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5년간 미성년자인 딸을 성폭행하고 임신하자 낙태까지 시킨 친부에게 검찰이 강간 이외에 성매매를 적용한 것이 회자됐던 적이 있다. 검찰은 협박이나 폭행 같은 구체적인 혐의 입증이 어려운 경우 가해자를 처벌하기 위해 성 매수 혐의를 적용했다고 해명했다. 현행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절차에 관한 특례법’은 친족관계에 있는 자가 형법 제297조(강간)의 죄를 범한 때에는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동법 제7조 제1항). 여기서 친족이란 사실상의 관계에 의한 친족을 포함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동법 제7조 5항).

이와 같은 법 규정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굳이 성매매를 적용하고자 해 상식상 납득하기 어려운 결론에 이르게 된 데는 원인이 있다. 형법이 폭행과 협박을 강간의 성립 요건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행 형법은 폭행 또는 협박으로 부녀를 강간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형법 제297조). 문제는 폭행과 협박이 수반되지 않은 상태에서 친부에 의해 성관계가 발생한 경우 이를 성폭행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 현재 법조계의 견해가 일치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한 판례는 지속적으로 강간의 성립에 있어서 폭행과 협박을 요건으로 하고 있는 반면, 여성주의 법학 연구자를 중심으로 하는 비판적 입장에서는 폭행과 협박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 성관계에 대한 동의를 의미하는 것으로 간주돼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취해왔다.

그러나 이번 사태의 또 다른  측면은 여성주의 법학자들이 주장해온 현행 강간죄 구성의 문제점이 여성 대 남성의 이분 구도에 관계된 논의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도리어 강간죄가 전제로 하고 있는 성에 대한 인식이 성인 남성을 중심으로 하는 편중된 이해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립성을 상실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이 남성 편향적인 인식을 전제로 구성된 법은 여성의 경험을 반영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그 객관성과 중립성이 문제 될 뿐 아니라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성폭력의 특성도 반영할 수 없다는 점에서 현행법의 강간죄 규정이 추구하고자 하는 목적이 구현되고 있는지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도록 한다는 것이다. 강간죄 규정이 남성 성인이 아니라 여성 또는 아동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면, 보호 대상자의 특수성이 반영되지 않고 있는 현행법은 어디서 존립의 정당성을 찾을 것인가.

매일같이 언론을 장식하고 있는 아동 성폭행 사건들 속에서 법이 무엇을 성폭행으로 정의하고 누구를 보호하고 누구를 보호 대상에서 배제할 것인지에 대해 피해자의 경험을 배제하고 남성 성인의 경험으로 설명하고 그 틀 속에서만 법적 보호를 적용하고자 한다면 그 정당성에 대한 의문은 끝없이 제기될 것이다. 이제 법적 중립성의 문제는 여성의 경험 배제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다양한 소수자들의 경험이 배제된 채 만들어진 현행 법체계 전체에 이들이 던지는 질문이 됐다. 그리고 여기에 답하는 것이 여성주의 법학의 과제이기도 하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