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교육보다 더 중요한 건 ‘적기’교육

조기교육보다는 적기교육(適期敎育)이 더 중요하다. 즉, 교육학적 견지에서는 적기교육이 이론과 실제에 있어서 더욱 탄탄한 이론이다. 조기교육에 대한 과잉 관심을 많은 교육자들이 염려하고 있는데, 그 주장의 핵심은 뇌가 발달하는 부분이 시기에 따라 다르므로 교육도 그에 맞추어 ‘적기’에 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기교육에 대한 과잉 집착이 다 좋은 것이 아님을 깨달아 가는 부모들이 요즘 점차 많아지고 있음은 그나마 바람직한 일이다. 

교육의 적기(適期)라는 차원에서 보면, 도덕이나 사람됨과 관련된 교육은 빠를수록 효과적이다. 즉 도덕교육에는 조기교육이 더 효과적이다. ‘사람다운 사람’을 위한 교육만큼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뜻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이런 교육은 열 살 전에 모두 끝내야 한다.

현재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뇌에서 도덕적인 추론 능력, 즉 사람다운 행동을 하게 만드는 것은 전두엽에서 담당한다. 그런데 어릴 때 전두엽에 손상을 입느냐, 어른이 되고 난 후 전두엽에 손상을 입느냐에 따라 굉장히 달라지는 것이 하나 있다.

어릴 때 전두엽에 문제가 생기면 사회적으로 용납이 안 되는 행동을 서슴없이 하고, 원하는 것이 있으면 법을 어기고 아무 거리낌 없이 살인도 저지른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 난 뒤 전두엽에 손상을 입은 사람은 상식에 어긋나는 행동을 할지언정 남을 해치는 짓은 하지 않는다. 어릴 때 도덕 교육을 받고 실천에 옮겼으며, 그것이 이미 생활화돼 있기 때문에 문제를 덜 일으키는 것이다. 반드시 열 살 전에 아이에게 사람됨에 대해 가르쳐야 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만일 이 시기를 놓치면 부작용이 매우 심각하다. 수학이나 영어는 때를 놓쳤다 하더라도 공부를 하면 웬만큼은 만회할 수 있다. 하지만 전두엽의 특성이 말해주듯 열 살 전에 사람됨의 가치를 배우지 못하면 그 뒤에 배운다 한들 생활화되기 어려우며 그 영향이 평생을 지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들은 도덕과 사람됨을 가르치는 조기교육엔 별로 관심이 없다. 영어는 남보다 빨리 하나라도 더 가르치려고 열성을 보이면서 왜 아이의 올바른 버릇과 가치관을 세우는 데는 그렇게 무사태평인가. 나쁜 버릇을 제때 바로잡지 못하면 아이의 인생은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집에서든 밖에서든 제 뜻대로만 하려고 하다가 친구도 없고 선생님 사랑도 못 받는 외톨이가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당신의 사랑스런 아이는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살 수 없는 괴물이 돼 있을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생후 3, 4개월부터 약간의 고집을 부리기 시작한다. 이때의 고집은 엄마 젖이나 분유를 먹지 않겠다고 입을 꾹 다무는 정도지만, 아이에게 의지가 생기는 것이니 큰 변화인 셈이다. 이때부터 생긴 고집은 점차 그 강도가 더해져, 두세 살 무렵에는 제 뜻대로만 하겠다고 엄마와 맞선다. 최초의 반항기이다. 그리고 세 돌이 지나면서부터는 아예 “싫어! 안 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아이의 고집을 나쁘게 볼 것은 아니다. 고집은 자기 스스로 뭔가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 즉 자립을 위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때 아이 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고집이 자립성이 아닌 안하무인으로 가는 싹이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아주 어릴 때부터 부모의 적절한 관여가 꼭 필요하다. 날 때부터 말 잘 듣고 예의 바른 아이는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람이 기본적으로 ‘도덕적인 하드웨어’를 타고났다고 믿는다.

신생아에게 자기 울음소리가 녹음된 테이프를 들려주었을 때는 따라 울지 않는다. 이것은 아이가 단순히 울음소리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에 대한 반응으로 운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이와 비슷한 예로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아기 앞에서 우는 흉내를 내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서툰 손짓으로 등을 토닥거리는 것을 볼 수 있다. 본능적으로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여 위로의 손길을 보내는 것이다. 이처럼 아이들에게는 ‘사람됨의 하드웨어’가 잠재되어 있다. 그런데 부모가 때를 놓쳐 그 하드웨어를 망쳐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것을 잘 개발시키는 것은 온전히 부모의 몫이다.

농사를 할 때 정말 놓쳐서는 안 되는 시기가 있다. 바로 씨를 뿌리는 기간이다. 농부가 씨를 땅에 심을 수 있는 파종의 적기를 놓치면 안 된다. 그 기간이 지나 씨를 뿌리면 농부가 아무리 거름을 줘 가며 정성껏 가꿔도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한다. 열매를 맺게 양분을 공급하는 뿌리가 튼실하지 못한 까닭이다.   

한번 시기를 놓치면 회복하기 어려운 농사처럼, 아이를 사람다운 사람으로 잘 성장시키는 것에도 시기가 있다. 그 시기를 놓치면 뒤늦게 후회해 봐야 소용없다. 짧지만 가장 중요한 파종의 적기를 놓쳐서 후회하는 어리석은 농부를 타산지석 삼으며 자식농사를 짓는 부모가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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