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에서 아이를 ‘놓아’기르는 ‘돌봄의 문화’가 그립다

서연이를 낳고 기르느라 일을 쉬었는데 다시 시작하게 됐다. 1년 3개월 만의 일이다. 어린 서연이를 떼어놓고 나오는 게 맘에 걸리긴 하지만 집밖으로 나오는 시점이 문제지, 언젠간 나올 일이었다. 생각보다 빨라졌을 뿐….

하지만 아침마다 울며불며 매달리는 서연이를 달래고 억지로 아줌마 손에 맡기고 뒤돌아서는 내 가슴은 안타까움으로 애달프다. 만 15개월 만에 엄마와 떨어져야 하는 서연이의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누군가는 더 어려서 떼어놓으면 뭘 모를 때이기 때문에 엄마나 아기나 덜 힘들 텐데, 돌이 지나면 아기도 눈치가 빤해지기 때문에 더 힘들다는 것이다.

서연이는 아줌마가 집에 오고 엄마가 옷을 갈아입기 시작하면 벌써 입을 삐죽이며 두 눈엔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기 시작한다. 엄마가 벗어놓은 옷가지들을 주섬주섬 챙기며 가슴에 꼭 끌어안곤 얼굴을 파묻고 엄마 곁에서 서성거린다. 이미 엄마를 잡을 수 없으니 엄마 옷이라도 붙들고 있겠다는 듯이.

여자가 일을 하려면 친정엄마(또는 시어머니), 도우미 아줌마, 이웃까지 최소한 세 명의 다른 여자들의 희생이 있어야 한단다. 세 명의 여자뿐이랴. 요즘은 육아를 담당하는 할아버지도 있고, 남편의 절대적인 내조도 필요하고, 직장에서의 협조도 필요하다.

마흔넷의 아기 엄마.

일을 다시 시작하기에 결코 만만치 않은 조건이다. 남들이 일을 그만둘 나이에 다시 일을 시작하는 것이다. 흔치 않은 기회를 얻게 된 데 감사하고, 또 새로운 일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에 감사한다. 서연이를 낳고 기르면서 아이와 함께 성장하고 젊은 엄마, 가능하면 늙지 않는 엄마(?)가 되기 위해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기에 조금 이르지만 슬슬 워밍업을 시작해야 했다.

일을 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가장 마음에 걸리는 게 결국 육아문제였다. 누구의 손에 맡길 것이냐, 어떻게 맡길 것이냐 등 마음 써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이렇게 빨리 다시 일을 시작할 계획이 아니었기 때문에 남들은 임신했을 때부터 대기자 명단에 올린다는 어린이집도 알아보지 않았고, 도우미 아줌마의 손도 전적으로 필요하지 않았었다.

부랴부랴 친정 가까이 이사할 집을 구하고 도우미 아줌마를 새로 구하고,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어린이집에 대기자 명단으로 올리면서 바쁘게 움직였다. 서울과 경기도의 육아 지원 정책의 실질적인 차이도 알게 됐고, 말로만 듣던 워킹맘의 육아에 대한 비애가 얼마나 큰지 몸으로 마음으로 느끼게 됐다.

마음 놓고 아이를 맡길 곳이 없다. 맘에 드는 도우미를 구하는 것도 힘들고 집 가까이 있는 어린이집에 들어가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두 돌도 채 안 된 아기를 벌써부터 시설에 맡긴다는 게 걱정되기도 하고, 또 남의 손에 맡기는 것도 탐탁지 않았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건강하셔서 외갓집 가까이로 이사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일하는 여자들이 아이를 마음 놓고 맡기고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시스템이 아쉽다. 단순히 시설만의 문제가 아니라 예전처럼 동네에서, 마을에서 아이들이 맘껏 뛰어놀게 놓아 기를 수 있는 돌봄의 문화가 그립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