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만으로도 겁나”
“생각만으로도 겁나”
  • 김춘근 / 중국·드림인코리아 명예기자
  • 승인 2010.09.10 11:19
  • 수정 2010-09-10 11: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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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하는 추석
결혼 전까지만 해도 고대하던 추석 명절이었지만 지금은 덜컥 겁부터 난다.

주부들이 “명절이 힘들어서 싫다”라고 입을 모았을 때 ‘기껏해야 음식 준비와 설거지 때문에 저런 말을 하는 거겠지’ 하고 간단하게 넘겨버렸던 나는 막상 추석을 지내고 나서 그들의 말을 이해하게 됐다.

그렇게 힘든 명절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시어머니는 추석문화가 중국에서 넘어온 것이라고 하는데 중국에서 26년을 산 나로서는 이런 추석을 보낸 적이 없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추석 전날 아침 일찍부터 꼬치, 전, 생선, 불고기, 잡채 등 하루 종일 부치고, 지지고, 볶고…. 점심때가 돼서도 일이 끝나지 않아, 밥상도 없이 쪼그려앉아  음식을 주워 먹고, 저녁이 돼서야 일을 끝낼 수 있었다. 허리도 아프고 팔도 쑤셨다.

일을 마친 후 찜질방에라도 다녀오라는 시아버지 말씀에, 시어머니는 추석 준비를 하느라 고생한 여자들을 배려하는 거라고 했지만, 이후에 한국인 주부들에게 들어서 알았는데 주부들은 명절음식 만들고 그 날 저녁은 찜질방에 가서 피로를 푼다는 것이었다.

마침내 추석날이 되었다. 하루 종일 음식 장만으로 몸이 마음처럼 움직여주질 않았지만, 아침부터 서둘러 차례 지내고 지방으로 성묘까지 다녀오니 벌써 추석날 하루가 다 지나가 버렸다. 태어나서 처음 맞은 한국의 추석 명절로 온몸이 부서지는 것 같았고, 다음 명절이 오는 것이 벌써부터 겁이 날 정도였다.

내가 자란 곳은 중국 내몽골이다. 그곳에서는 추석 며칠 전에 미리 월병을 준비한다. 준비한다고 해도 대형마트나 백화점에 가서 만들어진 것을 사오는 것뿐이다. 추석 당일에는 근처에 살고 있는 친척과 타향살이하는 자녀들이 본가로 돌아온다. 그날만은 온 가족이 한 밥상에 모여앉아 즐겁게 밥을 먹고 그동안 잘 지냈는지, 뭐 하면서 지냈는지, 일은 잘 되는지 등의 환담을 나눈다.

여자들이 해야 하는 일은 별로 없다. 남자들이 함께 하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명절이 남자들만 편히 지내는 날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한 명절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밥상을 물리면 마작을 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렇듯 중국에서 다함께 즐겨 놀던 추석과 달리 한국에서의 추석은 즐겁기는커녕, 힘들고 피곤한 명절이다.

이주 여성들이 가끔 모여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모두 명절이 싫다고 말한다. 심지어는 한국의 명절이 무섭다고까지 말하는 사람도 있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적응이 안 된 이주 여성들에게는 더욱 힘든 일일 것이다.

조상들께 감사의 예를 올리고 한 해의 수확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은 좋지만, 여자들도 함께 즐길 수 있고 명절을 괴로운 날로 여기지 않도록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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