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고단한 긴 생애를 마감한 것은 1799년 12월 14일 눈이 펑펑 내리던 날이었다. 8년간의 미국 초대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마운트 버논의 고향집으로 돌아온 지 3년 만으로 68세의 생일을 두 달 앞두고였다.

그가 서거한 후 미 연방하원은 그를 기리며 다음과 같은 찬사를 보냈다.

“조지 워싱턴은 전쟁에서도 1인자였고, 평화에서도 1인자였고, 온 국민의 마음에서도 1인자였다.”

21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는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사람으로 남아 있다. 이렇게 그는 ‘건국의 아버지’라 불리며 많은 미국인의 존경을 한몸에 받고 있다.

그는 참으로 행복해 보인다. 그렇게 온 국민의 추앙을 받고 있으니 어찌 행복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럼 그의 그런 행복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마운트 버논에 이룩한 거대한 경제적 부 때문인가. 전투에 능한 미국 독립군의 장군이었기 때문인가. 아니면 유능한 정치인이었기 때문인가. 아니면 빛나는 가문의 전통과 유산이 있었기 때문인가. 꼭 그렇지만은 않다. 그의 진정한 위대성은 운명적으로 주어진 비극을 딛고, 평생을 두고 치열하게 가꿔온 고결한 도덕성에 있다.

그의 삶은 불행으로 시작한다. 후처 소생으로 태어났는데, 나이가 위인 이복형제가 이미 네 명이었다. 제대로 철들기 전인 11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다. 그런 덕분인지, 그는 정규 학교를 다닌 적이 거의 없다.

7∼15세 사이에 남들이 모두 학교에 다니면서 교양을 쌓을 때 그는 야외를 혼자서 헤매고 다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10대 후반부를 그는 담배 재배와 가축 사육, 측량기사의 보조자로 거친 일에 파묻혀 살았다.

이렇게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야생마처럼 살던 어느 날 그 형제들은 이웃집의 식사 초대를 받았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가정의 예의범절에 대해 제대로 배울 기회가 없었던 그는 이웃집에 초대돼 식사 에티켓을 접하며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식사 전 감사의 마음으로 기도를 올리고, 반듯한 자세로 앉아 음식을 먹으면서 같이 식사하는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고 서로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모습은 주변에 누가 있건 없건 아무 곳에서나 끼니를 때운다는 개념으로 식사를 하던 자신들의 모습과는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조지 워싱턴은 그날 식사를 마친 뒤 집에 돌아와 자기가 본 것을 꼼꼼히 기록했다. 포크를 어떻게 쥐고 냅킨은 어떻게 사용하는지, 식사 도중 남의 이야기를 어떻게 듣고 어떻게 호응해줘야 하는지 등…. 그때부터 그는 주변을 통해 배운 도덕규범을 계속 적었다.

이런 기록은 20∼30대 사업가 시절에나, 영국 군인 시절에나, 또 독립군의 장군 시절에나, 대통령 시절에나 계속됐다.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예절바른 것이고 품격 있는 것인지를 계속 적어간 것이다.

그 후 50년도 더 지나 그가 죽은 뒤 유품을 정리하던 중 작은 수첩이 발견됐다. 누구나 궁금해 하던 수첩이었다. 워싱턴이 평생토록 품에 넣고 다니며 애지중지하던 수첩이었기 때문이다. 저기에 무엇을 저렇게 열심히 적어 넣고 있었을까.

수첩 안에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도리와 가치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그가 평생토록 다른 사람으로부터 전해 듣거나 스스로 배운 행위규범이었다. 대략 110가지로 분류되는 행위규칙이 그 안에 담겨 있었다고 한다.

말을 어떻게 할 것인가, 행동은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가, 일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등의 물음에 대한 답은 물론 양심과 신용, 우애, 책임, 예절의 중요성과 그 실천법 등 그가 살아온 도덕적인 삶의 지표가 110개의 항목으로 분류돼 적혀 있었다.

초대 대통령직을 훌륭하게 수행한 그가 3선 대통령으로 추대됐을 때, 권력에 욕심 부리지 않고 끝내 사양한 것도 그가 도덕적인 원칙에 의거해 살았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그의 이 수첩 기록은 지금까지도 ‘워싱턴의 미국인 예의 규범’(George Washington′s Rules of Civility)이라는 이름으로 출판돼 조지 워싱턴 가문 내에서는 물론 많은 미국인의 가정에서 가정보감으로 여겨지며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다. 양피 가죽으로 잘 제본된 이런 책들이 성경책 옆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집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도 있다.

미국 중산층의 삶의 기본이 이 워싱턴의 행위규범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이야기도 그래서 나온다. 그래서 조지 워싱턴은 미국인들의 마음과 도덕의 건국자이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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