년 12월7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일본군 성노예전범 여성국제법정’에서 “일황 히로히토 유죄” 판결을 내렸으며, 다음해인 2001년 3월 일본 참의원(민주당·공산당·사민당)이 전시 성적 강제 피해자 문제의 해결 촉진에 관한 법률안을 일본 국회에 공동 제출함. 이후로도 법안이 계속 제출되고 있으나 일본 정부의 태도는 별다른 변화 없음. 2001년 12월 3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2000년 일본군성노예전범 여성국제법정 최종 판결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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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6월 미국 의회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배상을 내용으로 하는 상·하원 공동 결의안 제출.

2004년 12월16일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건립위원회가 발족했으나 2010년 현재까지 답보 상태.

2006년 3월15일 제700차 정기 수요 시위가 8개국 16개 도시에서 동시에 연대 집회로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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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서울에서 개최된 8차 아시아연대회의에 북한의 ‘조선 일본군 위안부 및 강제연행 피해자보상 대책위원회’ 홍선옥 대표 참가.

2010년 1월13일 900회 수요 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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