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딸아이가 며칠 전 내게 책 한 권을 건넸다. ‘불량엄마 납치사건’이란 제목의 책이었다. 책을 본 순간 뜨끔하면서도 웃겼다. 심각한 제목과 달리 책 표지는 코믹했다.
난 늘 제멋대로였다. 물론 다 아이들을 위한 일이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우리 식구가 천안으로 이사를 온 것도 더 좋은 교육환경에서 애들을 키우고 싶어서였다. 좋은 환경이란 학교에 공부 잘 하는 아이들이 많아야 하고, 그 학교 학부모들이 지적 수준이 높아야 하고, 집 근처에 좋은 학원이 많아야 하고, 도서관이 있어야 하는 지역이다.
난 이사 오기 전 전혀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천안 지역의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 인터넷을 뒤지고 발품을 판 끝에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지역을 골라 이사를 왔다. 물론 아빠의 직장이 멀어졌지만 아이들을 위한 희생이라며 설득해 어렵게 이사를 왔다. 마음 같아선 서울 강남으로 가고 싶었지만 너무 무리되는 것이 많아 포기했다.
이곳에서 좋은 학원, 좋은 과외 선생님을 찾아다니며 아이들에게 이것저것 시켰다. 그러면서 ‘역시 난 최고의 엄마야’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에게 좋은 학원과 선생님을 붙여주면서 “이제부터는 너희가 알아서 해라. 밥을 해서 상을 차려주는 것은 엄마 몫이지만 그것을 씹어 삼키고 소화하는 것은 너희의 몫”이라고 떳떳하게 말했다. 아이들은 내가 짜놓은 계획표에 움직이는 아바타인 것 같다. 난 그것을 즐기는 조종사이고….
큰딸아이가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내가 무슨 잔소리를 하려고 하면 “난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한다. 그럼 나도 이에 질세라 “나도 네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 한다. 한바탕 둘의 전쟁이 끝나면 잠시 뒤 우린 같은 베개를 베고 같은 이어폰을 끼고 같은 음악을 듣는다.
난 아이들과 이런 전쟁을 즐긴다. 오로지 내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아이들도 엄마와 마찬가지로 이 모든 것을 즐기기를 바란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도 난 또 다시 이런 선택을 할 것이고, 또 다시 후회를 할 것이다. 그 상황에선 그것이 아이들을 위한 최선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이 칼럼을 쓰면서 아이들에게 “엄마는 어떤 엄마니?”라고 물어보았다. 내심 아이들에게 좋은 엄마라는 말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헌데….
“엄마는 이중인격자야, 엄마는 제멋대로야, 엄마는 밤 12시만 되면 헐크로 변해 소리를 꽥꽥 지르는 마귀할멈 같아, 엄마는 내 의견을 전혀 들어주지 않아, 엄마는 잔소리쟁이야….”
아이들은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속사포처럼 험담을 늘어놓는다. 전혀 내 눈치를 보지 않고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을 들으면서 난 화가 나는 게 아니라 웃고 있었다. 나도 웃고 아이들도 웃고…. 아이들은 마지막에 자그마한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그래도 엄마가 최고야” 한다.
난 최고의 불량 엄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