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질없는 욕심과 쓸데없는 걱정들을 내려놓고 걷기 시작한 지 이제 9일째,
걸음마를 뗀 아이처럼 행복을 배우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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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죽을 것 같던 피레네 산맥을 넘고 크고 작은 도시들을 지나 벌써 9일째에 접어들었다. 피레네 산맥은 그림같이 아름다웠지만 아침에 너무 늦게 출발한 데다가 초반에 체력 안배를 잘못하는 통에 막판에 지나가는 차를 얻어 타고 숙소까지 가는 반칙(?)을 저질러야 했다. 그걸 교훈 삼아 이튿날부터 아침 7시 전에 길을 출발하는 원칙을 세웠고, 무리하게 일정을 잡지도 않았다. 그렇게 오늘도 22㎞를 걸었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가방을 벗어 던지고 침대 위에 대자로 드러누웠다. 이제 길에 익숙해질 만도 한데 몸은 좀처럼 고통에 익숙해지질 않는다.

길 위를 걸으며 심연의 나를 꺼내 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을 갖고자 했던 원대한 포부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7~8㎏에 육박하는 배낭을 메고 하루 평균 25㎞를 걷는 것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배낭의 무게에 익숙지 않은 나의 어깨는 통증으로 감각이 마비될 지경에 이르렀고, 걸으면 걸을수록 무릎과 발목에 이어 다리와 골반을 잇는 고관절까지 아파오기 시작했다. 혹시나 해서 사온 무릎 보호대를 써봤지만 더위로 땀이 스며 땀띠가 나기 시작하는 바람에 그것도 그만뒀다. 아침은 초겨울처럼 춥고 한낮의 더위는 지옥처럼 달아올라 감기까지 다시 도졌다. 아! 내 체력이 고작 이 정도였나? 그래도 친구들 중에서는 강단 있는 체력이었는데 여기에 와서 걷다 보니 매일매일 한계에 부딪히는 느낌이다. 정말 거짓말 안 보태고 딱 죽기 일보 직전에 간신히 숙소에 도착하는 정도랄까.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내 안의 나를 들여다보고 진정한 자아를 찾겠다는 고상한 계획은 수포로 돌아간 지 오래다. 새벽같이 일어나 고양이 세수를 하고 가방을 메면 어깨의 통증이 되살아난다. 그리고 한 걸음씩 뗄 때마다 발바닥부터 전해지는 통증이 온몸으로 번져나간다. 통증에 익숙해질 무렵 상념도 사라진다. 그저 매일 매일이 걷고 먹고 화장실 가고, 다시 걷고 쉬다가 잠자는 일정의 연속이다. 생각이 없어지니 마음도 한결 편안해졌다. 좋다는 화장품을 써보고 피부과에서 레이저 시술을 받아도 항상 나를 괴롭히던 피부 트러블이 이곳에 온 지 며칠 만에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한국에서처럼 이중 삼중 세안을 하는 것도 아니고 로션에 선크림을 바르는 게 고작인데 피부는 생기를 되찾았고 표정까지 달라졌다. 역시 모든 병은 마음에서 온다는 말이 맞는가 보다. 생각이 없어지니 마음이 편해지고, 마음이 편해지니 표정까지 밝아진다.

이곳에 오니 ‘나이 값’을 할 필요도 없어졌다. 한국에서는 나이에 삶을 맞추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 길 위에서는 마음의 나이가 곧 삶의 기준이 된다. 머리카락이 하얗게 샌 할아버지 할머니도 이곳에서는 길을 걷는 순례자일 뿐, 늙었다는 이유로 소외 받지도 그렇다고 대접을 바라지도 않는다. 우리는 같이 어울려 길을 걷고 같이 웃으며 이 순간을 함께 즐긴다.     

누군가는 물을 것이다. 결코 쉽지 않은 이 길을 무엇 때문에 걷느냐고. 그런데 그에 대한 대답은 정말 간단하다. 이 길을 걷는 것이 행복하기 때문이다. 나는 지난 37년 동안 서울을 벗어나 본 적이 없는 서울토박이다. 집이든 회사든 둘 중 한 곳은 항상 서울 한복판에 존재했었고, 스페인에 오기 전에도 20층짜리 아파트에 살면서 빌딩 숲에서 하루 종일 일하고 아침저녁 버스와 지하철에서 시달리는 삶을 살았던 사람이다. 그런데 산티아고 순례길을 시작하고부터 ‘삶’을 걷기 시작했다. 콘크리트나 아스팔트 길 대신 숲길과 포도밭 사이로 난 아름다운 길을 걷고, 빌딩 숲을 벗어나 세월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크고 작은 중세 도시들을 매일매일 만나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이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시작한 지 3일째 팜플로나(Pamplona)에서 만난 이탈리아 청년 파올로는 흔쾌히 길동무가 되어 주었다. 마을 축제가 있었던 푸엔테 라 레이나(Puente La Reina)에서는 스페인 아저씨 다비드를 만나 신나는 탱고를 추었고 근사한 저녁식사에도 초대 받았다.(밤 10시면 문을 닫고 불을 끄는 알베르게로 돌아가기 위해 신데렐라처럼 허둥대야 했지만) 에스테야(Estella)의 알베르게에서는 순례자 30여 명이 모여 파스타와 불고기로 국경을 초월한 저녁식사를 함께했다. 우리는 함께 노래하고 먹고 마시며 이 예기치 못한 만남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행복해했다. 아즈케타(Azqueta)의 길 위에서 만난 고집스런 양떼와 비온 뒤의 무지개, 아침을 먹기 위에 멈춰 섰던 산솔(Sansol)의 바(Bar)에서 흘러나오던 비틀스와 롤링스톤스, 엘비스 프레슬리도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었다.

언제부터였을까? 철없던 어린 시절 손에 묻은 흙을 털어내기 시작하면서부터? 학교에서 나눠준 가정형편조사서에 가짜로 적어 넣은 부모님의 학벌과 동산, 부동산을 나눠 적어야 했던 그 순간부터? 대학졸업장이 간판이 되는 걸 안 순간부터? 사는 동네 수준에 따라 계층이 나뉠 수 있다는 걸 실감하면서부터? 도대체 언제부터 우리에게서 행복이 빠져나가기 시작한 걸까? 그저 은행 통장 잔고에 숫자가 늘어나는 것에서 내가 살아있음을 어렴풋이 실감하던 삶을 돌아보니 영화 빠삐용의 죄목처럼 ‘인생을 낭비한 죄’를 내게도 물어야 할 것 같았다.

부질없는 욕심과 쓸 데 없는 걱정들을 내려놓고 걷기 시작한 지 이제 9일째, 걸음마를 뗀 아이처럼 행복을 배우기 시작한다. 오늘도 나는 이 길 위에서 행복한 하루를 더 보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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