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남녀 두 사람만의 문제가 아닌 두 가정이 한 가족이 되는 과정이다. 연인 사이에는 사랑하는 마음이 제일 중요하지만 부부에게는 사랑만큼 믿음도 중요하다. 부부 간에 신뢰관계가 깨지면 가족 전체의 행복을 잃을 수 있고, 행복이 없으면 가족 구성원들은 희망을 잃게 된다.

더욱이 다문화가정은 가족의 탄생부터 유지하는 과정까지 언어, 인종, 문화, 종교, 민족 등 많은 차이로 인한 갈등에 봉착, 그것을 해결해가야 하는 현실과 마주한다. 이들에게 가장 큰 문제로 작용하는 것은 역시 의사소통 문제다.

한국말을 몰라 시부모님의 간단한 심부름은커녕 남편과의 대화는 물론이고 가족 이외의 사람들과도 소통이 어려워 사회활동이 불가능하게 돼 결혼이주 여성은 고립 상태에 빠져버리기 쉽다. 사회적 동물인 사람에게 소통의 부재란 암흑과 같은 고통의 시간을 의미한다.

또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을 수 없게 되면 서로 의심하고 오해할 가능성이 크다. 매일 얼굴을 보며 살아도 대화 한마디 없다면 남보다도 못한 관계가 될 수 있다. 신뢰관계를 만들어가기 어렵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남편들은 말이 능숙하지 못한 아내에게 생활비와 통장을 맡기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아이까지 있어 돈이 들어가는 곳이 많은데, 사소한 지출까지 일일이 확인받아야 하고, 남편이 없는 동안 갑자기 돈을 써야 하는 상황에서도 마냥 남편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한국인과 결혼한 외국인 여성들은 대부분 가난한 나라 출신이라 어렵게 생활하고 있을 친척과 부모님을 걱정하는 경우가 많다. 한 달에 단 몇 만원이라도 보내고 싶지만 대화 없이 남편이 아내의 마음을 헤아리기가 어렵고, 그것을 부탁하려는 아내의 입장도 마찬가지로 답답할 뿐이다.

이런 일이 쌓이다 보면, 서로 보고만 있어도 화가 치밀고, 서로 피해자가 되어 억울한 생각만 드는 것이다. 그런 가정은 웃음이 사라지고, 행복과 희망마저 잃어버리는 불행한 가족이 될 뿐이다.

당장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해서 포기하지 말고, 서로를 더 잘 이해하려는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 남편은 아내의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하고, 낯선 이국땅에서 외로워하는 배우자를 따뜻한 마음으로 보듬어 주고, 아내도 한국 문화와 언어를 이해하기 위해 남편이나 시부모에게 도움을 청하며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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