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장철수 감독)에는 ‘불친절한’ 해원씨(지성원)가 나온다. 영화는 김복남(서영희)이라는 여성의 무시무시한 복수극인데, 복수의 대상은 복남을 착취하고 멸시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가 믿고 의지하던 친구 해원까지도 포함된다. 그 이유는 이렇다. “넌(해원) 너무 불친절해.”

에너지가 강한 영화는 디테일이나 섬세함이 부족한 경우가 많지만, 이 영화는 디테일이 살아 있다. 특히 많은 부분을 차지하지는 않지만 해원에 대한 묘사는 섬세한 편이다. 은행 직원인 해원은 대출을 요구하는 고객과의 승강이에 지쳐 있다. 고객의 사정은 딱해서 친절하게 대해주면 좋으련만, 집요한 고객에게 해원은 짜증 섞인 태도와 매몰찬 거절로 대함으로써 고객의 원성뿐 아니라 상사로부터 질책을 받는다.

도시의 삶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업무에 시달린 그의 감정은 소진돼 여유가 없다. 이러한 현상은 친구인 복남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 도움이 절실했던 복남에게 ‘불친절하게’ 대함으로써 그의 분노를 폭발시킨 것이다. 물론 불친절은 표면적 이유이고, 그보다는 무관심과 이기적 태도 그리고 ‘악’을 방조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악’의 편에 서는 것과 같다는 극단적 책임론의 발로일 테지만, ‘불친절’ 때문에 혹독한 대가를 치르는 모습은 꽤 충격적이다.

현대는 사람의 감정까지도 상품화했고, 서비스 업종은 특히 이러한 ‘감정노동’을 필수로 요구하고 있다. 미국 UC버클리대 교수이며 사회학자인 앨리 러셀 혹실드는 그간 사적 차원에서 개인의 자질 혹은 인간적인 특성으로만 여겨지던 ‘감정’이 어떻게 시장 속에서 상품화할 수 있는 자원으로 바뀌었는지를 그의 저서 ‘감정노동’(The Managed Heart)에서 규명한다.

감정노동은 본디 감정을 숨긴 채 직업상 다른 표정과 몸짓을 하는 것을 말한다. 감정노동을 하는 사람은 고객의 기분을 좋게 하려고 늘 긴장하며 자기 감정을 관리해야 한다. 그러다보니 자연 스트레스와 우울증 같은 심리적 문제와 정신적 부조화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감정노동은 여성에게 더 많이 부가되는 양상을 보인다. 은행의 창구직원, 백화점 판매원이나 음식점의 종업원 등 서비스 업종 종사자의 여성 비중이 높고, 대면 서비스 업무는 대개 하급직 여성에게 부과되는 경우가 더 많은 까닭이다.

감정노동자들은 늘 미소 띤 얼굴로 손님을 맞아야 한다. 그들은 자신의 미소만큼이나 즐거울까? ‘웃어도 웃는 게 아닌’ 그들의 미소와 친절의 이면에는 자신의 ‘진짜 감정’에서 소외돼 있는 그들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 친절은 선량한 미덕임에 틀림없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감정까지 착취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겠다. 때로는 ‘불친절한’ 해원씨들에게 분노하는 대신 그들의 감정을 헤아려보는 여유를 가져봄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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