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부가 출범하고 나서 몇 달이 지났다. 2001년 7월 여성주간이 막 끝났다. 그런데 갑자기 언론에서 미 국무부의 인신매매 보고서를 인용하면서 ‘한국은 인신매매 3등급’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한국은 인신매매 주요 거래국이며 이를 방지하기 위한 납득할 만한 노력조차 기울이지 않는 나라, 특별히 인신매매를 막기 위한 법도 없는 3등급 국가라는 것이다. 한국의 젊은 여성들이 성적 착취 목적으로 주로 미국에 인신매매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중국 등 다른 나라의 여성들도 한국을 통해 미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로 팔려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한국은 인신매매 송출국이자 경유국이라는 것이다.

보건복지부로부터 윤락행위등방지법을 이관 받아 이를 전면 재검토하고 있던 여성부로서는 어이가 없었다. 관계부처인 법무부와 외교통상부에는 비상이 걸렸다. 법무부 차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관계부처 대책반이 바로 구성됐다. 우선 미국의 인신매매 보고서가 어떤 성격의 것인지와 미국이 과연 어떤 경로와 방법으로 한국의 실태를 조사했는지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그 보고서는 미국이 2000년에 제정한 인신매매특별법에 근거한 것이었다. 미국은 이미 수년 전부터 유엔 등 국제무대에서 인신매매특별법을 제정할 것이라는 것을 예고해 왔었다. 이 법에 따라 세계 각국의 실태를 파악하여 최하위인 3등급 국가에는 경제적 제재 조치를 취할 것임을 밝혀 왔었다. 그런데 아무도 여기에 주목하지 않았던 게 우리의 실책이라면 실책이었다. 주미 한국대사관의 외교관도 또 대사관에 파견 나간 검사도 이러한 정보를 놓쳤던 것이다. 법무부와 외교부 간에 책임공방이 오고갔다. 물론 유엔의 여성 관련 회의에서도 미국 대표가 인신매매특별법에 대해 예고했지만 회의에 정부 대표로 참석한 관계부처 공무원들도 이 부분을 간과했다.

미국은 한국 실태를 조사하면서 주한 미국대사관을 통해 막 출범한 여성부에 전화를 걸어 문의했다는데 우리 측의 전화 응대 미숙으로 담당자와 제대로 연결이 되지 않았다고 했고 현장의 한국 NGO들은 한국에는 성매매 피해 여성을 보호하는 입법이나 예산 등 제도적 장치가 없노라고 얘기했다고 한다. 어처구니없게도 한국에 대한 정보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것이다.

관계부처 대책반은 일단 외교 채널을 통해 미국의 허술한 정보 파악에 이의를 제기하고 한국의 인신매매 관련 법제도에 관한 상세한 정보를 제공키로 했다. 미국은 후에 한국에 대한 정보 파악의 방법이 미흡했음을 인정하고 우리가 제공한 정보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이듬해 미 국무부 인신매매보고서는 한국을 인신매매 1등급 국가로 올려놓았다.

그 사이 우리 정부는 군산 유흥가 화재참사를 계기로 성매매방지 종합대책을 수립하는 한편, 윤락행위등방지법을 폐지하는 대신 성매매 알선 등 행위를 가중 처벌하는 등 성매매 목적의 인신매매를 근절하고 성매매 피해 여성의 인권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성매매특별법을 제정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그렇게 해서 성매매특별법은 2004년 3월에 제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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