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부터 북한에 남아 있던 처나 자녀들이 남한에서 새로이 형성된 새 어머니와 이복동생들을 상대로 혼인무효소송을 제기하거나 상속무효소송, 부동산처분금지가처분 신청을 제기하는 등 가족관계 확인이나 상속 등의 재산권, 저작권 등을 둘러싼 북한 주민들의 제소와 법적 다툼이 점차 증가되는 추세다.

예를 들어 북한에서 처자식을 두고 결혼생활을 하던 사람이 남한으로 내려와 다시 결혼해 자녀를 출산하여 살고 있다면, 우리나라 법에 따라 법률상 배우자는 남한에서 결혼한 처가 되고 그 처와 두 사람 사이의 자녀들이 상속권을 갖게 된다. 우리나라 가족관계등록부나 혼인관계등록부 그 어디에도 북한에 남겨두고 온 처나 자녀들의 기재는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북한에 남겨진 처가 자녀를 데리고 다른 남자와 결혼해 살고 있다면, 북한의 신분등록제도 그 어디에도 남한으로 넘어온 남편에 대한 기재는 없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통일이 된다면, 우리 민법상 북한에 남아 있던 처가 초혼(初婚)으로서 법적으로 유효한 혼인이 되고 남한에서 새로 결혼한 처는 중혼(重婚), 흔히들 말하는 축첩(蓄妾)관계가 돼 버리기 때문에, 그를 둘러싼 수많은 법적인 분쟁이 기다리고 있다.

우선 남한의 처는 북한에 있던 본처(本妻)와 달리 첩(妾)이 돼 버리는지라, 북한에 남아 있는 처가 남한의 처를 상대로 혼인취소청구소송과 함께 간통죄로 형사고소를 할 수도 있고, 그에 따른 위자료 청구를 할 수도 있으며, 남한의 가족관계부에 기재된 자녀들은 순식간에 혼외자가 돼 버린다. 남한으로 내려온 남편이 이미 사망해 상속이 이뤄졌다면, 북한의 처와 자녀들은 남한의 처를 상대로 상속무효소송을 제기하여 상속재산을 회수함은 물론 남한의 자녀들에게도 자신들의 상속지분을 주장하여 상속재산의 반환을 요구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남한의 처자식들은 갑자기 나타난 북한의 처자식을 상대로 진짜 처자식인지 여부를 둘러싼 친자확인 등의 소송이 줄을 이을 것이다.

반대로, 남한으로 내려온 남편은 북한에 남아 있던 처를 상대로 다른 남자와의 혼인이 무효임을 주장할 수 있고, 이를 이유로 이혼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다. 또 북한에 남겨둔 자녀들은 인지를 하거나 인지청구소송을 해야만 남한의 아버지 가족관계등록부에 기재될 수 있으며, 북한의 처가 새로이 결혼해 출산한 자녀들은 남한의 남편과 유효한 혼인기간 중에 태어난 자녀들이므로 북한에서의 등록부에서 말소를 구함과 함께 일단 남한의 가족관계등록부에 친자로 등록을 한 뒤 친자관계부존재나 친생부인의 소를 통하여 친자가 아님을 확인해야 한다. 남한의 처가 통일 이전의 신분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처를 상대로 남편의 혼인관계를 부활시키고 자신의 혼인관계를 취소한 뒤, 북한의 처를 상대로 이혼소송을 한 뒤 다시 혼인신고를 해야 한다. 그 외 마구 엉클어져 있는 수많은 가족관계며 친족관계를 확인하기 위한 소송도 줄을 이을 것이다.

남한과 북한에 처자식을 두고 있는 한 사람의 예만 들더라도 위에서와 같은 수많은 소송과 그에 따른 엄청난 시간적·경제적·정서적 갈등이 뒤따르게 되며, 민·형사, 행정, 가사소송 등 그야말로 국가 법체계 자체가 혼돈의 상태로 빠질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정부가 남북 주민의 가족관계와 재산상속 등에 관한 원칙을 담은 ‘남북 주민 사이의 가족관계 및 상속 등에 관한 특례법’(가칭) 초안을 마련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특례법의 조문이 30여 개에 불과한지라, 이 조문만으로 남북 관계가 급변하거나 통일을 전후해 일어날 수 있는 법률문제와 그 해결책이 얼마나 반영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시급히 법안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법안에 어떤 내용이 포함되는지가 더 중요하므로, 충분한 의견 수렴과 검토를 거쳐 통일을 대비한 준비에 한 걸음 더 다가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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