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및 지방 공무원 채용 방식이 고등고시가 시행된 1949년 이후 61년 만에 대대적으로 바뀐다고 한다. 지금의 대규모 공채 시험 방식에서 선발 정원의 50%를 전문성을 지닌 외부 전문가를 시험 없이 특채해 충원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외부 전문가가 들어가 그동안 일부에서 고시 기수를 중심으로 서열화·경직화 돼가고 있다고 비판 받아온 제도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사실 그동안 행정고시가 공직사회 내 특정 집단을 형성하는 권위적 의미로 일정 부분 인식돼 온 것은 사실이다. 필기시험 위주의 기존 채용 평가방식으로는 공무원의 적성과 자질을 충분히 검증하거나 전문성을 갖춘 인재를 확보하기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 

그러나 정부가 내놓은 채용 방식은 일반 서민들이 자신의 노력만으로 신분상승을 할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길을 차단하는 부정적인 면을 분명히 가진다. 필기시험 없이 서류전형과 면접을 통해 해당 분야의 ‘전문성’ ‘공직자로서의 적합성’을 검증해 선발한다는 정부의 공무원 채용 계획이 과연 객관성과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인지 의심스럽다. 정직과 신뢰를 가장 큰 덕목으로 생각하는 선진국과 달리 이번 개각 명단에서 보듯이 편법과 탈법이 세상을 사는 지혜와 요령으로 생각하는 한국 사회에서 과연 객관성과 공정성을 보장할 수 있을지 염려가 된다.

또한 이러한 제도는 결국 자격증, 학위, 전문분야 경력, 유학 등 소위 스펙을 갖춘 기존의 지배층과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부유층 출신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다. 이를 두고 고위 관료의 자식들을 과거시험 없이 관리로 등용했던 고려시대의 ‘음서제’의 부활이라고 비판하는 시각도 존재한다. 고시 하나만으로 승부를 걸려던 저소득 출신의 공직 진출이 축소되며 따라서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사회적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킬 소지가 있다. 출신 배경이나 금전적인 문제로 전문적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조차 갖지 못한 사람들을 시작 단계에서부터 차별하는 정책에 의해 움직이는 나라는 결코 희망을 주는 나라가 아니다.

실제로 여당 일각에서도 해외학위 취득자, 변호사, 변리사, 의사, 약사 등 일부 전문 직종의 공직 독점 현상을 초래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정 집단의 이익을 추구하거나 전문분야의 시각으로 편향된 사람을 전문가로 채용할 가능성도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고시제도는 기존의 과거 제도처럼 상대적으로 취약계층이 오로지 능력과 실력만으로 출세하고, 크게 쓰임 받는 등용문으로서의 역할을 해왔다. 멀리는 고려시대의 과거제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고시제도가 60여 년간 지속됐던 것은 누구나 시험 볼 수 있는 평등성과 시험 결과에 대한 공정성 때문이다. 취약계층 또는 일반 서민 청년들이 재력이 담보해주지 못하는 노력 하나만으로, 어떤 편견에도 위협받지 않고 자신의 능력과 실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이었던 것이다.  

여성들 역시 이러한 고시제도를 통해 공직자의 길로 들어서 사회 기여도를 높여왔다. 행정고시에서 여성 합격자 비율은 1991년 3.0%에서 2008년 51.2%, 2009년에도 46.7% 등으로 괄목할 정도로 늘고 있다. 시험을 통해 공직에 들어선 여성들은 실력 하나만으로 승부하면서 국가와 사회에 헌신하고 있다. 이처럼 50%에 육박하는 여성 고시 합격률은 우수한 여성들이 왜 고시에 몰리는가를 생각하게 해준다. 시험은 편견과 차별을 비교적 받지 않고 오로지 실력만으로 승부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후 변화되는 민간 전문가 채용 제도는 과연 그만큼의 공정성을 여성에게 보장할 것인가. 장애인을 비롯한 다른 취약계층에는 어떠할 것인가.

행정고시 폐지는 기존 전문가의 수평이동과 줄서기, 자녀에게 직업 대물리기 등 이미 정치, 군, 종교, 의료 등의 영역에서 고착된 계층 재생산 구조가 결국 관직으로까지 확대될 위험성을 가진다. 인재를 선발할 때 시험만큼 가장 객관적인 제도는 없다. 굳이 이를 변화시키려면 제도적인 보완과 충분한 여론 수렴을 통해 한국의 현실에 맞는 고시제도로 개편해 나아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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