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자판으로 원고를 쓰는 것이 서투르던 꽤 오래 전 어느 날에 있었던 일이다.

나는 분명히 자판에 ‘사람’이라고 썼는데 프린트해서 나온 글자는 ‘삶’이었다. 웬일인가 하고 그 두 단어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더니 ‘삶’이라는 글자 속에 ‘사람’이 들어 있는 것이었다. 그 때 나는 새삼스럽게 ‘사람’의 원형(原型)은 ‘삶’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엄마의 몸에서 분리되어 세상에 나올 때 거의 모든 아기는 3㎏정도밖에 안 되는 작은 몸으로, 엄마가 돌보아주지 않는다면 단 한순간도 제 힘으로는 살아낼 수 없는 연약한 작은 생명으로 태어난다. 그러나 그 힘없어 보이는 ‘삶’ 속에 응축(凝縮)돼 있는 무궁무진한 가능성과 잠재능력이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 것인지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다만 모든 ‘삶’은 가정과 학교와 사회에서 다양하고 개별적인 시간을 역동적으로 지나면서 얻어지는 경험을 바탕으로 각각 독특하고 독립적인 ‘사람’으로 성장하게 된다는 사실만은 확실하다. 이 과정에서 부닥치게 되는 기쁨과 절망과 보람과 좌절 등의 고비 고비를 실질적으로 정성스럽고 순수하게 동참해주(려)는 사람은 여성인 ‘어머니’이고, 그 고비 고비를 보다 전문적으로 도와주는 수많은 학문 중의 하나가 ‘상담학’이라고 표현해도 별로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삶·사람·상담이라는 세 단어가 여성과 상담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상담자 교육(counselor education)을 전공하고 이 분야에 종사해온 지가 40년 가까이 되어 온다. 이러한 연륜을 바탕으로 나는 “상담학은 무궁무진한 잠재능력을 가지고 태어난 ‘삶’이 ‘사람’으로 성숙하는 과정에서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전문적으로 도와주고 이끌어주는 학문”이라고 정의(定義)하고, “상담자는 내담자의 현재 모습이 아무리 바람직하지 않더라도 그 내면에는 반드시 선한 동기와 발현되지 않은 잠재능력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그가 삶에 대한 순수한 애정과 열정으로 자기 삶을 제대로 살아보겠다는 자기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그와 기쁘게 동행하는, 상담학의 전문 능력을 갖춘 사람이다”라고 정의한다. 이런 나의 상담학과 상담자에 대한 정의를 통틀어서 나는 ‘상담정신’이라고 이름 붙이고 이 정신이야말로 진정한 여성성(女性性)의 요체(要諦)가 아닐까 생각한다. 하나의 학문을 여성적, 남성적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이런 면에서 상담학은 여성성이 강한 학문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몇 년 전부터 나에게는 상담정신 가득한 세상에서 살고 싶은 염원이 있다. 사람들이 서로 상대방을 순수하게 이해하고 긍정적으로 신뢰하며 정직하게 배려하면서 성장하는 순한 삶, 이런 삶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살아가는 좋은 커뮤니티를 이루어 보고 싶은 꿈이 있다. 요즈음 나는 나의 이런 꿈이 실현될 수 있다는 희망에 차 있다. 왜냐하면 최근에 상담을 공부하려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으며 상담을 공부하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들의 순수한 동기와 열정, 타인에 대한 배려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상담을 공부하려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여성이라는 점에서 나는 이런 많은 여성들이 진정한 여성성을 강화하고 보전해서 거칠어지고 황폐해가는 우리들의 정신세계를 정화시키는 데 앞장서 주기를 강력하게 권하고 싶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